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088. 탈

by 조이진

씨족 연방

20세기 미국 인류학자들은 콜럼버스 시대에 이 섬에는 동·서·남·북·중앙에 다섯 가시관이 존재했고, 중앙에 가온아보가 있었음을 밝혔다. 가시관은 각 지역을 맡아 독립적으로 자기 영역을 다스는 광역단체장 같은 지방 장관을 가리키는 다이노 말이다. 섬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가온아보는 가시관을 다스리는 최고 가시관 즉 섬 전체를 다스리는 왕중왕이라고 밝혔다. 4명의 지역 가시관 아래에는 작은 단위의 마을을 다스리는 기초단체장 같은 하급 가시관이 있었다. 중앙정부-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로 구성된 지방자치제와 유사한 피라미드식의 정치와 행정 구조인 셈이다. 가온아보가 연방 중앙정부의 역할을, 네 가시관이 각자 지방을 자치적으로 다스렸다. 다이노의 5 씨족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의 큰 고을을 이루었다. 5 씨족의 독특한 정치 체제에 따라 동서남북과 중앙의 가시관마다 해당 관직명이 달랐다. 이런 정치 체제와 관직명을 딴 지역 이름은 카리브해만 있지 않았다. 다이노들이 널리 퍼져 살았던 중남미 여러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남았다.

가시관. 머리에 새의 깃털을 꽂고 가슴에 청동거울을 달아 태양의 후예임을 상징했다. 남자도 귀걸이를 했고 몸에는 타투를 즐겨했다.

예를 들어 가온아보Caonabo, 저라과Jaragua 같은 지명은 브라질, 우루과이, 칠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전역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두 다이노들이 남긴 지문이다. 가시관들은 독자적으로 전쟁 능력을 갖추고 자기 영역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강한 적이 침입하면 가시관들이 연합하여 이를 방어하고, 가장 공이 많은 가시관을 가온아보로 선출하여 최고 가시관 즉 임금으로 삼았다. 이들 다섯 가시관은 동·서·남·북·중앙 다섯 방위의 신이기도 했다. 하늘신의 아들들이기도 한 이들이 지바우에서 씨족의 조상신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신에 올리는 제사를 주관했고, 례도Reitos라는 제를 지냈다.

900_12321038HighRes.jpg 가운데를 맡은 왕 가온아보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4가시관이 분할해 통치했다. 5개 귀족 씨족의 연방 정치체제였다.

섣달그믐날, 구가나가리가 콜럼버스를 자신의 가내에 초대했다. 이날의 외교 행사를 수행한 라스 카사스는 이렇게 적었다. “그들은 콜럼버스에게 대연회를 준비했고 격식을 잘 갖춰 맞이했다. 연회가 끝나고 구가나가리가 자기 집으로 초대해 음료를 내놓았다. 세 가지 과일을 섞어 만든 음료였다. 그리고 생선 요리와 비안다viandas라고 부르는 감자 스튜, 가자비cazabi라고 부르는 유가 빵도 대접했다. …. 구가나가리 가시관은 콜럼버스에게 선물 받은 셔츠와 장갑을 벌써 끼고 있었다. 그는 특히 장갑을 좋아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콜럼버스에게 허브를 많이 가져왔다. 가져온 자들도 손을 씻은 후에 허브를 만졌고, 가시관과 콜럼버스 두 사람도 손을 씻은 후에 만질 수 있었다. 콜럼버스는 구가나가리에게 카스티야에서 가져온 터키 활과 한 묶음의 화살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의 부하에게 활을 쏘아보게 했다. 가시관은 이것들이 무기인 줄을 몰랐다. 그들은 이런 것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콜럼버스에게 큰 탈을 선물했다. 눈, 귀, 혀를 큰 금덩이를 두들겨 만들어 장식한 탈이었다. 금으로 장식한 왕관도 콜럼버스의 머리와 목에 씌워주었다. 수행한 기독교인들에게도 여러 금 장식물을 선물했다.” 다이노들도 활을 가지고 있었으나 유럽인의 활과는 재질, 크기, 생김 같은 것들이 달라 유럽인 활의 용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날의 외교는 서로의 필요를 위해 제휴를 맺는 날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두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물들을 골라서 주고받았다. 가시관이 콜럼버스에게 선물한 탈은 다이노 말로 괴자goeíza라고 했다. 콜럼버스를 수행하여 다이노의 생활상을 관찰한 파네Pané 신부는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괴자라고 부른다”라고 기록했다. 괴자는 생각, 정신 또는 넋이라는 뜻이라고도 했다. 그러므로 다이노들에게 얼굴이란 살아있는 사람의 넋을 담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괴자 즉 탈은 탈 소유자의 혼백이 담긴 물건이었다. 콜럼버스에게 선물한 탈은 유독 눈과 귀와 혀를 금으로 장식했다. 탈은 가시관처럼 신분이 높은 다이노 귀족들이 썼다. 모든 왕족 다이노들은 각자 자신을 상징하는 자신만의 탈을 갖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얼은 탈과 함께 얼굴에 머무른다. 얼굴에 쓰는 탈은 곧 자신의 생명이요, 영혼이자, 정신을 통합하여 시각화한 상징물이었다. 위대한 가시관일수록 그의 탈에는 살아있는 넋의 권위와 힘과 지혜가 담겨있다고 여겼다. 탈은 살아있는 사람을 구성하는 일부이거나 확장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탈에는 누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했다. 활짝 웃는 사람의 표정도 있었고, 동물의 얼굴도 있었다. 사람의 표정을 한 탈은 대개는 조상의 혈통을 상징했고, 동물의 표정을 한 탈은 씨족의 토템을 상징했다. 가시관은 하늘의 조상신에게 제를 지낼 때 탈을 썼다. 이들이 말하는 하늘은 곧 해였다. 해는 만물을 창조한 조물주이고, 하늘 신인 해가 그들의 첫 조상 다이노 임금을 낳았으므로 모든 다이노는 곧 태양의 자손들이라고 여겼다. 햇살 부신 카리브해에서 제사장 가시관이 금으로 장식된 탈을 쓰고 바위를 높이 쌓아 올린 피라미드 지바우에 올라 하늘의 조상신에 올리는 제사를 주관했다. 아래에서 이를 올려다보는 하층민들은 높은 제단 위에서 햇빛에 반사되어 눈과 귀와 혀가 번뜩이는 가시관의 탈을 보았다. 제를 지내는 동안 가시관은 황금 눈으로 하늘 신을 올려다보았고, 황금 귀로 조상신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황금 혀로 선포하였다. 탈은 조물주 태양신의 아들 즉 천자로서의 가시관의 신성을 보장해주는 이미지 도구였다. 그토록 중요한 탈을 동맹관계의 가시관에게 선물로 주는 것은 자신의 혼백을 다해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뜻을 보이는 최상의 의전이었다. 그런 탈을 콜럼버스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그때 다이노 가시관은 콜럼버스를 “우리의 최고 왕”이라고 표현했다. 콜럼버스는 그가 처음 쿠바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이런 탈을 보았다고 적었다. 1492년 10월 9일 항해일지는 간단하게 이렇게 적혀있다. “이곳에서 여자 모습이 새겨진 상statues이 마을마다 곳곳에 세워진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리고 얼굴만 표현된 탈도 많이 보았다. 그것들은 모두 정교하게 새겨진 것들이었다. 나는 이 사람들이 탈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쓰는지 종교적으로 숭배하기 위해 쓰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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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관은 다른 스페인 선원들에게는 탈을 선물하지 않았다. 오직 콜럼버스에게만 준 선물이었다. 구가나가리가 자신의 혼백을 상징하는 탈을 콜럼버스에게만 선물한 것은 그가 스페인 사람들의 가시관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을 하늘에 있는 곳 즉 저승이라고 생각했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국왕은 자신보다 더 높은 왕이라고 말했을 때 구가나가리 가시관은 스페인 페르디난드 국왕을 그레이트 칸 또는 염라대왕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탈을 선물로 받은 콜럼버스는 무척 흡족했다. 큰 두 귀와 혀, 두 눈을 황금을 두텁게 붙여 박았기 때문이다. 옳은 말이 아니면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옳은 것이 아니면 보지도 말라는 가시관의 지혜를 암시하는 금덩이였다. 콜럼버스는 오직 금만 보고, 금만 말하고, 금이 어디에 많은지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싶었다. 콜럼버스에게는 오직 금만이 옳은 것이었다.

한편, 콜럼버스가 구가나가리에게 준 물건 중에는 그가 두른 빨간 망토와 레이스로 치장된 신발, 여러 색이 담긴 마노석 구슬로 만든 목걸이, 그리고 은반지도 있었다. 그 시절의 스페인에서 빨간 망토와 붉은 비드 목걸이는 선단의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징표였다. 그러므로 그런 것을 콜럼버스가 내놓았다는 것은 그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물건을 준 셈이다. 그도 외교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것들을 받은 구가나가리와 다이노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중남미 신화 속에 나타나는 색의 상징체계를 분석한 미국의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다이노 문화에서 붉은색은 밝은 해를 상징했다. 그래서 붉은색은 생명의 색이고, 양기male virility를 상징하는 색이었다. 콜럼버스의 외교도 매우 날카로웠다. 우연이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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