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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엘 미나

3. 엘 미나

#044. 아르고의 모험

by 조이진

절대 양피

그리스 전역에서 선발한 54명의 영웅이 모험을 떠났다. 그들은 황금 양피Golden fleece을 찾아오라 왕의 명을 받았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은 아무리 위험한 모험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련을 겪고 이겨내야만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았다. 그리스 신화 속 쟁쟁한 이름들이었다. 헤라클레스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많은 그리스 신화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영웅과 모험으로 가득한 이 이야기를 로마 시대 작가가 글로 옮겨 썼다. <아르고호의 모험Argonautica>이다. 원제목은 아르고호의 선원들이다. 이 문학작품을 영화 예고편 광고문구로 정리하면 인류 최초 액션 히어로 판타지 어드벤처 이야기라고 쓸 수 있겠다. 절대 보물 황금 양피를 찾으러 떠난 원정대가 숱한 어려움 끝에 보물을 갖고 처음 떠난 항구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판타지 어드벤처 장르에 충실한 내용과 결말이다. 작가는 신들의 질투와 인간 영웅의 모험, 사랑과 우정, 배신 이런 이야기들도 꽉 채웠다.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딸이 아버지를 배신하여 아르고 선원과 내통하고, 용의 이빨을 뽑아 거기서 나온 전사들을 무찌르고, 잠들지 않는 용의 눈에 수면제를 몇 방울 떨어뜨려 눈을 감게 해 절대 양모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다.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아르고Argos가 배를 만들었고 아르고호라 불렀다. 이 작품이 서양 문학이 끝없이 우려먹는 원정대 이야기의 원형이다. 서기전 3세기에 쓰인 이 원정대 이야기가 1,400년대 지중해 주변에서 널리 읽히고 유행했다. 이 이야기가 인기가 많았던 탓에 르네상스 시대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리스 신화 그림이 그려졌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상징도 헤라클레스였다.

그리스 신화 영웅 이아손이 왕권의 상징인 황금양피를 가지고 돌아왔다./위키피디아

황금을 찾아서 배를 타고 떠돌아다니기로는 지중해 뱃사람들도 하나로 같았다. 뱃사람들이 이 판타지 어드벤처 원정대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 보물을 가득 싣고 항구로 되돌아오는 모습. 배 탄 자들이 꿈꾸는 판타지의 결말이었다. 젊은 콜럼버스는 배에서 가장 중요한 선원인 조타수로 성장했을 만큼 뱃사람으로 뼈가 굵었다. 항해 경험도 제법 빠지지 않았다. 콜럼버스가 신화 속 영웅들과 기사들의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에 깊이 빠졌다. 특히 존 맨더빌의 <십자군 기사 존 맨더빌 경의 여행>을 좋아했다. 콜럼버스가 문학적 상상을 실존하는 현실의 이야기로 믿었다.


<십자군 기사 존 맨더빌 경의 여행>. 제목으로 보면 작가 존 맨더빌이 직접 여행하여 몸소 보고 체험한 일을 적은 글 같다. 존 맨더빌은 1,350년 무렵에 살았던 영국 작가다. 그는 당시에 유럽 여기저기 떠돌던 여행가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적당히 내용을 덧붙여 마치 자신이 직접 체험한 모험담인 것처럼 글로 묘사했다. 존 맨더빌은 실제 십자군 기사로 참전하기도 했었다. 스페인의 <시드의 노래>, 독일의 <니벨룽겐의 노래>,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가 모두 십자군 기사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판타지 영웅 모험담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중세에서는 매우 전형적인 글이었다. <존 맨더빌 경의 모험>은 그 문학적 전통의 산물이었다. 작품 속에서 기사 존 맨더빌이 가본 세상은 환상과 모험으로 가득 찬 놀라운 상상의 세계였다. 소설 속에서 존 맨더빌은 수평선 너머에 있는 세상을 탐험했다. 인도와 중국, 전설의 숲 아마존, 브라질, 그리고 티베트라는 나라가 묘사되었다. 이곳에는 온갖 기형적이며 엽기적인 모습을 한 괴수들로 가득한 이상한 나라였다. 몸은 사람인데 머리는 개, 손가락 대신 발톱을 가진 사람, 개를 낳는 여자, 뱀 껍질로 쌓인 사람, 겨드랑이 밑으로 머리가 난 인간 괴물, 하체는 물고기인데 상체는 여자의 몸을 지닌 괴물, 머리는 없고 눈, 코, 입, 수염이 몸통에 붙어 걸어 다니는 사람, 외눈박이 사람, 초대형 뱀장어, 집 지붕보다 큰 알을 낳는 거북 같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괴수 캐릭터들이 숱하게 등장했다. 하나의 뿔로 하늘을 나는 말 유니콘도 이 무렵에 처음 나타났다. 그 세상에서는 앵무새가 고대 그리스어로 말을 하면서 원숭이와 체스를 두었고, 끝없이 넓은 후추 숲이 있고, 귀금속과 보석이 땅바닥과 냇가에 쏟아져 있었다. 6개월 만에 아이를 낳는 피그미라는 괴수 캐릭터도 인도에 살고 있었다. 존 맨더빌의 이야기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등 여러 유럽 언어로 번역되어 팔렸다. 독일에서도 인쇄술이 개발되었다. 이 작품은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쇄된 베스트셀러였다. 미술가들이 이런 상상의 세계와 기이한 캐릭터를 그리는 것은 유행이었다. 플랑드르 작가가 보쉬 H. Bosch가 가장 대표적이다. 1490년에서 151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그의 대표작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은 알 수 없는 기괴한 캐릭터와 잔인한 장면으로 가득하다. 사람을 삼키는 새 머리를 한 괴물, 꼬챙이에 꿰인 사람,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할만한 캐릭터들로 가득 그려져 있다. 이 시대 분위기를 모르는 평론가들은 초현실주의 화풍이 엿보인다고 과찬하지만, 그것은 존 맨더빌이나 아르고호의 신화,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같은 이야기들에서 흔하게 묘사된 외부 세계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 세계였다.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이 그려진 시기를 눈여겨보아 두자. 콜럼버스가 카리브에 도착한 때가 바로 그때다.

documentTitle_928899731524462074462.jpg H. 보쉬의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 외부 세계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종말론적 세계관에 가득 찬 유럽인의 의식을 반영했다.

+ 그리스 신화 속 황금양피의 나라 콜키스는 오늘날의 조지아다. 조지아 바투미시 중앙광장에는 황금양피를 들고 선 메데이아 동상이 서있다.

+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이아손은 왕의 딸 메데아의 도움을 받아 아이에티 왕에게서 황금 양털을 훔쳤다. 황금양털을 훔친 콜카티Kolkhati 또는 콜카Kolkha는 엄청나게 부유한 땅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지역이 오늘날 조지아 바투미 지역이다. 바투미시 한 가운데 유럽광장에 황금양모를 든 콜카티 메데아 공주의 동상이 서있다.

Order-of–the–Golden-Fleece.jpg 황금양모를 들고 있는 콜카티 메데아공주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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