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미니 카니스

#055. 벨라

by 조이진

벨라

사랑하는 힘과 미워하는 힘. 창조된 세상이든 진화하는 세상이든 인간 세상은 이 두 개의 힘이 투쟁해 온 역사다. 미움마저 창조해 둔 창조자는 또 사랑을 구하라 했다. 그런 창조자야말로 인간의 미워하는 힘의 근원이자 투쟁의 연료였다. 흰 셔츠에 시큰한 오렌지 향기 짙게 젖는 그라나다. 늙은 햇볕 받아 더 붉어지는 이 성이 보듬고 있는 미움의 시간은 마타도르의 칼에 꽂힌 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드러누운 투우처럼 핏빛으로 붉다.


알람브라의 벨라Vela 타워 꼭대기에서는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드센 바람을 맞으며 눈 덮인 네바다 산맥을 저 멀리 아련하게 볼 수 있다. 모슬렘 타이파는 이 탑을 드넓은 그라나다와 베가vega 평원의 풍광을 보기 위해 짓지 않았다. 벨라 타워는 술탄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는 천문대였다. 아랍인들에게도 술탄이 별자리를 보는 천문대가 있는 곳은 신과 왕이 있는 곳, 메카였다. 그러므로 천문대인 벨라 타워는 이 붉은 성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었다.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군사가 레콘키스타를 마친 뒤로 천문대에 모슬렘 시절에는 없었던 종을 새로 달았다. 새로 매단 종은 미움으로 승리한 승자의 신앙을 상징하는 기독교식 종이었다. 정복자 가톨릭 국왕 부부는 천문대 너른 마루에 앉기를 즐겼다. 성의 새 주인은 이 종탑을 벨라 타워Torre de la Vela라 이름 붙였다. 네바다 산자락에서 불러오는 선선한 바람결을 느끼며 시원한 포도주를 마시며 벨라 별자리를 보았다. 이 성에서는 남쪽 하늘에서 벨라를 볼 수 있다. 벨라는 4개의 별자리다. 4개의 별을 연결하면 바람을 가득 품어 풍만하게 부푼 돛으로 보였다. 별자리 생김새가 배를 닮았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 속 아르고호Argo Navis가 항해했을 때 선원들은 이 별자리를 좌표로 삼았다. 그래서 벨라는 헤라클레스와 영웅들이 모험을 떠날 때 탄 배 아르고를 상징했다. 벨라는 뱃사람들에게는 돛이라는 뜻이었다. 신화 속 영웅들이 그랬듯이 지중해 뱃사람들도 벨라를 보며 바다를 항해하고 사막을 건넜다. 엔히크도 마젤란도 벨라를 보고 항행했다. 그래서 그들의 뱃머리는 늘 남쪽 바다로 향했다.

20b1b683-b985-439d-b9b5-a8d302213a9f.jpg 알함브라 성. 눈 덮인 네바다산맥을 뒤로한 성은 베가 평원을 내려다볼 수 있다. 가운데 네모난 건축물이 벨라 천문대다.

벨라 별자리를 보고 영웅 이아손이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신화 속 영웅들과 함께 황금 양털Golden Fleece를 찾아 은하수 강을 건너 <아르고호Argonautika 원정>을 떠났다. 황금 양털을 가진 자가 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신화 속에서 황금 양털은 옥새이자 절대 반지였다. 원정대는 황금 양모가 있는 코카서스 콜치스로 갔다. 오늘날 조지아공화국이 있는 지역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지도는 그 땅의 왕국과 지역 이름 '이베리아Iberia 왕국'이라고 표기했다.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와 같은 이름이다. 코카서스의 이베리아도 ‘밝족Ivirk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었다. 로마인들은 이 두 지역 다 이바르족이 사는 땅 이베리아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곳을 동방 이베리아Eastern Iberia라 했고, 스페인이 있는 반도 땅 이베리아를 서방 이베리아Western Iberia라고 했다. 로마는 두 밝족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가까이 여겨 교류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이 아르고호를 타고 코카서스 이베리아로 떠났다. 아르고호 원정 신화에서 최고의 영웅은 헤르메스의 증손자 이아손이었다. 이아손은 영웅들과 함께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밝족의 땅에서 황금 양모를 갖고 돌아와 포세이돈의 아들 펠리아스Pelias에게 바쳤다.

Order-of–the–Golden-Fleece.jpg 조지아공화국 바투미시 광장의 황금양피 동상

벨라 타워Torre de la Vela에 올라 벨라 별자리를 올려보던 가톨릭 국왕 부부는 자신들의 아르고 항해Argo Navis를 꿈꿨다. 이 부부는 전형적인 중세인. 그런 그들이 전설 같은 그리스의 신화 이야기, 그것을 글로 적은 서사문학 <아르고호 원정>, 그 책에 영향을 받아 창작된 <맨더빌 경의 여행기>, 그리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머리 없는 종족, 큰 외발 괴물, 몸은 말이요 머리는 사람인 켄타우로스 캐릭터로 가득한 판타지 이야기, 황금으로 지붕을 인 지팡구 섬 이야기가 진실이었다. 황금 양모를 가진 자가 왕으로 인정받았듯이, 그들은 막대한 황금을 얻어 진정한 왕이 되기를 꿈꿨다. 현세에는 그들보다 더 강한 왕은 유럽에 없었다. 그들은 지금 성경의 마지막 책이 계시한 예언을 믿고 있었다. 그 계시록이 말한 대로 새로운 예루살렘 왕국에서 영원히 사는 왕이 되는 꿈을 꾸었다. 레콘키스타가 끝나고 벨라의 종이 베가 평원에 울릴 때마다 어느 한쪽의 세상은 정말로 종말이 시작되었다. 이제 세상은 미움으로 움직이는 세상으로 선포되었다. 사랑과 관용으로 움직인 세상은 레콘키스타와 함께 마감되었다. 이 탑에서 이루어진 그날의 드센 미움의 바람. 이 도시에서 벌어진 미움의 시간은 참혹했다.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의 반도 땅 이베리아에서도, 부부가 아르고 항해로 찾아가고자 했던 동방의 이베리아에서도 검은 피가 더께가 되어 대지를 덮었다. 거룩한 신의 이름을 앞세운 미움일수록 더 야만적이고 잔인했다. “산티아고!”의 이름으로 불 붙인 장작더미가 더 느리고 오래 탔다. 살을 태우는 냄새도 더 검고 고약했다. 벨라 타워의 종소리는 죽은 자를 태운 그을음에 뒤섞여 그라나다의 하늘을 어둡게 덮었다. 기독교인들은 벨라의 종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신이 그런 하늘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달콤한 오렌지 향기는 그라나다의 거리에서 사라졌다.

Argo_Navis_Hevelius.jpg 아르고호의 항해. 신화는 유럽인들의 모험을 자극했다.

그라나다의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다로Darro 강을 사이에 두고 왼편으로는 집시들이 산비탈에 동굴을 파고 사는 사크로몬테Sacromonte, 그 옆 양지바른 산비탈에는 알바이신Albaicín이라는 아랍인 바리오가 있다. 알바이신의 골목길은 옹색하리만큼 좁고도 길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음 이곳 알바이신에 왔을 때 이바르 족이 먼저 살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렇게 보니까 알바이신 마을은 뒤로 산을 짊어진 채 산 아랫자락에 자리를 잡았고 그 마을 곁을 물길이 휘감아 흐른다. 그리고 해를 바라보는 남향의 살짝 높은 곳에 터를 잡았다. 로마인들이 들어와서 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바르 족과 함께 살았다. 그렇게 피가 섞여 순수 이바르 혈통은 사라졌다.


알람브라가 우뚝하다. 알람브라는 단 하나의 붉은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또 알라가 지켜주는 성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로강 너머에 붉은 돌가루로 지었으므로 이 성은 붉다. 알람브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레알레호Realejo라는 유대인 바리오가 있다. 페니키아 사람들이 유대인을 노예 삼아 데려오기 시작했으므로 유대인들은 이 도시의 지배층보다 낮은 평지 마을에 자리 잡아 살았다. 그라나다에는 유대인 바리오, 아랍인 바리오가 있었다. 알바이신, 사크로몬테, 다로 강, 알람브라, 레알레호가 부채처럼 펼쳐지는 그 한가운데 광장이 있다. 가톨릭 여왕La Católica이라 칭송받는 이사벨라 여왕의 동상이 서 있는 이 광장이 그라나다의 한 중심이다. 이사벨라가 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그라나다에는 7만 가구 4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알람브라는 800년 모슬렘 지배가 남기고 간 최고의 보석이다. 알람브라를 건축한 모슬렘들은 알람브라의 테라스에서 보는 눈 쌓인 네바다 산 너머에 천국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알람브라가 아름다운 것은 그 붉은빛 때문만도 아니고, 알라가 지켜주는 견고함 때문만도 아니다. 한때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이 실행했던 신의 정신, 관용할 수 없음을 관용했던 톨레랑스의 경이로운 시간을 상징했기 때문에 알람브라는 아름답다. 예수의 정신이 오직 순수하게 인간에게 받아들여져 알라의 제자들도 실행한 관용. 모든 신과 인간이 서로 하나에 다다르고 이어진 이 정신이야말로 알람브라의 아름다운 붉은빛이다. 자유로운 학문과 다양한 문화가 석류 알처럼 꽉 들어차 붉게 반짝였던 그라나다. 이제 그라나다라는 보석은 마른 석류 알처럼 그 생기를 다했다. 사랑과 미움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그라나다만큼 증명해 주는 곳은 없다.



+ 조지아 사람들은 스페인 이베리아와 구별하기 위해 자신들을 코카서스 이베리아Caucasian Iberia라고 불렀다. 서쪽의 반도 이베리아처럼 코카서스 이베리아에서 발견된 고인돌도 3,000기가 넘는다. 약 8,000년 이 지역 이바르민족이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했다.

조지아공화국의 고인돌. 코카서스와 발칸 지역에도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조지아공화국에 산재한 고인돌. 코카서스와 발칸 지역에도 고인돌이 많이 분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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