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미니 카니스

#057. 알람브라

by 조이진

붉은 성

정의의 문에는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 손이 걸려있다. 알람브라에 들자면 좁은 이 문을 지나야 만 한다. 어느 곳 한 군데 섬세하고 화려하지 않은 곳이 없는 알람브라에서 이 손만은 소박한 선으로 채색 없이 담담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이 성을 지은 이들에게 이 손은 의미가 깊다. 다섯 손가락은 신에게 이를 수 있는 다섯 가지 길이 있음을 문을 드나드는 이들에게 가르친다. 믿음과 사랑, 기도와 금식, 메카 순례가 그것이다.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니 어떤 꾸밈도 감히 할 수 없었으리라. 다섯 손가락이 새겨진 정의의 문을 지나면 저 멀리 네바다 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모슬렘들은 그곳 너머에 마호메트가 예언한 천국이 있다고 여겼다. 이곳에 성을 쌓은 이들은 마침내 이곳이 신이 아브라함의 기도에 응답해 주는 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신이 머무는 땅에 마땅하도록 환상의 성을 지었을 것이다. 이 성의 방들은 사랑하는 임을 그리는 시와 노래를 건축으로 옮겨놓았다. 무늬로 새겨 놓았고 꽃으로도 심어 놓았다. 이 성의 방 하나하나는 그들의 노래 무왓샤샤처럼 같으면서도 다른 운이 선으로 면으로 끝없이 반복되었다. 방마다 매혹적인 한 편의 시요 노래다. “단 한 분의 승리자만 계시다. 그분은 알라신이다.” 벽을 타고 하늘로 날아가는 이 아랍어로 된 글귀를 가톨릭 국왕 부부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 문장의 뜻을 알았다면 아마 이 성은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알람브라의 정의의 문

아랍어 코마레스Qumaris는 높은 성이라는 뜻이다. 카피야 레알을 마주 내려다보는 코마레스 타워Torre de Comares는 45m나 되는 알람브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이 건물에는 7개의 방이 있고, 그중 하나에 술탄의 침실이 있었다. 침실에서는 그라나다 전체를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술탄의 도시에는 이슬람을 믿는 자도, 기독교를 믿는 자도, 유대교를 믿는 자도 모두 섞여 같은 시장에서 장을 보았고, 각자의 예배당에서 각자의 신에게 기도할 수 있었다. 아랍인 바리오도 유대인 게토도 없었다. 1492년 코마레스 타워의 앰배서더 홀에서 역사적인 두 일이 있었다. 하나는 술탄이 그라나다를 포기하고 북아프리카로 떠난다는 계약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가톨릭 국왕 부부에게 그라나다를 넘겨주는 항복 조건을 협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술탄의 어머니가 이 타워의 발코니에서 그라나다를 내려다보며 아들에게 말했다. “당신이 지금 적에게 내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아두세요. 그라나다의 왕으로서 이곳에 묻힌 선조들을 꼭 기억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이 왕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왕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술탄은 이사벨라에게 이 방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그라나다를 빼앗은 후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 가톨릭 국왕 부부는 알람브라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앰배서더 홀에서 콜럼버스를 접견하고 대서양 항해계획을 승인하고 항해에 성공했을 때 예우와 보수에 관한 계약에 서로 서명했다. 이것이 1492년에 이 방에서 이루어진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이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천국도 일곱 개, 지옥도 일곱 개다. 그래서 이 건물의 출입문 아치는 일곱 개다. 콜럼버스는 천국일지 지옥일지 모를 아치를 지나 알람브라를 빠져나왔다. 몇 달 뒤 그는 카리브에 도착했다. 기독교도들에게 카리브는 일곱 개의 천국이었고, 원주민들에게는 일곱 개의 지옥이 열렸다. 그 일이 있기 바로 몇 달 전 국왕 부부는 또 하나의 작은 결정을 이 방에서 했다. 코마레스 타워의 발코니에서는 맞은편 산비탈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유대인 바리오가 잘 보인다. 그 유대인 마을을 내려 보면서 이사벨라는 그라나다에 사는 모든 유대인을 이베리아 바깥으로 추방한다고 결정했다. 그때도 알람브라에는 천국의 꽃이라는 아라야네스가 피어 있었다. 맑은 수면에 비친 코마레스 타워의 반영이 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image_readbot_2018_7852_15150305533159882.jpg 이베리아에 마지막 남은 모슬렘 술탄이 북아프리카로 떠났다. 기독교도 이사벨라는 흰말을, 이교도인 모슬렘 술탄은 검은 말을 타고 있다.

콜럼버스는 현재 가톨릭 여왕의 동상이 있는 이사벨라 광장 맞은편으로 반듯하게 쭉 뻗은 대로를 통해 그라나다를 빠져나갔다. 그 길이 콜론의 큰길, 콜론대로다. 여왕은 동상이 있는 자리에서 콜럼버스를 환송했고, 그가 새로운 예루살렘 땅을 정복하여 바치기를 기다렸다.


이사벨라에게 투자를 승인받은 콜럼버스는 팔로스항구로 갔다. 이단과 사탄이 없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을 세울 수 있는 땅과 황금을 찾아 떠나고 있다. 몇 해 전 어린 아들 디에고의 가는 손목을 잡고 스페인에 들어왔었다. 초라한 행색으로, 초조한 마음으로 걷던 그 길을 오랜만에 다시 걸었다. 그새 디에고의 손목뼈가 제법 단단해졌다. 팔로스로 가는 길은 유대인들로 북적댔다. 2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이베리아에서 쫓겨나고 있었다. 페니키아 사람들 때부터 노예로 이 땅에 와 2,000년 넘게 살아온 유대인들. 떠나지 못한 자들은 심문과 종교재판에 부쳐질 것이었다. 길은 두려움에 떠는 유대인들이 흐느끼는 소리로 무거웠다. 콜럼버스는 유대인들에 섞여 오래 걸었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콜럼버스는 위축되고 초조해졌다. 아직 사냥개들이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콜럼버스는 자기 몸에 흐르는 피의 뿌리를 알고 있었다. 혹여 도미니크 수도회가 그것을 안다면 자신도 종교재판에 넘겨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니 장작더미에 세워질 터였다. 자신에게도 적의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무서리가 내려앉는 듯 몸이 서늘하다. 죽음을 피해 북아프리카로 도망치려는 유대인들과 그들을 뒤쫓는 기독교인들. 좁은 팔로스항은 아비규환이었다. 이사벨라 여왕이 허락한 기간은 단 8일. 이 기간에 이베리아를 떠나지 못하면 유대인의 피가 섞인 자들은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이 가하는 무시무시한 심문Inquisition을 당하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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