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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진 Feb 25. 2024

15. 그란마

#337 피그만

피그만

  아바나에서 약 150km 떨어진 자바타Zapata 국립공원은 카리브해에서 가장 넓은 습지로 악어 떼와 플라밍고 새들이 서식하는 카리브해 최대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이자 다이노 원주민의 삶의 전통을 보존한 열대의 휴양지는 매년 100,000명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아름다운 관광지다. 수천 년 된 밀림으로 덮여있는 이 늪지에서 공룡 브론토라우러스와 익룡의 화석이 발견되었고 그것들이 뛰고 날던 시대부터 함께 공존해 왔던 여러 생물이 사는 자바타 공원은 영화 <쥐라기 공원>이나 <아바타>의 배경을 연상하게 한다. 수많은 희귀 새가 콜럼버스가 도착했을 때 들었을 지지배배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들려주고 있고, 잘 보존된 산호초 바다는 푸른 거울처럼 맑아서 다이버와 수상 스포츠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는 해양 휴양지다. 늪지 주변은 모래가 두껍게 쌓여 딱딱한 곳도 있고 그 앞 바닷가는 사냥개의 송곳니처럼 사납게 솟은 석회암들로 가득 찼다. 사람이 발을 들이기를 마다하는 해안이다. 이곳이 피그만이다. 온통 늪지이므로 이곳에서 돼지가 서식하기는 어렵다. 다이버들은 미역과 다시마가 물결치는 대로 휩쓸려 휘청대는 이 바다에 뛰어들어 트리거피쉬triggerfish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 떼를 만난다.

자바타국립공원.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휴양지다.

 밝고 환한 다양한 선과 점으로 몸을 장식한 배가 불룩한 복어를 스페인 사람들은 돼지를 닮았다고 하여 돼지 물고기라고 불렀고, 돼지 물고기가 많은 만을 돼지만Bahia de Cochinos이라고 불렀다. 미국인들이 복어가 많은 산호초 오 미역 바다를 피그만Bay of Pigs라고 부르기 전까지 이곳은 모기와 악어 떼가 바글바글한 늪지였으므로 세상에 알려질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피그만 늪지에서도 기괴한 지문을 깊게 새겼다. 또각또각 말수레가 느릿하게 지나는 자바타 공원 입구에는 “이곳에서 쿠바가 승리했던 역사를 기억하라”라는 무디어진 문구가 적힌 선전판이 비끼는 석양 속에 엉성하게 서 있다. 만의 입구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히론 모래사장이 있다. 주로 유럽과 캐나다에서 온 여행자들이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 바닷가에는 작은 박물관Museo Playa Girón이 있다. 휴양지에 어울리지 않게도 이 박물관 앞마당에는 탱크 두 대와 전투기를 비롯해 전사한 군인의 이름과 물품, 이 지역 상세 지도와 전투에 사용된 군사 장비가 전시되어 있다. 침략자들을 상대로 쿠바군이 사용했던 무기들이다. 이 전시물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양키 제국주의가 대패한 첫 번째 전쟁의 증거"라는 설명문이 붙어있다. 이 박물관은 줄곧 아래로 쏟아지고만 싶은 충동과 혼자 오롯이 서고자 치솟는 물줄기가 마주쳐 뜨겁게 부닥친 1960년대를 상징하는 가장 기괴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1493년 2차 항해하던 콜럼버스가 박물관이 있는 이곳 히론 해변에 콜럼버스가 2차 항해 때 수천 년 전부터 검은흙을 뒤집어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고 조개를 캐고 복어를 잡던 다이노 마을에 상륙했었다. 그로부터 468년 뒤 이번에는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골리앗이 어둠을 몰고 슬금슬금 침공했다.  1961년 4월. 굴종하지 않는 다윗은 또다시 전투를 시작했다. 

히론 박물관. 피그만 침공을 격퇴해 미국에 승리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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