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콜럼버스

5. 콜럼버스

#090. 아라왁

by 조이진

식민

콜럼버스는 두 척의 선원 중 숙련되지 않은 자들을 골라 이 섬에 남게 했다. 39명의 선원이 남았다. 이들은 다이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이노들을 매우 나약한 자들로 여겼다. 콜럼버스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이곳에 남아 정착지로 만들겠다고 동의했다. 이들이 아메리카에 이주 정착한 최초의 유럽인들이었다. 콜럼버스는 1년 안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가시관 구가나가리는 그들을 잘 돌봐주겠다 약속했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항해 일지에 나비다드를 식민지라고 정의했다.

최초로 정착한 유럽인들은 스페인에서 최하층으로 살아온 자들이었다. 콜럼버스의 계획이 워낙 무모한 것이어서 선원을 모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전에 지은 죄를 면해준다는 조건으로 범죄자와 부랑자를 선원으로 모았다. 그런 자들이 다이노들과 조화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황금을 찾기 위해 온 섬을 휘저었다. 다니는 곳마다 여자를 강간했다. 그들은 섞이지 않았고, 원래부터 살아온 사람들을 착취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며 지배자로 군림했다. 그것이 식민의 첫 번째 모습이다.


아라왁

1493년 1월 4일 콜럼버스는 카스티야를 향해 라니냐의 돛을 올렸다. 라니냐는 기함이었던 산타 마리아호보다 훨씬 작은 배다. 금을 보았으므로 콜럼버스는 배를 잃은 슬픔을 잊었다. 그는 은혜로운 하느님이 배를 좌초시키시어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게 하고, 기독교인들을 남겨 두어 원주민들과 거래하고 그들의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게 하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게 하고,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맺어가게 했다고 감사 기도했다. 그는 더는 새로운 땅을 탐사하지 않을 요량이었다. 그에게는 지금 단 한 척의 배만 남았기 때문이다. 만일 탐사하다 이마저 부서진다면 스페인 왕실은 콜럼버스가 발견한 새로운 영토에 관한 사실과 존재마저도 알지 못할 테고, 콜럼버스가 스페인 국왕을 위해 새로운 왕국을 가져다준 고마움도 모르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콜럼버스의 자식들과 형제들이 콜럼버스가 발견한 땅을 대대손손 통치하고 총수익금의 10%를 차지하기로 한 계약도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항해 도중에 콜럼버스에 반기를 들고 떠났던 핀타호를 히스파니올라 앞바다에서 우연히 만났다. 핀타호는 쿠바 해안에서 자주 배를 멈추는 콜럼버스에 불만을 품고 금을 찾아 무단으로 이탈했었다. 콜럼버스는 핀타호 선장 핀존을 처벌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만일 핀존을 처벌하면 핀존을 따르는 핀타호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미 콜럼버스의 배에 탄 선원과 핀존의 부하들은 숫자가 비슷했으므로 반란을 진압할 수도 없었다. 핀존을 용서한 또 한 가지 이유는 핀존이 금이 나는 곳을 찾아냈다고 보고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콜럼버스에게 보여준 바구니에는 그동안 콜럼버스가 확보한 양보다 금이 더 많았다. 금을 확보한 방법은 처음에는 콜럼버스와 같았다. 조잡한 물건을 몇 개 주고 황금과 바꿨다. 그러다 핀존도 원주민들로부터 지바우라 부르는 계곡에서 금이 난다는 제보를 받았고, 선발대를 보내 확인했더니 금이 있는 것을 사실로 확인했다. 구가나가리가 콜럼버스에게 일러준 그 지바우 계곡이다. 핀존은 확보한 금의 절반을 덜어서 선원들에게 나눠줬다고 했다. 금을 나눠주지 않으면 그곳에 눌러앉아 금을 찾겠다며 항해를 마다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금을 나눠 받은 선원들이 행복해했다고도 했다. 그러니 콜럼버스에게 나눠줄 금은 없다는 것이 말의 골자였다. 콜럼버스는 불쾌했다. 제독으로서 그의 목을 베어도 문제없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으로 가려던 계획을 다시 바꿨다. 배도 한 척 다시 생겼다. 지금 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Arawaks.jpg 아라왁족. 베네수엘라 아마존과 가까운 카리브 소앤틸레스 제도에 살고 있다.


어느 섬 해안에 닿자 이제껏 보지 못했던 원주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얼굴을 칠해 무섭게 보이도록 꾸미고 있었고, 활과 살을 보여주며 그 순간이라도 전투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잔뜩 성을 내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도 처음 보는 새로운 생김새를 한 콜럼버스 일행에 무척 놀란 눈치였다. 그런 자들을 상대로 기독교인들은 협상을 성사했다. 선발대와 다이노 가이드는 협상의 증거로 활과 살을 가져왔다. 가이드는 이전과 달리 대화에 애를 먹었다. 이들은 언어도, 인습도 지금까지 만나온 다이노와 분명히 다른 종족이었다. 20세기에 인류학자들은 이들을 아라왁Arawak이라고 이름 붙였다. 지금도 베네수엘라, 가이아나 등 아마존 지역에 널리 퍼져 사는 종족이다. 콜럼버스가 이들과 우연히 만났을 무렵에 아라왁은 베네수엘라에서 소앤틸리스의 여러 작은 섬 무리를 지나서 다이노의 섬을 노략질하며 푸에르토리코나 히스파니올라 같은 대 앤틸리스 제도의 큰 섬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이들도 다이노와 마찬가지로 동북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건너온 민족이었다. 다이노와 아라왁은 언어와 문화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서로 뜻이 전혀 통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미국 인류학자들은 다이노와 아라왁을 크게는 같은, 자세히 보면 다른 민족으로 보았다. 이들은 문화·언어적 사촌 간인 셈이다. 그래서 다이노 가이드가 협상할 수 있었다. 아라왁족은 다이노족 마을을 노략질하면서 남자를 죽이고, 여자를 붙잡아갔다. 콜럼버스가 상륙했을 때는 그런 갈등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당하는 다이노는 지긋지긋하고 이가 갈릴 지경이었을 테다. 저승사자가 저들을 잡아가면 좋겠다고 여겼을 것이다. 콜럼버스 일행을 경계하는 아라왁족을 설득하는 데는 어려웠지만, 마침내 그들도 배에 올라 콜럼버스를 만났다. 생긴 것처럼 말도 성난 표정으로 거침없이 해댔다. 콜럼버스가 보기에도 이들은 지금까지 만나온 다이노들과 무척 달랐다. 이들은 숯 검댕으로 얼굴을 어둡게 칠했다. 그 위에 검은색과 흰색, 빨간색으로 덧칠했다. 칠의 패턴은 제각각이었다. 머리를 아주 길게 길렀고, 머리칼을 앵무새 깃털로 만든 작은 망에 담아 등 뒤로 넘겼다. 이들도 다이노들처럼 옷을 입지 않았다. 콜럼버스는 이들이 다이노가 말한 가리배족일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리고 자신이 도착한 이곳이 두 민족이 서로 다투는 경계일 것으로 생각했다.

61gYmNpkuPL.jpg 아라왁족을 소개한 책 <아라왁>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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