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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피해망상을 내가 감당할 필요는 없어

by 팔로 쓰는 앎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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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회사라는 것은 조금만 다녀보면 느낌이 온다. 이 회사 다닐지 말지. 이 회사, 발전 가능성 있을지 없을지. 애초에 내가 기자를 꿈꾼 건 부조리에 저항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쓰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회사에 오기 전 선택지 몇 개가 있었다. 앞선 글에서도 적긴 했지만 선택 기준 0순위는 지속 가능성이었다. 그러니 높은 연봉 마다하고 여길 온 거다. 나는 기사를 쓰고 싶었고 내가 쓰는 기사란 광고나 홍보 목적인 게 아니어야 했다. 그러니 경제 매체는 내 가치관에 맞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다. 앞선 글에도 적었듯이 내가 원하는 '기사의 방향'에 잘 들어맞던 곳은 그 변태 조직뿐이다. 문화는 거지고, 지향하는 건 진보다. 기본권이다. 그 모순에 토악질을 했다. 이쯤 되니 기자를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이직 전에 대학원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도 난생 처음으로 했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말이다.


여기까지가 1년 몇 개월 전의 이야기다. 브런치에도 적었듯 결국 나는 기자 일을 계속 하는 걸 택했다.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내 선택이다. 나는 등 떠밀려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지는 않았고 하던 일이 기자에 아직 젊으니 이직이 어렵진 않았다. 설상가상 집에선 맞아서 목을 다치는 바람에 '생사가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었다. 당장 나오려면 돈을 버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환경에 있으니 나는 선택을 하긴 했지만 완벽한 내 의지의 선택은 한 게 아닌 셈이다. 그래서 싫다는 건 아니고. 반추하자면 그 땐 그랬다는 것.


바뀐 조직은 거듭 말하지만 문화가 좋았다. 덕분에 나는 기자 사회가 다 이상한 건 아니라는 것도 확인했고 말이다. 물론 꼰대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회사는 회사지만 어쨌든 이상적이었다. 수개월 전까지는. 수개월 전 지면 인력을 줄이면서 점점 이상한 사무실로 밀려났고, 패배의식이 사무실을 짙게 감싼다. 제대로 된 상급자들과 떨어져 피래미들이 리더인 체 사무실을 돌아 다닌다. 배울 점 있는 상사 하나, 좋은 문화만 있으면 회사는 다른 게 거지 같아도 버틸만 하지만 이제 얘기가 달라졌다. 우리 회사는 지면 인력을 줄이고 있다. 그 와중에 내가 정규직으로 들어왔던 거고, 선배들은 내가 왜 정규직으로 들어온 것이냐. 기존 계약직 인력을 정규직으로 바꾸면 되지 않았느냐 따위의 말을 면전에 해댔다. 듣고 흘렸다. 조직에는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런 헛소리 따위 흘려 들으면 됐다. 팀장은 내가 손이 빠르다고 좋아했다. 다만 그걸 내게만 당연시하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선배는 견제했다. 성격이 급하냐고 왜 기사를 빨리 쓰냐고 했다. '저 선배 자꾸 그렇게 해주면 당연한 줄 아니까 늦게 올리라'고. 예전 같으면 이상한 선배다 했겠지만 사회 생활 조언인가, 이 조직의 문화인가 싶어 듣고 흘렸다. 팀장은 다른 선배들의 기사가 기한 맞춰 올라오지 않아도 아무 말도 못했다.


선배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외부에 나가 있는 기자의 특성상 서로 보기 힘든 게 당연하다. 하지만 다른 회사엔 당연히 아침마다 있는 일정 보고가 이 조직에는 없었다. 처음에 나는 선배들이 어디에서 일하고 있나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늦잠 자고 오는 거였다. 팀장조차 말이다. 황당했지만 이 조직 문화가 저녁에 일하는 건가 싶어 그냥 보고 말았다. 들어간지 얼마 안 된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남들이 그래도 나는 정도를 지키자고 생각했다. 그런 나를 보고 선배들은 '한 명이 그러면 나머지도 그래야 한다', '유세 떤다' 등 농담을 건넸다. 흘려 들었다. 어딜 가나 그런 선배들은 존재하니까. 선배들이랑 적이 될 필요도 없고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러려니 했다. 팀장이 원래 혼자 일하던 사람이라 저녁에 혼자 일하고 집에 가는 게 습관이 되어서, 팀원과 같이 일하는 걸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회사에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 다같이 모이며 죽을상을 하고 비관적 얘기만 늘어두는 선배가 나름 순혈이라 저래도 아무도 안 건든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다. 그 선배는 어쩌다 늦게 와서는 내가 인사를 하면 다른 팀을 의식하며 자신에게 인사하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팀장도 마찬가지다. 다들 조용히 살금살금 늦게 들어온다.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가도 문화인가 싶어 내버려두었다.


팀장은 그 옛날 변태 조직의 피해망상 남팀장과 관상이 닮았다. 마음 속으로 '편견은 갖지 말자. 그저 닮았을뿐'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현 팀장은 늘 큰소리로 욕설을 내뱉고 도저히 남과 발맞추어 걷지 못하며 자신의 틀림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선배 말 따라 '어쩌다 한 번 일하고 더럽게 유세'를 떤다. 유세 떠는 것 귀엽다 쳤더니 다른 팀 혹은 상급자에게 팀원을 깎아 내리는 게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더라. 아무리 등신 같은 리더라도 자기 팀원을 욕하고 스스로의 부족을 남탓하진 않는다. 상급자에겐. 자기 팀원 욕하는 리더를 좋게 보는 상급자는 지금껏 아무도 없었으니까. 다른 선배 표현 따라 '그 선배 참 일 못하고 참 게으르며 참 남탓 좋아하며 참 말도 못한다.'


그에게 이렇게나 애정을 들여 키보드를 도닥이자니 내게 드는 생각은, 첫째 '왜 그래야 하지', 둘째 '더러워서 피했더니 똥이 달려 오는 격'이라는 것. 다른 선배들을 컨트롤하지 못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만한 막내인 나를 불러 앞뒤 안 맞는 얘기를 해대는 것에 질린다. 그저 들어주며 회사를 다녀야 하는 걸까. 우리에게 직접 말하는 게 아닌 상상 속 관중 들으라고 크게 욕설을 해대는 그 팀장에게서 멀어지고 싶다. 그 여자의 피해망상까지 내가 여기서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여자를 보면 능력 없는 이가 감당 못할 자리를 떠맡았을 때 가진 온갖 피해의식과 열등감의 표출이 매일같이 느껴진다. 그러니 순혈이라는 선배는 대놓고 무시하는 거겠고 그 팀장은 컨트롤 못해 화를 다른 이들에게 푸는 거겠고. 이제 명백하게 이 조직이 보이니, 나는 또 선택을 해야 한다. 명백하게 조직이 보인다는 말은, 그래. 구리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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