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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엘 미나

3. 엘 미나

#053. 종말

by 조이진

155년

콜럼버스가 죽고 난 후 팔로스의 항구를 함께 걸었던 아들은 책의 표지에 <예언서>라는 제목을 써넣었다. 책은 콜럼버스가 모은 자료집이었다. 이 책을 <예언서>라고 이름 붙인 데는 콜럼버스가 자신의 종교적 환상과 세계의 종말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모아놓은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살았던 때는 예수 탄생 1,500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대개 기독교의 종말론은 큰 숫자의 해를 맞이할 때 극성을 부린다. 요한계시록의 종말론과 예언이 실현될 때가 다가왔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무슬림 오스만에게 함락당했다. 이슬람이 승리했고, 이슬람은 다시 한번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콘스탄티노플 함락 소식에 울며 가슴을 쳤고, 교황은 다만 기도를 올릴 뿐 움직일 줄 수 없었다. 러시아 정교회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온 예언이 있었다. 예수가 제8천년기가 시작될 때 와서 마지막 심판을 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악마의 힘이 속박에서 풀려나 기독교 세계를 괴멸할 타격을 가하고 있는 이 시기가 예언이 실현될 시점인 듯했다. 러시아에서 사용하고 있던 동로마 역법을 근거로 삼으면 그 시점은 분명했다. 예수 탄생 전 5508년의 창조 날짜를 이용하면 세상이 종말을 맞을 날짜는 1492년 9월 1일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기독교 유럽의 시간의 종말이 임박했다. 인류는 현재 어디에 와있고, 또 언제 역사를 마감할 것인지, 아마게돈의 순간에 심판의 방식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했다. 콜럼버스는 <예언서>에서 종말의 시간을 계산했다. 먼저 세상이 창조된 뒤로 그때까지 지난 시간을 계산했다. 그리고 “세상의 창조 때 또는 아담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왔을 때까지 5,343년하고 318일이 지났다”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거기에 11세기 코르도바의 모슬렘 학자 아르자헬의 관찰에 근거하여 스페인 알폰소 10세 때 학자들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1,501년을 더 지나온 셈이다. 그러므로 창세부터 올해인 1,481년까지는 모두 6,845년이 지나게 된다”라고 결론지었다. 즉 지구 또는 우주 나이가 6,845살이라고 계산해 낸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인용했던 박학한 견해에 의하면 이 세상은 7,000년이 되면 종말이 오는데 앞으로 종말까지는 이제 155년이 남았다”라고 했다. 러시아 정교회가 예측한 세상의 종말일은 1492년 9월 1일이었지만, 콜럼버스는 서기 후 1,656년에 지구 종말이 온다고 성서의 비밀을 그가 밝혀낸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초조했다. 7,000년이면 종말이 온다는 계산의 근거는 이랬다. 천지창조에 7일이 걸렸는데 그 하루가 1,000년에 해당한다고 계산했다. 베드로후서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이 문장이 근거였다. 이 어처구니없는 계산을 처음 한 자가 콜럼버스는 아니고, 아우구스티누스다. 콜럼버스는 아우구스티누스 시절의 생각을 근거로 종말의 시한을 밝혀낸 것이다. 당시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의 기록을 기준으로 연대를 계산하고, 종말의 시간을 예언하려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우리가 아는 뉴턴이 대표적인 과학자다. 수학자 케플러도 그랬고, 철학자 파스칼도 그랬다. 콜럼버스는 심지어 적그리스도인 이슬람 세력이 언제 몰락할지도 입증해냈다. 지구가 종말이 오는 그 시점에 적그리스도인 이슬람이 몰락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끔 되어있었다. 요한이 기록한 그렇게 되리라는 하느님의 계시가 그런 계산들의 근거였다. 콜럼버스는 기독교도들이 입으로만 떠들뿐 예루살렘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에 분노했다.

3_The_Fall_of_the_Rebel_Angels_a1.jpg 브리겔 <악에 맞서 전투하는 천사의 추락>(1562). 흰옷입고 나팔을 부는 일곱천사가 사탄과 싸우고 있다.

가장 뜨거운 주제는 그러면 과연 새 예루살렘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관한 것이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예언서>에 “칼라브리아 출신의 요아킴 수도원장이 말하기를 시온산의 성전을 재건할 사람은 스페인에서 나온다고 했다”라고 적었다. 요아킴 수도원장의 말을 근거로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 페르디난드가 새 예루살렘을 세우고 천년왕국의 주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155년 지나면 페르디난드가 재림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스페인 국왕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라는 신의 명령을 엄숙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추진해야 마땅하고, 자신이 이 기획의 총체적 구현자가 되겠다는 뜻을 세워 보였다. 아멘. 페르디난드 국왕에게 이것은 달콤한 당근이기도 하고 무서운 채찍이기도 했다. 만일 페르디난드가 콜럼버스의 탐험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계획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저해하는 죄인이 되는 것이었다. 콜럼버스는 이 책 <예언서>를 국왕에게 헌정하려 작성했다고 했다. 실제 헌정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 때 페르디난드 국왕은 요아킴 주의자 신부를 배에 태울 것을 지시했다. 새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방법을 알아보려 했을 것이다. 이 신부가 아메리카에 상륙해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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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주석이 빼곡한 <동방견문록>


이제 겨우 155년 남았다. 콜럼버스도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와 같이 세기말 종말론 광신도였다. 콜럼버스에게 항해는 불과 155년 뒤에 닥칠 심판과 새 예루살렘에서 천년왕국을 건설할 성스럽고 위대한 준비였다. 이것은 또 하나의 십자군 성전이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류사는 에덴동산에서 시작했고, 새 예루살렘에서 끝난다. 에덴동산이 인류 역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콜럼버스가 볼 때 새로운 지상 낙원의 발견은 역사가 종말로 진행하는 중요한 단계였다. 그러므로 앞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은 에덴동산과 예루살렘을 되찾고 다시 세우는 일이다. 에덴동산을 찾으려면 예루살렘을 먼저 차지해야 했다. 예루살렘을 찾으려면 동쪽으로 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스페인의 예루살렘 정복 전쟁에 앞서서 황금을 실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황금의 땅 지팡구와 가타이를 빼앗아 와 그 황금으로 새로운 예루살렘을 건설할 자금을 댈 요량이었다. 그의 책 <예언서>에 이런 문장이 있다. “황금을 소유한 자는 이 세상에서 그가 원하는 일을 다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혼도 낙원으로 보내줄 수 있다.” 그의 가슴 속에는 황금은 늘 하느님과 함께 있으며 하느님을 보좌하는 또 다른 신이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는 꼭 황금이 필요했다. 그에게는 낙원과 황금은 지구 종말의 양면이었다. 그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 기독교는 황금을 하느님 보듯 했다. 가톨릭은 고상한 종교를 내걸어 돈을 추구하는 이익 기구였다. 심지어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헌금만 내면 매춘 사업도 승인해주었다. 그러더니 자신도 매독에 걸려 죽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 스페인 아라곤 출신. 황금으로 잔뜩 치장한 복장을 입고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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