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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Mar 04. 2019

'미스 슬로운' 헌신한 여자에게 왜 헌신했냐 물으면

"언론은 절 미국 민주주의 기생충이라고 부르더군요. 살면서 우리는 가끔 자기 자신을 위한 게 아닌 '단순히 그게 옳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결정하곤 합니다. 저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이들이 정치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믿는 신념, 그들이 속한 국가의 선에 얼마나 기여하는 일인가에 대한 판단에 따라 표를 행사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게 잘 안 될 거란 거 압니다. 우리 시스템은 썩었기 때문이죠. 우리 시스템은 양심에 따라 표를 던지는 의원이 아닌, 자기 자리 보전하려면 나라도 팔아 먹을 의원들이 더 잘 살게 돼 있습니다. 후자의 의원들이 바로 미국 민주주의 기생충이죠."


사실 슬로운의 모습을 보면서 뭐가 문제인지 못 느꼈다. 그러니까, 곳곳에서 연출적 답답함, 그가 얼마나 일에 목 메는 완벽주의자인가를 보여주는 시퀀스는 느꼈으나 일에 대한 열정, 성공에 대한 집착을 가진 그가 뭐 얼마나 괴물 같아보였다고 그렇게들 난리였을까. 하지만 사회엔 저렇게 일하는 사람에 대해 '총기 사고로 트라우마 있어요?'라고 묻듯 '거창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까지 헌신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겠지. 슬로운은 답한다. '왜 다들 그럴 거라 믿죠?', '관두면 뭐 하는데요?' 그러게. 왜 그럴 거라 지레짐작하고 왜 안 될 것 같은데 계속 하냐고 묻는 건가. 그것도 '내 편'들이.


이렇게 안일하게 슬로운을 따라가다 보면 턱 막히는 구간이 하나 나온다. 에스미에게 벌어진 일. 괜히 주변인들 덕에 위태위태하게 느껴지던 슬로운의 행보는 에스미에게 벌어진 '돌발상황'으로 잠시 멈칫하는 듯하다. 하지만 슬로운이 그걸로 멈출 여자가 아니지. 슬로운은 그저 잠깐 울고 발악하고 혼자 묻는 걸로 또 넘어간다. 에스미는 가시 돋힌 말을 퍼붓고 상사는 헛소리를 퍼붓는다. 조직을 지키기 위해 리더는 때로 멍청해지지. 큰그림은 슬로운이 그리는 거다. 슬로운은 이유가 있어서 행동한 게 아니다. 그러니까, 뭐 다른 거창한 게 없다는 거다.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한 자리 받고 싶은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 방법 말고는 모르니까. 슬로운 말 따라 '그냥 일 잘한다고 해두죠'라고 하면 될 것을, 사람들은 자기랑 다르면 뭐든 그렇게 의심한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슬로운은 안다. 자신은 금방 잊힐 것도, 대의를 위한 수단으로 쓰일 것도. 그래서 슬로운은 그게 당연한 거라고 여겼을 거다. 자기 생활따위 없는 여자니까. 그러니까, 자신처럼 다른 사람들도 신념을 위해 자기 하나 수단으로 쓰는 것, 당연시할 거라고. 거기서 슬로운과 다른 사람들의 선택의 속도에 차이가 있었을 거다. 뭐든 두 박자 빠르고 세 박자 먼저 행동하고 있는 슬로운이니까. 나는 그가 화면 정가운데 떡하니 앉아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담백하게 사실을 말하는 그 수많은 장면들을 결코 잊을 수 없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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