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레콘

14. 말레콘

#290 실험

by 조이진

실험실

1902년 5월 20일. 정오까지는 5분 남았다. 미군정 사령관 레너드 우드 장군은 왼쪽 문으로, 초대 쿠바 대통령 토마스 에스트라다 팔마는 오른쪽 문으로 들어왔다. 우드가 팔마의 손을 쥐었을 때 쿠바공화국의 권력은 팔마 대통령에게 이양되었다. 이제는 공화국의 시민이 된 쿠바인들이 막 공사가 시작된 말레콘으로 쏟아졌다. 아바나만의 입구 반대편 모로 요새에서 진행될 쿠바공화국의 국기가 처음 게양되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였다. 쿠바인들이 염원하던 독립 공화국의 국기가 콜럼버스가 건너온 대서양 푸른 바다 맑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1902년 아바나만 입구 모로성에 쿠바 국기가 게양되었다.

아바나의 상징 모로 요새에 스페인, 영국, 미국에 이어 네 번째로 올라가는 국기다. 대서양 바다 파도를 막기 위해 만든 제방 말레콘은 이때부터 아바나 시민들의 정치 집회를 상징하는 광장이 되었다. 큰 건물에는 마세오 장군과 호세 마르티의 초상을 그린 대형 걸개그림이 내걸렸고, 시인들은 ‘자유 쿠바, 쿠바 리브레’를 감격해하는 시를 읽었다. 시민들은 독립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들고 말레콘을 가득 메웠다. 비록 오랜 세월 독립 투쟁하는 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공화국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를지라도 조국 쿠바는 틀림없이 번영하는 공화국이 될 것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고통의 출발선에 서 있다는 것을 아직은 상상하지 못했다. 미국이라는 괴물의 속내를 잘 보여주는 플랫 수정안은 쿠바인들의 발목에 채워진 어둡고 무거운 쇠사슬이었다. 호세 마르티가 걱정했던 일들은 이제 현실이 될 것이다. 지금 그들이 환호하고 행진하고 서 있는 말레콘 가도는 미국 자본이 건설하고 있었다. 말레콘은 세계 최강대국이자 쿠바의 새로운 주인이 된 미국의 힘을 상징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제부터 쿠바를 스페인의 쿠바와는 다른 쿠바로 바꿀 것이고, 스페인을 대체한 미국식 식민주의는 쿠바인들을 새로운 체제의 노예로 만들고 착취하는 고통을 줄 것이었다. 쿠바는 미국이 최초로 차지한 식민지다.

다운로드 (31).jpeg 막 건설이 시작된 말레콘 입구에 아바나 시민들이 몰려들어 쿠바 독립을 환호했다.

그래서 쿠바는 미국적 식민주의를 시험하는 실습 공간이었다. 독립시키되, 꼭두각시 정권을 세워 배후에서 조종해 미국이 실질 통치하는 방식은 유럽의 식민주의 정책과는 달랐다. 미국은 쿠바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틀을 만들어냈고 미국식 식민주의는 장차 라틴아메리카뿐 아니라 필리핀, 괌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흩어진 미국 식민지를 통치하는 표준이 되었다. 이날 우드와 팔마가 한 악수로 미 제국주의의 시대 그리고 20세기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미국의 팽창이 주도하는 현대사가 시작되었다. 이 무렵 세계 회화에서는 여러 색깔과 빛을 지닌 점을 찍어 그림으로 표현하는 점묘주의 화법이 새로 유행하고 있었다. 미국의 제국주의는 점묘 화법의 국제정치학적 표현이었다. 플랫 수정안에 근거해 설치한 관타나모 미 해군 기지는 미국이 찍은 하나의 점이었지만 그것은 미국이 가진 세계지도라는 화폭에 장차 미국의 제국주의 욕망을 표현할 첫 번째 점이기도 했다. 플랫 수정안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쿠바는 근본에서 크게 달라질 것이었다. 플랫 수정안은 재협상될 수 있는 법안도 아니었다. 말레콘에서 새로운 공화국의 탄생을 환호하는 아바나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권력을 가진 점묘주의 국제정치학의 속내까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콜럼버스가 중세의 지도를 들고 쿠바섬에 들어왔을 때 그들의 속내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다이노들과 그 헤아림이 다를 바 없었다. 쿠바라는 실습실에서 미국은 식민지를 소유하지 않되 소유한 것과 똑같은 이점을 실현할 놀라운 기술들을 개발했고, 이를 모듈화 했다.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가장 중시하고 자유와 인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공화주의의 적인 제국주의를 열렬하게 배격한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미국인들이 점묘주의 제국Pointillist Empire의 화폭으로 삼은 첫 번째로 찍은 붓 점이 쿠바였다.

미국이 쿠바에 권력을 이양했다. 비로소 쿠바공화국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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