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관타나모
관타나모
미국 상원에서 쿠바 위원회를 주도한 플랫 상원의원은 쿠바의 제헌 의회가 만든 헌법을 그대로 수용해 주려 하지 않았다. 미국이 쿠바를 독립시켜 주었으니 쿠바는 미국에 빚을 졌고, 미국은 답례받을 권리와 특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간명한 그의 논리였다. 그리고 미국이 받을 대가는 미국이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군정을 언제 어떤 조건으로 마칠지는 미국 의회가 결정하겠지만 미국과 쿠바의 미래에 만들어질 관계에 대해서는 쿠바 헌법에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플랫은 쿠바 헌법은 미국이 쿠바에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만 하고 또 미 해군이 사용할 토지를 할양해야 한다고 했다. 쿠바 제헌 회의 대표는 제헌 헌법을 미국에 승인받아야 할 이유가 없고, 미국도 쿠바의 헌법을 승인할 권리는 없는 것이 당연하므로 이 제안을 한마디로 거절했다. 제헌 회의는 플랫의 조건을 거부하고 수정 제안에서는 미국이 쿠바에 개입할 어떤 권리도 명시되지 않았다. 대신 쿠바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어느 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영토의 일부라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었다. 미국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쿠바가 미국의 일원이 아닌 확고하게 독립한 제3 국이 되겠다는 의미였다. 미국 정부도 거부했다. 플랫이 수정안을 내놓았다. 미국은 쿠바가 수정안을 수용하는 것만이 ‘자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다고 뜻을 분명히 밝히고 미국이 쿠바를 항구적으로 간접 통치하는 특권을 명기하고, 쿠바 단독으로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을 권리가 없으며 국채든 외채든 국가의 채무를 일으키는 행위도 할 수도 없다는 점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쿠바의 영토 일부를 미 해군 기지로 사용하게 하며 동의 없이 미국 군대는 쿠바에 진입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분노한 쿠바에서 대규모 군중집회가 잇달아 열리고 시위대는 횃불을 들고 행진했다. 우리 집 열쇠를 미국인들에게 바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플랫 수정안을 성토하며 쿠바 국민보다 미국이 쿠바에 더 많은 권리를 행사한다는 데 합당한 근거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만일 그런 상태로 국가와 정부가 성립한다면 그것은 정부라 할 수도, 국가라 할 수도 없다고 단언한 제헌 회의도 플랫 수정안을 거부했다. 상황은 분명해졌다. 쿠바가 플랫 수정안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미군정의 계속 통치를 받아들이든지 둘 중 하나였다. 미국도 완강했다. 쿠바가 행동하지 않으면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미군정 체제는 장기화하고 고착될 것이었다. 쿠바가 행동한다는 것은 곧 플랫 수정안을 받아들인다는 것뿐이었다. 쿠바 제헌 회의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투표 결과 찬성 16, 반대 11표로 플랫 수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쿠바공화국 헌법의 부속 조항에 삽입하기로 했다. 찬성한 의원은 이것이 아니면 쿠바에서 미군정을 끝내고 쿠바공화국을 건국할 길이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쿠바섬에는 허구라는 탈을 정부만 존재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미군정 총독 우드도 같은 인식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쓴 서한에서 “이제 플랫 수정안의 틀 안에 갇힌 쿠바에는 진짜든 가짜든 독립이란 없습니다” 1902년 플랫 수정안 체제 아래서 미군정이 철수하고 쿠바는 어정쩡한 상태로 독립했다. 미군정은 에스트라다를 초대 쿠바공화국 대통령으로 ‘발탁’했다. 그는 인도주의 측면에서 미국이 쿠바에 개입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주장했던 오랫동안 미국에 살아온 친미주의 독립 운동가였다. 쿠바공화국은 호세 마르티가 염려했던 대로 그렇게 ‘괴물’의 힘에 의해 기형적으로 출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