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서 피어난 '꽃 한 송이' 아닌 '꽃 여러 송이'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은 사소하다. 순간에 집착하는 건 그 때문이다. 대단한 선택만이 운명을 뒤흔드는 건 아니다. 사람의 생을 결정하는 순간은 찰나에 스친다. '운도 실력', '시작이 반' 같은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한다.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는다'는 말도 그렇다.
세상에 죽어간 재능이 얼마나 많은가. 일부는 운이 좋아 발견했고 누구는 더 운이 좋아 그걸 알아봐줄 사람을 만나고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 누구는 재능을 갈고닦을 환경에 가고 누구는 그런 것따위 중요하지 않을만큼 연명하는 삶을 산다.
빌리 역을 연기할 아역을 찾는 일이 녹록치 않아 공연 올리기가 어렵다는 그 뮤지컬. 빌리 역을 거머쥔 아이들은 운과 실력을 다 가졌더라. 실력을 알아봐준 부모, 밀어준 누구, 뮤지컬 제작을 결심하고 오디션을 기획한 누구, 마침 그 때를 만난 것 등. 세상이 그렇지.
아이가 공연을 위해 얼마나 연습했을까, 부모는 아이를 보며 뿌듯할까, 어린 나이에 정점을 찍었으니 앞으로 탄탄대로일까, 회의감을 느낄까, 아이가 성장하며 느낄 여러 감정을 보듬을 부모 혹은 환경을 만났을까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문제다 문제. 그냥 보질 못한다.
마지막에 합류했다는 이의 공연을 봤다. 너무나 간절했다는 아이. 긴 시간 공연을 저 자그마한 몸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면서 부럽다. 그럴 기회를 잡았다는 것, 놓치지 않았다는 것, 버텨냈다는 것. 무대에 오른 이들 중 빛나지 않는 이가 없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 공연을 보고나서 대단하다고 박수를 열심히 치고 즐겼는데 뒤에 남는 것은 괜히 씁쓸한 맛. 나는 이런 걸 얼마나 더 즐길 수가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에 시간을 죽인다.
저 화려한 무대 위에 있는 배우들의 뒷모습을 생각한다. 오디션, 연습, 관리 등 저 시간을 위해 준비했을 각자의 이야기. 빌리가 빛날 수 있게 도왔던 아버지 그리고 선생님. 아이는 빛으로 걸어가는데 이들은 다시 탄광으로 들어간다. 슬프지 않다. 각자가 도전을 결심했을 테니. 이런저런 걸 감수하면서까지 빌리의 재능을 믿어보는 부. 빌리를 연기하는 저 아이나 진짜 빌리나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