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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Aug 08. 2020

참는 건 대부분 능사다

힘들려고 용쓰는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아파도 참고 아닌 체하는데 익숙해서 뒤통수를 맞고도 웃으며 말하는 바보같은 사람. 큰그림을 그리겠다며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그냥 참자고 스스로를 자꾸 다독이는 사람. 나는 남이 '그건 네가 안 좋은 일을 당한 거다', '저 사람 왜 너에게 저런 행동을 하느냐' 등의 선을 그어주지 않으면 화를 내지 못했다. 명분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스로 자존감이 높아서이기도 할 거라고 생각을 하다가, 착한사람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깊이 빠져있어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걸 인지하기 시작한 건 자기 밥벌이를 할 수 있기 시작하고도 한참 후의 일이니, 이 얼마나 여유없으며 안달복달하는 현실에서 당당함, 주도권을 한참이나 잃어버리는데 익숙했던 것인가. 놀랍지도 않다. 항상 억눌려 있는 이 느낌, 자고 일어나면 전신을 맞은 것처럼 오히려 저린 느낌, 두통, 불면증, 이 모든 것. 나를 누르는 이 모든 것.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모든 것들. 마음아픈 것들. 마음아프다고 스스로 이제서야 인지해 다행인 것들. 멍청한 일들.


무심하게 사는 사람에게 세상사는 더 무섭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인간이 나빠 하면 언제나 무슨 일이고 또 일어나기 때문에 놀라지 않기 시작했다. 놀라지 않기 시작하자 무심해졌고, 그냥 살기 시작했는데, 그건 나에게만 그랬다. '너 잘 참잖아' ' 너 강하잖아' 하고 스스로에게 하던 말은 이내 나를 갉아먹었다. '괜찮아 괜찮아' 'ㅇㅇ아 참아, 괜찮아' 하며 나를 다독이면서 가슴에서 울컥울컥 차오르는 것들을 늘 무시한다. 퇴근 없는 하루, 하루를 넘는 날들, 그런 것들을 보내고 간신히 돌아와 또 나를 기다리는 여러 가지를 해내다가, 손이 덜덜 떨다가, 아프다가, 울고 싶다가, 황망해서 울 시간도 없어서, 그저 보아 넘기도 해치우기 바쁘다가, 쉬자고 결심하고 앉으면 긴장이 풀리지 않아 경직되어 있다가, 또 다른 날들을 만나고,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숨쉬다 보면, 나는 마음이 울컥여서, 그냥 그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쉼표투성이 문장이 거슬리지만 이해해 주라. 어쩐지 요즘은 유약해진 마음만큼 쉼표도 늘어난다. 요즘에만 그러고 말게.


세상은 좁고 기회는 많을수록 좋다고, 그 가능성을 더 열어두고 싶어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무엇이든 하고 있지 않으면 더 그렇다. 가만히 멍때리는 순간이 그리우면 바빠지면 된다. 무슨 심보인지, 멍때릴 수 있을 땐 멍때리지 못한다. 마음이 불안해서, 허무해서, 공허해서, 일기장에 도닥이지 않으면 참기 어렵다. 나는 자꾸만 너무 바빠서, 이게 낫다는 건지 그래서 내가 이걸 택했던 건지, 뭐 어쩌자는 건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삶의 쳇바퀴에서, 나는 어쩐 일인지 길을 조금 잃고는,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고 나에게 답을 구한다. 늘 척척 답을 주던 내 자아가 코로나19 이후 답을 잃어버린 것처럼 굴어서, 나는 어쩌자는 거냐고 자꾸 묻는다. 착한사람 콤플렉스라는 것, 사람을 숨막히게 한다.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언제 어디서든 관계가 유지될 수 있고 서로 연락할 수 있는 이런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최근의 나는 어쩐지 이 일을 택했던 이유들과, 이 환경을 택한 이유를 조금 잊고서는, 뭐 어떻게 된 거였더라 하는 순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냥 산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행복을 누리는 습관이 되어있지 못해서. 자꾸 뭔 일이 생겨서, 가슴이 울컥여서.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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