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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케이크워크

#268 콩고

by 조이진

콩고

1860년 링컨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해 노예제 지속을 원한 남부 주들이 미합중국에서 분리를 선언하고 남북전쟁을 시작했다. 4년의 전쟁에서 남부 연합은 패했고, 형식적으로는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영국이 버지니아를 벗어나 남하해 캐롤라이나 등으로 식민지를 확장하기 시작한 1650년부터 1860년까지 200년 동안 미국으로 실려 온 흑인은 대략 50만 명이다. 이 기간 미국에 들어간 흑인의 7배인 450만 명이 쿠바를 포함한 카리브해와 멕시코만 해안에 내려졌다. 같은 기간에 브라질, 칠레 등을 포함한 남미지역 전체로는 1,000~1,500만 명이 유입되었다. 루이지애나를 포함해서 미국으로 들어간 흑인들은 전체 흑인 노예 중에서 5%도 되지 않는다. 1880년 스페인은 쿠바에서도 노예 수입을 중단한다고 선언했지만 6년간의 유예기간 뒤인 1886년에서야 노예 수입이 중단되었다. 포르투갈의 브라질은 그보다 늦은 1888에 중단되었다. 카리브해에서는 쿠바가, 남미에서는 브라질이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아프리카인 노예를 유입한 곳이다. 이들 두 나라가 훨씬 강하게 아프리카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쿠바 흑인들은 자기 조상이 콩고계인지, 만딩가족 출신인지, 카리발리족 출신인지를 알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스페인어 사전에는 카라발리carabelí, Mandinga라는 단어는 없다. 쿠바 음악의 노랫말에는 아프리카 단어들이 섞여 있다. 스페인어에 능한 사람일지라도 쿠바 음악의 노랫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이다. 쿠바에는 크게 보아 4그룹의 아프로쿠바인이 있다. 가장 많은 부류가 콩고, 앙골라 출신 중앙아프리카 반투족들이다. 쿠바에 가장 먼저 왔고 또 가장 마지막까지 온 아프리카인들이다. 다음으로는 나이지리아, 카메룬 일대 칼라바르Calabar 지역 출신들이다. 쿠바에서는 이들을 카라발리Carabalí라고 부른다. 세 번째 그룹이 나이지리아에서 온 요루바족이다. 마지막으로 노예해안 한가운데 있는 베냉Bénin 지역 출신들로 다호메이Dahomey다. 생 도맹그에서 혁명을 피해 쿠바로 온 다호메이들이 아바나 거리의 멋쟁이 네그로 쿠로들이다. 쿠바 음악에서 뚜렷한 구심점 역할을 하는 두 축은 반투족과 요루바족이었다. 아프로쿠바노들이 어떤 민족 그룹에 속했든지 모두 이 두 민족의 음악 성향에 수렴되었다.

  쿠바에는 이슬람의 문화가 섞이지 않았다. 쿠바뿐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전체가 다 그렇다.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유대교도 라틴 아메리카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곳은 모슬렘에게 800년 동안 지배당했던 스페인이었다. 대신 아프리카 종교들이 들어왔다. 아프로쿠바인들은 다신교적인 아프리카 종교 전통에 가톨릭이 뒤섞인 산테리아를 믿었다. 쿠바에서 백인들은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었지만, 흑인들은 이슬람 문화가 없었다. 미국은 그와 반대다. 미국의 흑인들은 이슬람 문화가 있었지만, 백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바스크에 막인 이슬람은 피레네를 넘지 못했고, 이슬람이 섞이지 않은 영국,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쿠바의 음악은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음악은 노예해안과 세네갈 지역의 이슬람 지역에서 잡혀 온 노예들에 의해 필feel이 만들어졌고, 쿠바의 필은 이슬람 영향을 받지 않은 콩고 같은 열대우림지역 노예무역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미국에도 콩고 출신 노예들이 있었지만, 음악적으로 먼저 형성된 모슬렘의 필을 넘어서지 못하고 수렴되었으므로 콩고의 음악적 스타일은 도드라질 수 없었다.

다운로드 (27).jpeg 다온나 드럼. 언어가 다른 흑인들은 다온나 드럼 사운드로 하나가 되었다. 다온나를 개량한 것이 쿠바의 콩가 드럼이다.

반면 쿠바에서는 콩고 스타일이 쿠바 음악의 배양토가 되었다. 라틴 드럼이라고도 하는 콩가는 높은 음정의 가볍고 명랑한 소리를 내는 핸드 드럼이다. 봉고는 가랑이에 끼고 두 손으로 두드려 콩고보다 더 높고 가벼운 음정의 빠르고 신나는 소리를 내는 드럼이다. 생 도맹그에서 이주한 흑인들이 다온나tajona라는 드럼을 가져왔고, 다른 음악을 하고 언어도 통하지 않던 쿠바 흑인들과 함께 연주하고 춤추었던 다온나를 콩고 드럼의 개념과 결합해 새로 발명한 드럼이다. 쿠바 콩고인들이 발명한 콩가와 봉고는 콩고의 드럼을 기본으로 쿠바의 리듬과 악기를 결합해 발명한 것들이다. 1940년대 쿠바와 미국 음악계에서 크게 성공한 베니 모레도 시엔푸에고스의 콩고 카빌도의 소년이었고 그의 할아버지는 콩고 카빌도에서 왕이었다. 1940~50년대에 맘보보다 더 세상을 강타한 음악은 없다. 맘보를 처음 창조한 뮤지션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즈의 할아버지도 콩고 출신 노예였다. 콩고인들은 350년 동안이나 쿠바에 노예로 팔려 왔다. 대개 신들이 그렇듯이 콩고 출신 노예들의 신도 사람들이 정성껏 보살피지 않으면 죽어버린다. 그래서 매일 신들에게 음식을 올리고 곡을 연주하고 노래해주어야 했다. 대다수 쿠바 사람은 자기 신을 평생 그렇게 섬긴다. 종교의식 때 콩고 사람들은 노래와 춤을 춘다. 그러므로 그들은 날마다 춤을 춘다. 춤을 통해 콩고 사람들의 오랜 생각과 리듬은 생생히 살아 자손들에게 전수되었다. 매일의 콩고식 종교의식이 20세기 쿠바의 춤과 음악을 만들어냈다.

0_198.jpg 여러 종류의 쿠바 타악기와 드럼들. 다이노 악기와 아프리카 드럼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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