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희망을 줍는 것

by 팔로 쓰는 앎Arm

근래 나는 어쩐지 크게 절망하지도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실망이 체내화되고 '저 사람이 그렇지' '그 사람은 그거 모르지' '사회에 나서서 입으로 페미니즘 떠들면서 제대로 된 여자가 없지' '변태짓해도 기본권 기사 써가면서 잘 살지' 등에 대해 나는 그저 '그러려니'로 일관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대체로 인간은 '나만 잘 살면 되는 구나'. 내가 대단한 정의감을 가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저 1인분의 삶을 살아내기도 급급한 거구나. 놀랍지도 않다. 여기에 놀라는 것도 내게 '오만하다'고 손가락질 할 테니. '당신이 뭔데 특별하게 살고 싶어 하냐'는 지적이 돌아올 테니.


대개 인간이란 것은 간사한 동물이라고. 나는 어쩐지 이 상황이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 없다. 매일같이 식사하기는 힘들고 일정을 앞두고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진절머리 친다. 그러다가 포기한다. 그 루틴이 습관이 되자 이젠 과거 선배들이 '기자 왜 되고 싶어?' 질문한 후 '약자들 어쩌구' 하면 코웃음 치던 모습, '기자 왜 되고 싶어?' '기자 어쩌구' 하면 듣지도 않던 모습 등이 오버랩된다. 그래. 생활인으로서의 기자였으니 막내의 나이브한 소리가 개소리로 들렸을 게다. 그렇게 되겠다는 것고 그게 맞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럴 수 있다' 정도가 됐다 치자.


대개 나는 일하면서 들었던 소리가 '그러다 지치니 살살해라' 따위의 것이었는데, 아니 틀렸다. 그러다 지치는 게 아니라 진심을 오해받을 때 지치는 거다. 게다가 입진보 언론사가 아닌 곳에 있으니 생각지 못했던 데까지 의도를 의심받는다. 없던 일이 사실인 것처럼 생기며 우리 팀장은 앞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세련된 일처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불안하다. 이 일을 계속할 가치가 있는가.


고민을 꾹 참고, 누구 말 따라 '인생엔 원래 의미가 없어'를 곱씹는데, 자꾸 몸이 반응한다. 속은 뒤틀리고 안색은 창백하며 그저 지치기 바쁘다. 토하고 하혈하고 난리인데 이것 역시 루틴이 되었다. 이건 옳은가 그른가. 그럴 가치가 있는가. 그렇다고 안 하면 뭘 할 건가.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 그저 할 수 있는 건 억지로 하는 발버둥이다. 억지로 '회복탄력성' 같은 단어를 꺼내 새긴다. 한 편으로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안에 남은 나이브함과 정의에 대한 환상은 자꾸 꾸물대서 그게 곤란한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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