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레콘

14. 말레콘

#316 1940

by 조이진

1940

 그가 취임한 1940년 무렵의 쿠바 경제는 무척 안정적이었다. 바티스타의 취임에 선물이라도 보내듯 미국이 쿠바가 생산한 설탕을 전량 사줬다. 쿠바는 최근 10여 년과 비교하면 최대치의 설탕을 생산해 미국에 팔았다. 바티스타의 취임과 동시에 정권의 부패 스캔들도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2백만 달러의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공공사업에 실제로는 십 분의 일에도 미치지 않는 1,600달러만 공사대금으로 지급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용되지 않은 거액의 공금은 속칭 ‘빈 병bottellas’이라고 불리는 자들에게 빠져나갔다. ‘빈 병’은 실제 고용하지 않은 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허위 장부를 꾸며 돈을 빼가는 자들을 부르는 은어였다. 이 자금으로 ‘일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선거 때 표를 매수하고, 군중 집회에 동원했다. 바티스타의 교육부 장관은 수 천명의 가짜 직원 명부를 이용해 돈을 빼돌려 마이애미에 실어 갔다. 심지어는 정부 은행에 걸어 들어가 엄청난 달러를 꺼내 1시간 뒤에 마이애미 공항에 도착했다. 세관 직원이 얼마냐고 묻자 190만 달러라고 대답하고는 워싱턴에 전화해 보면 그들도 아는 돈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미국에는 얼마 이상의 돈을 미국에 들고 입국할 수 없다는 법이 없었다. 새로운 장관이 입각하면 첫 취임 사무는 이런 일이었다. 그는 아바나에서 가져온 비자금으로 마이애미에 거대한 건물을 세웠고 호화로운 저택과 아파트를 소유했다. 그의 동료 각료들이 소유한 호텔들이 마이애미 비치에 줄지어 들어섰다. 교육부 장관은 제당 회사와 운송회사를 소유했고 아바나 동부 해안 바닷가 지역에 거대한 토지를 관광지로 개발했고 프로야구팀도 운영했다. 모두 대통령과 함께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스캔들이 바티스타가 대통령에 취임한 해인 1940년부터 1952년까지 비일비재했다. 형식적으로는 쿠바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활짝 피어났다고 평가받는 그 기간에 세 명의 대통령이 선출되었지만 그들은 한 결로 국민을 배신했다. 

1942년의 바티스타


바티스타 집권 시기에 미국 출신 마피아 메이어 랜스키가 ‘아바나의 밤의 대통령’이었다. 1944년에 바티스타는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한 1940년의 헌법 정신을 지키기 위해 재선에 출마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재선 계획을 포기한 바티스타는 랜스키와 함께 야당 후보와 접촉했다. 야당인 정통당Auténtico 후보는 100일 혁명 정부를 이끌었던 그라우였다. 비밀협상을 마무리 지은 뒤 바티스타는 자신의 불출마 선언과 함께 후계자인 여당 후보자를 간택해 선거에 내보내고 지지한다고 했다. 바티스타가 추천한 여당 후보는 국민에게 알려지지도 않고 지지 세력도 없었다. 바티스타 정권은 여당 후보의 당선을 위한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또 관권을 동원하거나 돈을 살포해 표를 매수하는 등의 부정이 전혀 없도록 선거를 관리했다. 그라우의 선거 슬로건은 “쿠바 인민을 위한 쿠바”였다. 그는 재정적으로 미국에 독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현 방법이나 가능성은 아무것도 제시되지 않았다. 또 정직한 정부로 개혁하는 정부가 되겠다고도 약속했다. 무엇보다도 1933년 혁명 이후 지금껏 실현되지 못한 오랜 혁명의 이상을 자신이 실현하겠노라 했다. 국민은 혁명 정부를 이끌다 바티스타에 의해 쫓겨나 마이애미에 머물던 망명 정객 그라우를 쿠바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바티스타는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하고 플로리다로 떠났다. 그라우의 두 번째 통치가 시작되었다. 쿠바 국민은 희망에 가득하였다. 1933년 혁명의 꿈이, 스페인에 독립하기 위해 긴 세월 투쟁했던 결실이, 인종차별과 노예살이로 서러웠던 세월 동안 꿈꾸었던 세상이 이제야말로 실현된다고 기뻐했다.

바티스타와 '밤의 대통령' 랜스키. 랜스키는 쿠바 혁명 전날까지 쿠바의 밤을 지배한 마피아였다.

막이 올랐을 때 믿을 수 없는 현실이 국민의 눈앞에 또 펼쳐졌다. 이번에는 그라우의 집권 세력이 헌법을 방패 삼아 쿠바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도둑질했다. 중앙정부에서 시골 말단의 공무원까지 횡령, 뇌물, 매관매직 등 온갖 부정한 일들이 만연했다. 취임식을 마치고 그라우가 열어본 국고는 텅 비어있었다. 바티스타가 퇴임하기 전에 재무부의 국고를 모두 마이애미로 빼돌렸기 때문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바티스타의 통치 기간에 있었던 일로 수사받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미혼인 그라우는 애인을 퍼스트레이디로 지명했고, 모든 마약 거래와 배급 사업을 총괄하게 했다. 쿠바 수출물량의 90%가 미국으로 향했다. 쿠바 같은 주변부 국가가 미국 같은 중심부 국가에 수출 의존적 경제체제를 갖게 되면 주변부 국가는 사실상 수탈당하는 경제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쿠바에서 필요한 상품들은 모두 다 미국에서 사들여온 것들이다. 같은 양의 설탕을 수출한 대금으로 되사올 수 있는 미국 제품의 양이 줄었다. 아바나 사람들은 뉴요커에 비하면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가난했지만, 아바나는 물가는 가장 물가가 비싸다는 뉴욕보다도 더 비쌌다. 종속관계를 탈피하려면 수출의존도를 줄이고 대체 산업을 육성하여야 하는데 도둑질에 전념하는 그라우 정권은 쿠바가 미국에 완전하게 종속되고 있다는 인식도 없었다. 미국 초콜릿 기업들은 쿠바에는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선거 때 경제적으로 미국에 독립하겠다는 그라우는 선거 공약은 헛된 말 잔치였다. 독립 전쟁 때 해방군으로 싸웠던 유공자들에 대한 연금은 한 번도 지급되지 않았다. 4년간 부정 축재에 재미를 본 그라우와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은 바티스타가 모범적으로 수호한 헌법 정신을 지키기 위해 그라우의 국무총리를 지낸 프리오를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내보내 당선시켰다. 그라우가 아바나 대학 교수였을 때 아꼈던 학생 운동가였었던 프리오는 스승이 보여준 부정부패를 훨씬 능가했다. 그의 개인 저택에는 수영장은 물론 분수와 동물원도 있었고, 아라비아산 경주마도 있었다. 언론은 그의 집을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호화로운 저택’이라고 했다. 바티스타와 군인들이 ‘뛰는 놈’이었다면 그라우와 학생운동 출신들은 ‘나는 놈’이라 할만했다. 그라우의 정통주의 세력들이 집권하는 동안에도 학교 건설 같은 기초적인 공공 투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 계몽을 통한 국가 발전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국가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없었다. 쿠바 학생들은 대부분 법률가가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이라고 했다. 법률가가 되면 정치에 진입하기에 유리했고 정치가가 되면 검은 큰돈을 벌기에 쉬웠기 때문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정부 돈을 빼낸 공무원들은 그 돈으로 고급주택을 사고, 유럽 여행을 하고, 마이애미에서 티파니와 롤렉스를 쇼핑하고 은퇴한 삶을 대비해 부동산을 샀다. 바티스타와 그라우, 프리오까지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꽃’이 필 때마다 돈으로 표를 매수했고, 출근할 필요가 없는 공무원 자리가 부지기수로 생겨났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공무원들은 정부 공사를 친인척들에게 발주했고, 업체들은 공사비를 받자마자 얼른 부도를 냈다. 한 언론인은 쿠바에서 공무원 자리는 설탕 다음으로 수익성이 좋은 작물이라고 비아냥했다. 돈으로 매수한 깡패들의 폭력과 정치테러는 일상의 정치적 절차로 자리 잡았다. 마차도 독재 타도 투쟁의 산실이자 쿠바의 유일한 대학인 아바나대학을 사실상 깡패들이 접수했고, 진짜 대학생들은 학교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그라우와 정통당은 입으로는 조국 쿠바와 쿠바 국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돌아서서 국고를 도둑질했고,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쿠바 국민을 바티스타보다 더 심하게 짓밟았다. 그라우의 두 번째 집권은 100일 혁명 정부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도 새 헌법을 앞에 두고 취임 선서하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라우 정권은 헌법보다는 바티스타와 랜스키 3자의 비밀 야합의 다짐만을 충실하게 지켰다. 새 헌법은 그들의 심각한 배신과 부패를 지켜주는 방패막이로만 쓰였다.

Machado-Grau-San-Martin-and-Batista.jpg 바티스타와 밀실에서 만난 뒤 정권을 다시 잡은 그라우와 그 후임자. 이들도 쿠바 국민들을 배신했다. 바티스타 뒤에는 늘 미국과 설탕 자본이 있었다.

도덕의 붕괴가 부패의 원인이기는 했지만, 구조적인 이유도 있었다. 쿠바 경제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미국 자본이 설탕 산업을 장악했고, 민영인 철도와 전기, 수도 같은 모든 공공사업도 미국 자본이 소유했다. 쿠바인이 소유한 것이라고는 부패한 정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12년 동안 세 명의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쿠바의 부패한 민주주의는 ‘안정’적이었고 그 기간에 뇌물과 불법만큼 확실한 사업 성공의 열쇠는 또 없었다. 이 안정적인 민주주의의 시기에 가장 성공적인 사업가는 뇌물과 불법을 핵심 사업역량으로 갖춘 미국 마피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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