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 겟세마네의 기도
겟세마네
꽃은 여전했다. 그라나다의 담벼락은 석류꽃과 재스민이 가득했고 골목을 따라 흐르는 바람은 오렌지 향기에 달았다. 이사벨라가 알람브라를 차지한 후로는 도시에 흐르는 공기는 아주 달랐다. 종교를 기준으로 행정 구역을 강제로 구분했다. 신의 이름으로 차별하고 미워하고자 함이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을 모두 골라냈다. 바리오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바리오에 사는 자는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유대인 바리오를 게토ghetto라고 불렀다. 알람브라에서 내려와 이사벨라 여왕 동상 앞을 반듯이 뻗은 길이 가톨릭 국왕부부 대로다. 동상이 있는 자리에서 이사벨라 부부는 항해를 떠나는 콜럼버스를 환송했다. 대로 왼편에 아름다운 돔이 있는 그라나다 대성당이 있고 그 옆에 카피야 레알Capilla Real이라는 대성당이 있다. 이곳이 레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드 왕 부부가 묻혀 있기 때문이다. 레알 대성당은 정통 고딕 양식이다. 고딕은 기독교 문화를 상징한다.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는 죽어서도 고트족의 후예임과 기독교도임을 자부하고 있다. 이 성당 안에는 당대 최고의 조각가와 미술가들의 작품들도 숱하다. 보티첼리의 그림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도 있다. 보티첼리는 스스로 만든 계산법으로 1503년에 종말이 온다고 믿었다. 그 시절에는 온갖 다양한 계산식의 종말론이 전염병처럼 창궐했다. 그가 종말과 휴거의 날에 깨어있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그렸다. 콜럼버스는 1492년에 항해를 떠났다. 보티첼리의 종말과는 불과 10년이 남았다. 시간이 없었다. 콜럼버스도 자신만의 남다른 종말 셈법이 있었다. 그의 계산으로는 아직 100년이 더 남았다고 계산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보티첼리가 맞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도 늘 기도했다.
이사벨라의 사후 500년이던 몇 해 전 로마 교황청은 그녀를 성 이사벨라Saint Isabella로 성인 시복할지를 논했다. 로마 교회는 이사벨라를 아메리카에 기독교를 전파한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인류역사상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에 견줄 수 있는 대량 학살 범죄자는 드물다. 이사벨라 시대에 스페인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심문은 잔인했고 학살은 광적이었다. 이사벨라의 식민주의는 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을 이단이라는 이유로 불태웠고 노예 삼아 착취해 죽였다. 원주민들이 죽은 자리는 아프리카인들을 잡아다 채웠다. 이사벨라의 식민주의 모델을 유럽 기독교 세력들이 뒤따랐다. 여러 스페인 왕,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기독교와 황금을 신봉한 식민주의자들이 세상 여러 곳에서 사람을 대량 학살했다. 그 세월이 500년이다. 식민제국주의자들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다. 가톨릭 교황청도 자신들의 잘못을 부끄러워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 성 이사벨라 시복 논쟁은 부끄러운 기독교, 광기 어린 스페인의 모습을 다시금 드러내 보였다.
스페인어 바리오barrio는 '구획된 영역, 지구'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난민수용소였던 '가자지구'도 바리오의 일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