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성실히 하는 일들이 내 목을 조를 때가 있다. 살겠다고 하나씩 해내던 일들이 하나씩 곁다리 알을 낳는다.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했던 이유는 내게 붙은 도화살 때문이다. 2010년대 초반 이게 좋은 살이라고 말이 많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최근의 사람들은 안다.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이 꼬이고 길에 나가면 불쑥 말을 거는 사람이 많은 데다가 모임엘 가면 무서워 하면서도 말을 걸고 꼭 이상한 짓거리를 해대고야 마는 대상이 되는 사람. 그렇다고 쓰고 싶은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 말한 적도 없다. 또라이 같이 보이잖아. 그냥 그렇다고는 어려서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무언가가 사람을 끄는데, 그게 좋은 사람일 때도 있지만 나쁜 사람일 때도 있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좋은 사람이 온다는데 의의를 두자. 그런데 나이가 들고 이 직업을 가지고 점점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마냥 사람좋은 것처럼 웃고 있다가도 아닌 것에 선을 긋기 시작했는데 그 선이 선인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오용된다고는 하나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믿고 있으며 피해를 당해도 어쨌든 당한 놈이 바보되는 세상인 것은 변함없기에 그저 말을 않고 속으로 참는다. 곪아터질 때까지. 곪아터진다 해도 어디 가서 말할 생각은 없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구설이 생기면 사람들은 어쨌든 그 구설의 중심을 찾는다. 태풍의 눈처럼 고요해 보여도 구설이 그를 두르고 있으면 그 역시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말을 않는 편이 낫다. 속이 곪아터져도 참는 게 좋다. 그러니 하는 말이다. 당한 놈이 바보 되니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그저 일기를 도닥거린다. 일기에 쓰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날들이 많아졌고 나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일기를 찾았다. 그 전까지는, 참으면 복이 올 거라고 굳게 믿어서 내 자신에게조차 툴툴대지 않았다. 힘들면 힘든만큼 어딘가의 보상이 올 거라고 믿었고 절대량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참다가 나는 20대 중반이 되고 직업을 가진지 조금 되고 나자 일기장을 열 용기를 냈다. 일기에 도닥거리면서 내 마음의 아픔을 덜어내고 나면 그래도 마음이 나아진다. 착한 사람은 버티기 힘들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그 사실이 싫고 착하다는 말이 싫으며 누가 나에게 착하다고 하면 싫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참 어설프게 착해서 이렇게 고통이다. 당한 일도 당했다 말할줄 모르며 최대한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는 편을 택한다. 다른 걸 위해서라고 생각하는데 모르겠다. 나는 뭘 위해 참는가. 미래의 나를 위해서인가 현재의 안위를 위해서인가.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동네, 기센 동네라고 혹자들이 여기는 곳에서 버티다 보니 헛소리를 들을 때도 많고 이상 한 일을 당연한 것처럼 당할 때도 많다. 그러나 그 때마다 내게 내가 건네는 위로는, 그래도 좋은 이가 더 많다는 것이다. 어쨌든, 당장은 좋아 보이며 내 편이 되어주는 이들이 주변에 있으니, 그 또한 큰 복이다. 사람이 다 가질 순 없다. 누군가를 끄는 매력이 있으면, 어둠도 참아내야 한다. 이 생각을 수십년 하면서 살아왔는데, 오늘같은 밤이면 어쩐지 동요되어, 나는 조금 힘들어서는, 일기에 최초로 나의 이런 마음을 고백해 보는 것이다. 그래봐야 내가 볼진대, 어떤가 싶어서. 그러니까, 과거에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스스로 용납하지 않아 더 괴로웠지만, 이제는 그냥, 나라도 나를 위로해 주자 싶어서, 그리고 주변의 좋은 이들을 한 번 더 생각하며 충전해 보자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