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 여름의 끝, 국화와 고양이

<<3. 달빛 패션쇼- 4화>>

by 그래놀라

주민센터 강당에서는 할머니들이 런웨이 연습을 하며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그 소란은 청심동을 밝히는 낮의 얼굴 같았다.


그러나 언덕 꼭대기, 낡은 판잣집 안에는 달빛조차 닿기 힘든 침묵이 깔려 있었다. 그곳에는 다리를 쓰지 못해 세상에서 점점 멀어진 어머니와,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들이 있었다.

청심동 토박이 모자는 사람들 눈에는 그저 조용한 이웃이었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는 가난했지만, 한평생 아들을 귀하게 품어 길렀다. 아들 동식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손이 많이 가는 자식이었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지극했다.

남들은 대학이다, 취직이다 하며 동네를 떠났지만 그는 남았다.


사랑한 여자가 있었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건 힘들어. 난 그런 거 자신 없어.”


그때 동식은 그저 웃으며 그녀를 보냈다.


집은 판자였다. 여름이면 습기가 차 벽지가 일어나고, 겨울이면 바람이 틈새로 스며들어 이불을 아무리 껴안아도 몸이 시렸다. 그러나 그 집은 모자에게 전 재산이자 인생의 전부였다.


“동식아, 달 좀 봐라.”

어머니는 밤마다 창문을 가리켰다. 달빛은 낡은 창문의 유리 틈새로 방 안에 흘러내렸다.

“우리 집은 허술해도 저 달이 제일 먼저 비춰준다. 별도 가깝고... 그렇지 않냐.”


“엄마, 누가 뭐래도 난 이 집이 참 좋소. 엄마가 업고 불러주던 노래도 다 생각나고, 애들하고 술래잡기하던 곳도 그대로요.”


“동식아... 그래도 이제 우리도 떠나야 하지 않겠냐. 이제 나라에서 돈도 안 준다잖아.”


“엄마, 무슨 소리예요. 제가 나가서 일하면 우리 먹을 거야 못 벌겠소? 걱정 마세요.”


“3억 주겠다고 아까도 찾아왔었어.”


“그런 소리 말아요. 지금 아파트 값이 10억이 넘는데, 개발 들어가면 20억 도 될 텐데... 조금만 참으세요. 내가 벌 수 있어요. 집만은 지켜야지. 우리한텐 평생 이 집이 전부인데...”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팔순 노모는 다리에 문제가 생겨 제대로 걷지 못했다. 오십이 된 아들은 당뇨와 지병으로 일하기 어려웠다. 집은 있었으나, 그 집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에서 제외된 채, 생계는 점점 막막해졌다.

그럼에도 아들은 새벽마다 골목길 길고양이 밥을 챙겼다.


기초생활 보장 급여 끊기자 동식은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더운 여름날, 땀범벅이 되어 돌아와도 먼저 어머니 밥을 챙겼다.


“동식아, 너부터 좀 먹어라.”


“엄마, 난 배불러. 고양이들도 줘야지.”


집 앞에는 늘 길고양이 몇 마리가 모여들었다.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그런 정 많은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저 집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네...”


“고양이 밥을 챙겨주길래, 그 정도일 줄은 몰랐지...”


사건이 터진 뒤, 이웃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다.


그날, 아침부터 더위는 살을 태웠다. 동식은 여느 날처럼 어머니의 아침식사와 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쟁반이 바닥에 굴러 떨어지고, 약봉지만 손에 남았다. 동식은 헐떡이며 바닥을 움켜쥐었다.


“엄마... 약, 약 드셔야지...”


숨이 끊어질 듯 막혔지만 그는 몸을 끌어 방 쪽으로 기어갔다. 피부는 식어가고 있었지만, 그의 입술은 마지막 힘으로 움직였다.


“난 괜찮아. 늘 괜찮았잖아... 엄마. 내가 더 잘났으면 돈도 벌고, 엄마 병원도 데려가고...

그때 그 여자도 떠나지 않았겠지. 하지만... 엄마만은 꼭 지켜야 하는데.”

손가락이 떨리며 약봉지를 움켜쥐었다.


“내가... 엄마보다 먼저 가면 안 되는데. 하루만... 하루만 더... 엄마보다 더 살아서 끝까지 곁에 있고 싶었는데... 엄마 미안해요...”

그의 음성이 허공에 흩어지고, 약봉지가 손에서 흘러내렸다. 방 안은 적막해졌다.


방문 너머의 기척에 어머니가 문을 열었다.

다리를 쓰지 못해 바닥을 끌며 나온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동식아!”

그러나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약봉지만 바닥에 구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수화기까지 온 힘을 다해 몸을 끌었다. 손끝이 닿자마자, 그녀의 몸은 한참 동안 떨렸다.


그러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들 곁으로 와서, 그 옆에 몸을 눕혔다. 아들의 손을 잡아주며 눈을 감았다.


“그래, 내 자식아. 혼자 두진 않을게. 같이 가자꾸나.”


판잣집 안은 적막했고, 바깥에서는 아침이 무심히 밝아오고 있었다. 창틈으로 들어온 빛은 따뜻하지도, 환하지도 않은 채, 두 얼굴 위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일주일 뒤, 사회복지사가 찾아와 그들을 발견했을 때, 노모와 아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함께였다.



주민센터 주무관 선영은 구청에 올릴 보고서를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또 한 생명이 스러졌다. 나는 왜 한 번 더 안부를 묻지 못했을까.’

보고서에는 담을 수 없는 죄책감이, 그녀의 눈물로 번져갔다.

사건 경위: ○○년 ○월 ○일 오전, 청심동 언덕 판잣집에서 사망자 2명 발견.
사망자 1: ○○○(만 82세, 여성), 사망자 2: ○○○(만 52세, 남성).
가구 특이사항: 노후주택 보유로 기초생활수급 대상 제외.
생활 실태: 장기간의 지병, 불안정 노동, 지역사회와 단절.
조치 결과: 사후 지원 및 장례 절차 진행 예정

선영은 보고서를 덮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종이에 쓰이는 건 몇 줄, 그러나 사연은 그 안에 다 담기지 않는다...”


아침 뉴스에 화면이 잡혔다.

“청심동 언덕 판잣집, 노모와 아들 숨진 채 발견. 기초수급 사각지대 또 드러나.”

"냉장고엔 고추장뿐이었다."

낡은 판잣집 앞에 덩그러니 놓인 고양이 밥그릇과, 바람에 찢긴 천막 지붕이 화면을 채웠다.

그날 오후, 언덕 위 집 앞에는 국화꽃 몇 송이가 조심스레 놓였다.

주민들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 꽃을 내려놓고,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저 집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네...”

“바로 우리 동네인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러나 애도 속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3억이면 팔았어야지, 괜히 욕심내다 동네 망신만 됐네.”

“아휴, 집은 지켜야 한다고 버틴 게 죄인가... 세상이 너무 각박해.”

“고양이들 챙길 때가 아니라 자기 밥부터 챙겼어야지.”

“이제 저 집도 철거될 거고, 결국 재개발은 더 빨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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