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처

#02 안 괜찮아도 괜찮아

by ㄷㄹ

굳이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기억이 나면 그대로 두고 지켜보면 그뿐입니다. 일어난 일은 부정할 수 없고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습니다. 슬퍼지면 슬퍼해도 되고 눈물이 나면 울어도 됩니다. 그래야 속병이 나지 않습니다. 괜찮다며 웃어 보이고 눈물을 삼키다 보면 심지어 자신도 몰라챌 정도로 정말 괜찮은 것 같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고 안도하게 됩니다. 기억은 바래게 마련입니다. 빛에 오래 노출된 종이가 바래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시간에 노출되면서 우리의 기억이 바랩니다. 하지만 종이가 바래는 것일 뿐 종이에 기록된 내용은 거기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 기억도 시간에 바래 희미해진 것일 뿐 거기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기억을 이렇게 희미하게 만들어 주는 것뿐, 근본적인 것은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 뜻하지 않은 때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게 뜻하지 않은 기억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생기게 되고 그때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여기 마음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었구나.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을 건드릴 때면 거기에 감정을 소모하며 끌려다니게 되고 감정의 깊고 어두운 골로 빠져서는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지나간 기억에 감정을 소모하지 않도록, 속병이 나지 않도록 슬픔의 순간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마음이 아프지 않습니다. 슬픔의 순간을 직면할 때에는 끔찍할 만큼 아프겠지만 그때 해소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들게 돼버리니까요.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 표출해서 날려버려야 합니다. 그냥 덮어두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묻어둬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울어서 날려버리든, 고함질러서 날려버리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서 날려버리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서 다 날려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속병이 나지 않습니다. 다 해소하고 난 뒤에는 아주 나중에 그 기억이 슬며시 마음을 건드려도 그렇게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무덤덤해지는 것입니다. 추억이라 부르기 싫은 그 기억은 시간에 바래고 마음속에서도 바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