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걸 계속할 용기

by 팔로 쓰는 앎Arm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해야 했다. 대학에 들어간지 얼마 안 됐던 어느 주말. 왕복 5시간에 육박하는 통학거리를 감내하던 나는 어느 날. 시간이 가는 게 무섭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단어만 보니 극단적인데, 시간이 간다는 것을 새삼 달리 인식하게 됐다는 거다. "시간은 어차피 가니까 하고픈 걸 하자"고 일기에 썼다. 목표가 있고, 그걸 성취하면서 이 시간을 보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쉬웠다. 단순하게 움직였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고, 영어영문학을 사랑해서 학과를 선택한 소녀였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의 소리를 따르면 됐다.

마음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미디어 쪽에서 종사하길 막연하게 바랐다. 어린 시절,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꼬마의 말에, 주변 어른들은 감내해야 할 위험과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주지 시켰고, 그건 안 되나 보다 했다. 꼬마는 다른 꿈을 꿨다. '뉴스를 전하고 싶다.' '미래 직업 사진을 가져오라'는 당시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말에 나는, 기억은 흐릿하지만, 분명 'PD 수첩' 사진을 인쇄해 갔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이 발표 시간에 나를 부르며 "OO는 왜 PD가 되고 싶니"라고 다정히 물었던 기억이 있다. "어라, PD를 생각해서 인쇄한 사진은 아닌데요, 쌤"이라고 말하진 못했던 웃지 못할 잔상도 있다.

어쨌든 꿈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나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았고, 통학 시간엔 주로 과제를 하거나 책을 읽느라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진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 시간이 좋았다. 분명 몸이 고통스러웠지만 통학 시간 확보되는 자유. 그러니까, 책을 읽거나 자유로이 과제를 해도 누구에게도 "뭐해" "놀자"라고 방해받지 않을 자유를 "나 지하철이야"로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다양한 활동에 지원했고, 시험을 봐서 교내 저널리즘스쿨에 들어갔다. 말이야 거창한데 뭐 그냥 하고 싶은 걸 한 거다. 어차피 연애엔 관심도 없었고,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좋아하는 학과 공부와 스쿨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집은 멀었고, 일찍 가도 지쳐 잘 게 뻔하니, 차라리 학교 도서관서 늦도록 무언갈 하다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집엘 갔다. 8시에 나가도 10시 30분이고, 9시에 나가도 11시 30분이고, 9시 30분에 나가도…. 그러니 그냥 학교서 '뽕을 뽑자'는 생각으로 있었다. 그 편이 정신적으로도 훨씬 나았다. 흔히 말하는 '집-학교-도서관'이 나에겐 즐거운 '힐링 코스'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힘든 일은 많았고, 버티지 못해 극단적 생각이 들던 날들도 손에 꼽을 수 없이 늘어났다. 그때마다 내 도피처는 미래였다. 그래서 미래의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 어딘가 적어뒀던 다짐이기도 한데, 난 내 미래의 나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잘 해주고 싶었다. 그 방법은, 그냥 하고픈 것에 집중하며 생활을 단순화하는 거였다. 지금도 대학 시절의 그 알 수 없던 긴장감과 평안함이 공존하던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사람은 고요함이 필요하다. 고요함 속에서 다음 계획도 찾고 나 자신을 더 투쟁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내가 아프다고 말하는 걸 타인에게 말하는 걸 좋아하지도,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요즘 말로 '마이웨이'적 성격이라 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난 '남에게 피해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생각을 조금은 했었던 것 같기도. 피해를 끼치는 건 죽어도 싫어했고, 일 욕심은 많아서 그 시간이 괴롭진 않았다. 조별 과제를 혼자 도맡아도, 나중엔 이게 다 피와 살이 되어 돌아올 거란 '이상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내가 하고픈 것과 관련해서는 내 재능을 아주 높이 끌어올리고 싶은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내 생각을 담은 글을 공개적으로 쓰는 건 꺼렸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라 그랬던 건지, 대체로 삶의 모든 기억을 쉽게 회상할 수 있었고, 하루하루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생각이란 바뀌기 마련이니 글을 써두면 나중에 내가 지금 생각과는 다른데 하며 놀랄 수 있겠다 생각했다. 때가 되면 내 이름을 달고 자유롭게 글을 쓰자고 그 시기를 너무나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미뤄왔다. 업무적으로 글을 쓸 기회가 여럿 생겨나면서 내 의중과는 달리 올라가거나 하는 글들이 차츰 쌓이고 난 후에야 그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된 것 같다. 용기라고 표현하기엔 맥락에 안 맞을지 모르겠으나…. 자유로운 내 생각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이제 그래도 괜찮다는, 어느 정도는 내 마음이 '여물었다'고 허락했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하고 싶어서, 여기에 들어왔다." 과거 지나온 내 일기나 단상 노트에 적힌 짧은 구절들. 그와 비슷한 생각에서 비롯한 이런 내 주절거림을 여기에 풀어놓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근래 새로운 일터서 적응을 하고, 예전만큼 글을 쓸 기회가 없다는 것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하루하루 완전한 동그라미는 아니더라도, 각진 동그라미라도 그리던 예전과 달리, 지금 내가 잘 가고 있는 게 맞을까. 또 한 번 고민하게 되는 이 타이밍에, 그래도 우물가를 찾은 것 같아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득 차는 기분이다. 기분 좋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오랜 확신에 위배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던 마음이 풀린다. 그냥 하면 되는 거다. 그 오래전 깨달음을 지금 이 사소한 첫출발로 강하게 상기시키려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업무라는 명목이 있어야 글을 쓴다는 생각 말고, 이전처럼. 아무것도 없어 무조건 쓰며 부딪쳐야 했던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 무엇이든 날 것으로라도 써야겠다. 많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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