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레콘

14. 말레콘

#291 슈가코노미

by 조이진

슈가코노미

팔마 정부가 가장 서둘러 마무리한 일은 미국과 상호 최혜국 대우 상무 조약을 체결하는 일이었다. 쿠바는 미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대해 관세를 모두 없앴다. 그러나 미국은 쿠바가 수출하는 설탕에 부과하는 관세를 20% 인하했을 뿐이었다. 팔마 정부는 설탕 수요는 급성장하고 있는 세계 최대 설탕 시장 미국에 쿠바산 설탕을 판매할 좋은 조건을 확보했다며 자축했다. 쿠바가 독립한 해 28kg이었던 미국의 한 사람당 한 해 설탕 소비량이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할 무렵 37kg으로 늘었다. 급성장하는 미국 설탕 수요를 낮춰진 관세로 쿠바가 공급할 것이니 이익은 많이 늘어날 것이었다. 쿠바의 설탕 산업과 그에 바탕을 둔 쿠바 경제는 장밋빛이었고 팔마 정부는 희망적으로 전망할 뿐이었다. 그러나 400년 피지배 역사에서 오랜 독립투쟁을 거쳐 막 독립한 신생 정부와 일흔 살이 넘은 고령의 대통령이 통솔하는 쿠바는 미국의 셈을 알지 못했다. 이미 미군정은 미국인들에게 토지를 싼값에 매입할 수 있게 했고 팔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벌써 쿠바 토지의 60%를 미국인이 소유했다. 거기에 더해 미군정에 부역한 스페인인들이 15%를 갖고 있었으므로 쿠바인이 소유한 토지는 25%에 불과했다. 쿠바가 스페인에서 독립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미국의 품에 떨어진 쿠바라는 사과는 미국인의 것이었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집중해 있는 어느 지역은 78%를 미국인들이 소유했다. 해방군 지도자였던 한 의원은 ‘이날부터 외국인에게 쿠바의 재산을 매각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라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본회의에 안건을 올려보지도 못했다. 그 뒤로도 10여 년 동안 몇 차례 그런 법안이 제출되었지만, 플랫 수정안이 지배하고 있는 쿠바에서 그런 법안들은 입법되지 못했다.

토마스 팔마 쿠바 초대 대통령. 미국에 의해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쿠바의 많은 것을 미국에 넘겼다.


미국이 다이렉트 메일 광고 마케팅 기법을 이때 창안하고 발전시켰다. 대단지로 땅을 매입한 부동산 회사들이 땅을 조각조각 잘게 나누어 판매하기 위해 발송한 DM 광고는 카리브의 뜨거운 태양과 기름진 토양을 부동산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면서 미국 정부가 쿠바 내 미국인의 재산을 보장하고 미국이 쿠바 정권을 지켜주니 안심하라는 문구도 눈에 잘 띄게 강조했다. 마히바코아라는 지역의 경우는 독특했다. 대단위로 땅을 사들인 미국 부동산 회사는 지명마저 미국식으로 바꾸어 부동산을 팔았다. 이 부동산 회사는 땅을 10 에이커씩 쪼개 미국인에게 무료로 나누어줄 테니 쿠바로 이주하라고 권유하는 광고도 했다. 원주민이나 흑인과 섞이지 않으려 울타리를 치고 집을 짓더니 마을 가운데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사교클럽을 만들어 사교춤을 추었다. 미국인들은 그런 마을을 ‘식민지colony’라고 불렀고 팔마가 취임한 지 1년 만에 미국식 ‘식민지’가 쿠바에 37개소가 생겨났고, 10년 만에 64개, 1920년까지 80개소로 늘었다. ‘식민지’ 가운데는 미국인 거주자가 1만 명이 넘는 곳도 있었다.

1f25a629-6b4f-471f-9699-6e96745af1f8.JPG 쿠바의 설탕 생산량은 쿠바 독립 후 미국 자본의 투입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스페인 사람이 떠난 자리를 미국인들이 대신하니 설탕 산업도 미국식으로 달라졌다. 불과 몇 해의 차이일 뿐이지만 지난 19세기와 20세기의 쿠바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1860년에 2,000개소였던 제당소가 미 군정기인 1899년에는 207개로 줄었다. 미국 자본은 기계화에 투자했고 경쟁 우위를 확보한 미국식 자본 집약적 제당소가 노동집약적으로 설탕을 만들던 스페인식 제당소를 인수 합병했다. 집중화는 계속되었고 1929년에는 전국 163개소가 되어 규모의 경제를 누렸다. 오랜 독립전쟁으로 설탕 생산 기반이 파괴된 오리엔테는 기계화 투자가 아직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집중화는 주로 쿠바섬 서쪽 아바나 주변에서 일어났다. 미국의 설탕 기업들은 미군정이 정한 법에 따라 토지를 싼값에 살 수 있었고 미국 자본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중부지역의 까마궤이와 동부 오리엔테 지역의 막대한 토지를 헐값에 사들였다. 스페인이 손대지 않은 원시림까지 미국 자본이 갈아엎어 사탕수수밭으로 만들었다. 그 가운데 유나이티드 프루츠 컴퍼니도 있었다. 이 회사는 쿠바 토지 20만 에이커를 사들였다. 플랫 수정안이 만들어낸 상무 조약으로 실현한 미국을 위한 자유주의 무역의 결실이었다.

유나이티 프루츠 컴퍼니. 현재는 치키타라는 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델몬트, 돌과 함께 미국 3대 바나나 플랜테이션으로 악명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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