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걸레 쥐어짜듯 살지만, '못하겠다'는 말은 할 줄 모르니
아침에 일어나면 온갖 연락을 받는다. 대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는 요구다.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확신에 들어찬 이들의 목소리를 받는다. 아침에만 십수 개. 하루종일이면 몇 개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백 건이 넘겠지. 그런 생활을 해오길 오래, 과거엔 보람이 있어 참았다면 이제는 모르겠다. 과거의 배울 만한 선배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하루를 꾹 참는다. 배울 만한 사람이 없으면 과거의 나를 지침 삼는다. 초심의 나, 처음의 나. 그럼 하루를 가열차게 살아낼 힘이 생긴다. 쥐어짜듯 살아내니 몸이 자꾸만 지친다. 깁스를 하고, 보호대를 차고서도 취재를 하러 다녀야 하며 연락들을 끊임없이 받아내야 한다. 매번 신선한 것처럼, 처음인 것처럼.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를 건네고 각자의 사연에 깊이 공감하며 순간을 소중히 넘겨야 한다. 단 한 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춰 공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단 인상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땐 신이 나다가도 상대가 공감을 해주지 못하면 금세 상대의 탓을 하며 서운해하기 쉽다는 걸, 이 일을 하면서 확신해 버렸기 때문에, 나는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러니 몸이 탈이 나는데, 그것도 괜찮은 체, 토를 하고 복귀를 하고 토를 하고 복귀를 하고….
근래는 병원도 쉬이 갈 수 없다. 추위에 선천적으로 약해 이른바 '겨울병'을 매년 앓던 나는, 코로나19 이슈 이후 병원에 갔다가 "요즘 같은 세상에 아프면 억울한 일 아프지 말라"는 의사의 진정성(?) 어린 조언을 들은 후로 병원을 못 갔다. 밤새워 아프다가 병원에 가면 "해외 다녀오셨나요"부터 시작한 병원의 정성 다한 대처들에 어쩐지 미안하기도 해서다. 해외 원래 안 가고 여행도 안 가는 나 같은 사람에겐, "스트레스 때문에 제주도 다녀왔다"는둥의 이른바 '제주 모녀' 이야기는 먼 나라 얘기다. 사람은 참 다르고 저마다의 생각이 있으며, 저마다의 옳고 그름이 다르다지만, 21세기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 시점서, 그런 얘기를 속 편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닌 전달된 말이라도, 그래도 나는 모르겠다. 고작 내놓은 해명이 '스트레스 받아서 다녀왔는데' 등이었다면 참, 나는 모르겠다.
코로나19 이후 취재원들도 바빠지고 나도 바빠졌다. 재택근무로 오히려 한가해졌다는 다른 분야, 부서와 달리 나는 직접적인 부서, 분야를 맡고 있기에 덩달아 정신이 없다. 보람을 느끼던 과거와 달리, 감 떨어지는 데스크와 할 일 없어 남 욕하고 싶어 하는 조직원들 틈에서 홀로 바쁘자니, 인간의 열등감 등을 잘 다스려 줘야 해서 또 힘들고, 와중에 심심하니 우울하다는 선배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니 정신이 없고, 밤새워 일을 하고 아침부터 울려대는 전화를 연달아 이어가느라 정신이 없고, 자기 얘기 들어달라고, 자기만 맞다고 자신의 화를 푸는 사람들을 마주하느라 또 정신이 없다. 그저 탄력 있게 하루 하루를 몇 달 보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내 몸이 마침내 지쳐서는 '주인아 제발 그만 해라' 하고 호소하는 걸 듣고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깁스를 하고 보호대를 차고 약을 먹다가, 이내 약이 일에 방해 되자 약을 먹지 않았던 나. 스트레스를 잊으려 술을 마시고 일을 하고는 다시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고 착각했던 나.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지점에 다다르면 인간은 잠시 고민을 한다. 그러나 관성이랄까. 하던 대로 금세 돌아간다. 왜 '못하겠다'는 말을 못하는 것이냐. 그건 못하겠다는 말을 할 용기도 없고 무엇보다 그래선 안 된다는 스스로 부여한 사명감 때문이다. 그리 한다면 살아남지 못했으리라는 그런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낑낑대며 하루를 버티고, 0순위에 자꾸 일을 두고는 그 뒤에 이어지는 것들을 마저 같이 챙기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리라. 내가 오늘 하는 이 일이 지금은 작고 소중해 보일지라도, 속에는 많은 이의 고군분투, 눈물, 하루들이 모여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지금 당장 '내 얘기 들어달라'는 소리들을 감히 뿌리칠 수가 없다. 나 스스로 내가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라도, 그게 아닐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굵은 선을 만드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아직은 그리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 하루도 허투루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려고 과거를 그리 살아온 게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