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토스카넬리
토스카넬리
<동방견문록>이 쓰인 지 200년이 지났다. 이 책이 쓰였을 때는 고대 그리스 프톨레미가 주장한 지구 중심의 우주론으로 세계를 이해하던 때였다.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돈다는 천동설이었다. 콜럼버스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때에 <동방견문록>은 벌써 많은 지리학자에 의해 터무니없는 내용이라 탄핵당한 때였다. 프톨레미 학설을 기준으로 지리학자들이 동방견문록을 들여다보니 그렇게 큰 섬과 땅덩이가 유럽과 사이에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아직 어렸으니 지동설은 주장되기 전이었다. 콜럼버스는 천동설의 중세 지리학과 프톨레미 지리학에 기반을 두어 항해계획을 세웠다. 스페인 왕실에 자신의 항해계획을 설명할 때 프톨레미 지리학을 근거로 내세웠다. 현대 지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프톨레미가 틀렸고 콜럼버스가 맞았다. 현대 지리학을 알지 못했던 콜럼버스가 선택적으로 프톨레미 학설을 채택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환상과 기대에 부합하는 부분은 인용하고,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감추었다.
콜럼버스가 당대 지리학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데는 근거가 있었다. 피렌체는 14세기~16세기 무렵에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앞선 도시였다. 이 도시에는 당대에 가장 뛰어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파울로 토스카넬리도 있었다. 몽골제국은 킵차크한국, 일 한국, 차가타이한국, 원나라로 나뉘었다. 몽골의 여러 한국이 중국과 인도에서 지중해로 들어오는 교역로를 가운데서 독점했다. 무역과 금융으로 성장한 도시 피렌체. 길이 막히자 무역과 금융업이 힘을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중해와 흑해 주변을 이슬람의 오토만 제국이 또 차지했다. 피렌체는 필사적으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이탈리아의 많은 상인과 금융자본이 이미 포르투갈로 이전했다. 서쪽 바다에만 길이 있었다. 그때 자본의 이익에 부합한 대표적인 학자가 토스카넬리였다. 그는 서쪽으로 항해하면 단 며칠이면 마르코 폴로가 말한 가타이 한국에 도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근거로 한 항해 계획서와 자신이 그린 새로운 지도를 포르투갈 국왕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1474년에 포르투갈 왕실에 그가 보낸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많은 사람이 포르투갈에서 인도까지 가는 바닷길이 포르투갈에서 기니까지 가는 거리보다 짧다고 말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리스본에서 중국에 있는 거대하고 부유한 도시 킨세이Quinsay까지는 약 1만 킬로미터 되고, 그 사이에 안틸리아Antilia와 지팡구가 있습니다. 지팡구는 사원과 왕궁이 순금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리고 가타이에서는 교역할 만한 진귀한 물건들이 많아 상업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둘 수 있음은 물론이고, 금은보화와 온갖 종류의 향신료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곳은 많은 학자와 예술가와 현인들이 다스리는 품격 있는 땅입니다.” 토스카넬리의 이 설명과 지구 거리 계산법 같은 것들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흔한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당시 항해와 관련한 지식과 기술이 가장 앞선 포르투갈이 보기에는 토스카넬리가 지구의 크기를 턱없이 작게 계산했고 따라서 항해 거리도 터무니없으니 도착은커녕 가다가 굶어 죽을 것이 빤한 항해계획일 뿐이었다. 생각이 같은 자들끼리 통했다. 콜럼버스가 토스카넬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콜럼버스 씨, 당신 생각은 옳소. 가타이로 가려면 동쪽 육지로 가는 것보다 또는 아프리카 남쪽 끝을 돌아서 가는 것보다 서쪽 바다로 곧장 가는 게 훨씬 가깝다고 나도 믿고 있소. 포르투갈 왕 알폰소 5세에게 내 생각을 전하고, 서쪽 항로를 탐험하도록 권했지만, 그 왕은 내 제안을 믿지 않았소. 당신은 젊으니 계획대로 일을 성공시키기를 진정으로 빌겠소.” 이 한 장의 편지로 콜럼버스는 퍼즐을 완성했다. 확신에 찬 그는 이제 완전히 외눈박이가 되었다. 서쪽으로 단 며칠만 가면 지팡구에 도착할 것이고, 그곳은 황금과 향신료가 가득한 곳이고, 마침 그곳은 기독교가 아닌 이단자들의 땅이므로 마음껏 죽이고 빼앗아서 오면 될 터였다. 거기서 빼앗아 오는 황금은 지구 종말 이후에 새로운 천년왕국 예루살렘을 세울 솔로몬의 황금이 될 터였다.
그 편지 속에는 지도가 들어있었다. 토스카넬리가 그려준 지도. 콜럼버스는 첫 번째 항해 때 이 지도를 가지고 항해했다. 콜럼버스는 토스카넬리가 계산한 지구의 크기를 그대로 믿었다. 그랬으니 자신이 발견한 것이 지팡구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이었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도 알 수가 없었다. 잘못된 지도를 믿고 가서 카리브는 발견했지만, 콜럼버스 대륙이라는 이름을 얻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