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하나가 시커먼 롱패딩서 애정행각을 하는 9호선에서야, 여자는 깨달았다. 오늘이 2019년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여자에게 그간 새해, 연말은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에겐 풍부한 젊음이 있었고 거기서 한 살, 두 살 먹는 것쯤이야 여자에겐 정말 '그깟 일'이었다. 여자의 정신은 오롯이 일뿐이었는데, 돌아보면 그것은 살기 위함이었으리라. 어쨌든, 여자는 2019년의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새해의 의미, 연말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것에 대해 순간적인 감상들에 젖는 것이었다. 여자가 매해 연말 그러했듯, 길거리엔 여전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 바쁜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넘쳤다. 여자가 길을 가며 무심코 들여다본 카페 안에서는, 트레이닝복을 입은 학생 두어 명이 노트북을 켜고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일지도 있지만, 여자는 어쩐지 제멋대로 '저렇게 과제 등을 하며 일상은 계속된다'고 생각해버렸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불켜진 음식점, 손님을 기다리는 빈 곳, 손님이 꽉 찬 곳, 지하철 안 분식집 등을 보며 여자는 '일상이 계속된다'는 것을 어쩐지 자꾸만 확인받고 싶어했던 걸지도 모른다.
여자는 어쩐지 울적함에 빠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늘만 7번째 타는 지하철이었다. 여자의 동선은 잔뜩 꼬인 하루인데, 여자는 미리 예측된 동선 꼬임이라,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다만, 여자는 새벽, 오전, 오후, 저녁의 공기를 지하철서 꼭 한 번씩은 느꼈는데, 그것은 어쩐지 저녁 9호선 지하철에서도, 설렘보다는 일상의 향기가 짙었더라. 그러나 곳곳에서 검은 롱패딩을 입고 연인을 기다리는듯 설레는 통화를 크게 해대는 젊은이들과 마트에서 홀로 장을 보는 여자의 (칩거 예정이므로) 몸을 아무렇지 않게 세게 밀치고는 달려가 제 키만한 남자에게 대롱대롱 매달리는 여성 등을 본 후에야 '드라마에 흠뻑 빠진 연말이구나' 따위의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었다. 설렘이 곳곳에 스며들고, 여자는 마트 계산원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를 건넸다가 다소 놀란 그에게 '읽씹' 당한 뒤 어쩐지 기쁘고 멋쩍은 마음으로 마트를 떠나는 것이었다.
여자는 일을 하고 마감을 하며 취재를 하고 이동해대는 지하철 안에서 머릿속으로 일기를 두 편은 뚝딱였다. 밤이 오면 어쩐지 우울이 자꾸만 찾아오는 여자였기에, 울지 않으려고 자꾸 애를 쓰면서 달콤한 노래를 찾아 귀에 꽂고는, 집에 가면 슬퍼하지 말고 맛있는 걸 먹고 잠을 자리라 다짐하는 것이었다. 실은 그냥 집에 도착하자마자, 오늘 한 끼도 안 먹은 것과 무관하게(우유 두 잔이 전부다) 수면제를 입에 탈탈 털어넣고 푹 잔 후 1월 2일 아침에 깨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하다가, 또 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월 1일에 속이 아픈 채 일어나 변기를 붙잡는 상상을 하고는 그건 아니라고 결론 내린 것이었다. 그러니 찾은 기쁨 해결책이 바로, 좋아하는 음식 먹고 푹 자기란 것이다.
여자는 그러면서, 만남을 기약하자며 연락을 해온 사내 몇을 생각하고는, 왜 그랬을까, 술이 문제다 따위의 생각을 하다가는 고개를 세차게 젓는 것이다. 여자의 밤이 우울로 점철되니, 그것을 사람에게서 찾아볼까 하는 착각에 빠질 뻔했다가, 다시 냉정하게 표정을 고쳐 먹고는 지하철 유리창을 바라보는 것이다. 울먹울먹했던 눈동자는 어느새 강제 냉정으로 변해, 꽤나 단단해져서는, 어설픈 썅년 말고 제대로 썅년이 되어야겠다는 따위의 생각(일을 하다 만나는 진상들 관련해서다)을 하다가도, 그건 내가 추구하는 게 아닌데, 하다가, 그렇다면 괴로워서 딱 죽고서야 말 텐데, 그러다가, 이대로 착하게는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맛있는 음식 생각에 상념을 다 날려 보내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 먹고 소화 제대로 할 수 있는 튼튼한 몸이 있다면 두려울 게 없다는 게, 여자의 결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