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레콘

14. 말레콘

#317 갱스터리즈모

by 조이진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된 1920~30년대에 주류 산업은 오히려 마피아가 독점하는 사업이 되었다. 밀주 사업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밤의 대통령’들은 금주법 기간 때 되려 세력을 확대하고 라스베이거스 등지의 도박사업에도 새로 진출했다. 뉴욕 범죄 세계에서 총과 폭력으로 악명 높은 벅시와 동업했던 랜스키는 직접 밀주를 제조할 거점으로 아바나를 활용하면서 쿠바에 발을 디뎠다.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쿠바의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많은 양의 당밀이 필요했다. 랜스키는 아바나에서 밀주 제조에 머물지 않고 술과 마약, 매춘, 도박을 복합화한 거대한 카디스 제국의 가능성을 보았다. 오랜 친구 벅시가 라스베이거스 사막에 카지노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떠났을 때 랜스키는 열대의 카리브 바다 쿠바로 향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금주법을 폐지하자 아바나에 오는 관광객이 줄었고, 랜스키는 미국인을 쿠바에 오게 할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했다. 아바나에 카지노 투자를 늘렸고 1940년대에는 마약 사업에서 큰돈을 벌었다. 쿠바 사업은 미국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또 쿠바에 민주주의라는 꽃이 화사하게 피었을 때 세 명의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랜스키에 쿠바는 세상에서 가장 사업하기 좋은 곳이었다. 미국의 현대 조직범죄의 아버지이자 ‘보스의 보스’라는 시칠리아 출신 마피아 럭키 루치아노와 랜스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갱 생활을 해온 파트너였다. 둘은 달러를 가득 채운 가방을 들고 아바나로 향했다. 나시오날 호텔에서 바티스타를 만난 랜스키는 가방을 열어 달러를 보여 주었고, 가방을 바라보던 바티스타는 아무 말 없이 랜스키와 악수했다. 바티스타는 랜스키에 나시오날 호텔을 비롯해 국영 카지노 2곳을 양도했다. 1937년 쿠바의 모든 카지노는 국가 소유로 전환되었고 랜스키가 운영했다. 마차도 정권 때는 군부가 민간 정부의 통제를 받았지만, 바티스타 정권 때는 군부가 국가 전체를 통제했다. 미국의 도박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랜스키는 상대적으로 깨끗한 사업가였다. 매춘과 마약은 그의 동료 루치아노에게 맡겼다. 1930년대부터 쿠바 혁명이 일어난 1958년 12월 31일까지 쿠바에서는 랜스키가 통제하지 않거나 랜스키의 대리인이 참석해 조정하고 다루지 않은 일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1937년 랜스키가 세계 최대 경마장도 넘겨받았다. 그리고 나시오날 호텔에 카지노를 개설했다. 랜스키는 범죄자가 아니었다. 쿠바에서 도박은 합법이었으므로 그가 범죄가 아니었다. 랜스키는 평생 꿈꾸었던 사업을 쿠바에서 이루었다.

51rnyakUoqL.jpg 1940년대 미국 마피아를 장악한 랜스키와 벅시 시겔. 벅시는 라스베이거스로, 랜스키는 아바나로 향했다. 영화 <대부 2>에서 그를 연상하는 설정이 들어있다.

1945년 8월. 세계 2차 대전도 미국의 승리로 끝났고 미국은 다시 호황으로 전환되었다. 화약 연기가 사라지자, 온 세계가 미국인들의 여행지였다. 그중 최고는 단연 쿠바였다. 1946년 미국 패밀리 대부 24명이 나시오날 호텔에 모였다. 전쟁으로 14년 만에 처음 갖는 나흘 동안의 비밀 회합에는 플라밍고 가슴살, 마나티 구이, 사슴 요리 같은 진귀한 음식들이 나왔다. 이 음식을 대접한 사람은 쿠바 농업부 장관이었다. 경호원 차량을 대동한 50여 대의 최고급 자동차가 줄지어 말레콘을 이동했고 경찰차가 호송했다. 이들은 회의가 없을 때면 밤이든 낮이든 트로피카나, 산 수시 같은 유명 나이트클럽의 쇼걸들을 방으로 불렀다. 마피아가 감싸 대 스타로 떠올랐다는 소문이 돌던 프랭크 시내트라도 나이트클럽에서 대부 루치아노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대부들은 쿠바섬 서쪽 솔섬을 라스베이거스를 능가하는 열대의 몬테카를로로 개발할 계획을 논의했지만, ‘보스의 보스’인 루치아노의 제안으로 그보다는 쿠바를 국제 마약 물류의 중심지로 만들기로 했다. 그 계획에는 카지노와 매춘 사업, 호텔과 나이트클럽 경영을 모두 포함하였다. 이 모든 계획을 그라우 대통령이 보증하고 있었고, 그라우 뒤에는 바티스타가 있었다.

루치아노(왼편 두 번째)와 랜스키(오른편 두 번째)

루치아노는 그라우 대통령의 집과 무척 가까운 아바나 미라마르로 아예 거점을 옮겼고, 그라우는 이탈리아에만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미국 법원에서 석방된 루치아노에게 미국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쿠바에 거주할 수 있게 비자를 내주었다. 미라마르의 호화 저택에서 루치아노는 쿠바를 좌지우지하는 정치인들과 교류했다. 수영장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포커 카드를 돌렸다. 바로 눈앞에서는 무희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선정적인 춤을 추었다. 상원의원의 부인에게는 갓 출시한 신차의 베일을 벗겨 선물했다. 루치아노가 관리하는 쿠바 정치인 명단에는 미국 정부가 코카인 중개상으로 분류한 상원의원도 있었다. 그라우 후임으로 대통령으로 취임한 프리오 대통령의 동생도 상원의원이었는데 그도 마약 밀매 중개상으로 분류된 자였다. 아바나에 있는 세계 최대 경마장의 경영자는 하원의원이었는데 미국 수사당국은 그를 쿠바와 미국을 연결하는 범죄집단의 중심축이라고 분류했다. 그는 항공사를 소유했고 콜롬비아 정규 노선을 운항했는데 군 공항을 이용해 정기적으로 코카인을 실어 날랐다. 그라우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 정부도 루치아노가 아바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숨어 지내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를 몰고 말레콘을 드라이브하고 마약을 거래하며 공개적으로 파티를 여는 ‘대부’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프랭크 시내트라가 2백만 달러가 든 가방을 미국에서 가져와 그에게 전달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워싱턴은 그라우에게 그를 추방하라고 했지만, 그라우는 내정간섭 말라며 소리를 높였다. 미국이 쿠바에 모든 의약품류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자 그라우는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요구를 받았다. 그런 상황이 되면 루치아노가 쿠바를 마약 암시장으로 바꿔버리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루치아노가 배를 타고 쿠바를 떠났다. 그를 환송하기 위해 프리오 상원의원이 직접 항구까지 나가 환송했다. 루치아노는 떠났어도 쿠바에는 아직 랜스키가 있었다. 루치아노 문제로 차질이 생기기는 했어도 그들의 계획은 위축되지 않았다. 마피아가 쿠바를 통치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피아는 확실히 쿠바를 움직이는 일부였다. 보복 살해는 마피아들의 주요 수단이었으므로 쿠바 정치인들은 폭력배들을 개인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녔다. 국민이 보기에 정치인은 조직폭력배와 별반 다를 데가 없었다. 쿠바 국민은 민주주의가 꽃핀 이 시기의 정치 행태를 깡패 정치gangsterismo라고 냉소했다. 1940년 쿠바는 새로운 헌법과 함께 카리브 바다의 색깔만큼이나 선명한 희망으로 새로운 시대를 시작했다. 하지만 부패는 쿠바 국민이 꿈꾼 새로운 시대를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처럼 망가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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