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2

#04 안 괜찮아도 괜찮아

by ㄷㄹ

사람은 생각하는 것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가만 살펴보면 우리가 계속 생각했던 것들인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었을 당시에 그것이 가슴을 울렸던 것이라면, 심장을 뛰게 했던 것이라면 두고두고 생각을 했을 테고 세월이 이만큼 흘렀어도 그 가슴의 울림과 심장의 뜀은 기억 속에 계속해서 살아있는 것입니다. 저의 기억 속은 좋았던 순간이 많습니다. 괴로웠던 일 힘들었던 일은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다시 곱씹지 않고 그대로 흘려버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제 기억 속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 떠올려 보아도 그들의 좋은 면들 그들과 좋았던 기억들이 대부분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도 상처에 대해서는 잊혀진 채 존재하고 내가 상처를 줬던 사람들조차도 상처에 대한 기억은 거의 희미하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지만 대부분의 하루는 일상의 반복입니다. 새로운 것이 없는 일상의 반복이라서 어쩌면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모든 일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입니다. 우리는 마치 풀잎 위의 작고 희뿌연 알이 까고 나와서 애벌레가 되고 그 애벌레가 자라서 고치를 쳐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가 나중에는 나비가 되는 것처럼, 그 나비가 다시 알을 낳고 그 알이 애벌레가 되고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고를 반복하는 것처럼 크게 다를 것 없는 흐름 속에 살아갑니다. 그 흐름 속에는 폭풍우가 있을 수도 있고 천적의 공격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다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이고 있을 법한 일들이고 이내 곧 정상 괴도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나비를 기대했던 번데기 속에서 나방이 나온다면, 번데기가 고치를 벗지 못하고 그대로 번데기 안에 갇혀 버린다면 그것은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난 엄청난 사건이 됩니다. 트라우마라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정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이라고 정의합니다. 트라우마는 떨쳐 버릴 수 없는 충격입니다. 어느 정도 희미해질 수는 있겠지만 어느 기간 잊고 살 수는 있겠지만 뇌리에 박혀 버린 사건의 충격은 뇌리뿐만 아니라 신체의 모든 감각세포 하나하나에 박혀버린 듯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하게 되는 때가 생기고 문득문득 떠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기억 속에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저에게는 두 가지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퀴벌레입니다. 어렸을 적, 아마도 한 네다섯 살쯤 할머니 댁에서 놀다가 현관에 있는 할머니의 장화에 발을 넣었는데 거기 숨어 있던 그 당시 저의 손바닥만 한 바퀴를 발로 밟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때 발에 느껴졌던 그 소름 돋는 느낌은 말로 다 표현을 못 할 정도입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장화나 부츠를 신을 일이 있으면 꼭 뒤집어서 탈탈 털어 보고는 신습니다. 바퀴만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고 발바닥이 근질근질하고 뭔가 꿈틀대는 느낌이 나고 소름이 돋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강간 미수 사건입니다. 삼십 대 중반, 내 나이 또래의 여자라면 으레 있을 법한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요. 주위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열에 다섯 정도는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겪을 법한 일,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 그럴 수도 있는 사건으로 치부하지만 당사자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요. 저는 두 번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엘리베이터를 혼자 탔는데 문이 닫히려던 순간 누군가 손을 넣어 문을 열더니 급하게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5층 버튼에 손이 닿지 않아 깨금발을 하고 간신히 누르는 그 작은 나를 게슴츠런 눈으로 쳐다보면서 문아 닫히자마자 손목을 잡고는 ‘뽀뽀’를 해달라며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밀었습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습니다. 5층에서 문이 열렸고 그 남자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놓고는 달아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게슴츠런 눈으로 쳐다봤던 그 남자는 게슴츠런 눈이 아닌 그 자신도 겁먹은 눈이었고 남자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린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 난 고등학생쯤의 소년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이제 와서야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에 너도 힘들었겠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다른 사건은 아직도 그때의 상황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고 심장이 쪼여드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당시 집과 학교의 거리가 멀어서 아버지께서 출근하시는 길에 저를 학교에 내려주셨습니다. 학생들이 등교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제가 항상 제일 먼저 교실에 들어갔고 한참을 혼자 있어야 했습니다. 그날에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이른 시간에 학교 교문에 내려서 운동장을 거쳐 4층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갈 때쯤 모자를 푹 눌러쓴 아저씨가 제 옆을 스치며 내려가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제 쪽으로 뛰어올라왔습니다. 왼쪽의 긴 팔로 제 목을 감싸고 오른쪽의 큰 손으로 제 입을 막고는 저를 끌고 2층과 3층 사이의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발버둥을 쳐도 소용없었고 소리를 칠 수도 없었습니다. 그 남자는 힘으로 완전히 저를 제압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화장실 칸으로 끌고 들어갔고 문을 닫았고 그 과정에서 입을 막고 있던 손의 힘이 풀어졌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손바닥을 물고 소리를 질렀고 때마침 아래층에서 아이들의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남자는 저를 뿌리치고 달려 나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참을 문을 걸어 잠그고 화장실 안에서 벌벌 떨면서 나가면 다시 그 남자를 마주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에 휩싸여 학생들이 완전히 등교할 때까지 1교시가 시작하기 바로 전까지 화장실 칸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분 나쁜 그 남자의 싸구려 스킨 냄새가 아직도 코에서 비릿하게 나는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로 20살이 되기 전까지 밤길을 혼자 다니지 못했고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는 다 이상하게만 보였습니다. 짓궂은 장난을 치는 삼촌까지도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호기심에 술김에 혹은 꼴려서 그랬던 것이 당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인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기억이 되는 건지 알기나 하는 걸까요. 더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어렸던 저에게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무겁고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남자 스킨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아픈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밤길을 갈 때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사건을 상처를 제대로 치유했다면 좀 나아졌을까요. 선생님에게도 친구에게도 부모님께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혼자 마음에 묻어두고 가슴에 삭히고 넘겨버렸습니다. 성인이 되어서야 그것도 한참 후 20대 후반 정도 되어서야 주위 한두 명에게 말을 할 수 있었고 그제야 위로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나를 아껴주는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가졌고 그 사이 트라우마는 어느 정도 잊혀지고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에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될 사건이 생겨버렸습니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고 욕이 절로 나오는 사건이, 남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그래서 그 정도를 실감하지 못했던 사건이, 저에게 생겨버렸습니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고서는 타인을 절대 공감할 수 없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 끝을 낸 지 이 개월이 흘렀지만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디에선가 마주치지 않을까 갑자기 찾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함에 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문득문득 꿈에 나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누가 창 너머로 감시하고 있는 느낌에 창밖을 수시로 확인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어느 날은 아무 이유 없이 생각이 나서 자책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같은 한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서 잠시 해외로 나와서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감정을 숨길 필요 없이 생각이 나면 그대로 둔 채 바라봅니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욕하고 싶을 때 욕하면서. 지금 이 아픔을 잘 치유해서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 대한 기대를 다시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이 일은 어쩔 수 없이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정신적 육체적인 가학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불현듯 기억이 돼 살아나도 적어도 가슴은 시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슴 시릴 가치조차 없는 사랑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