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소동

마스크 잘 쓰고 광명찾길… '씹을' 거리 찾는 세상에 명분을 주지 말자

by 팔로 쓰는 앎Arm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 마스크를 한 번에 세 겹씩 끼고 다닐 때가 많다. 자제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는 등 접촉을 해야 일을 해낼 수 있는 직업의 '특성상' 외출을 마냥 삼갈 순 없다. 천마스크를 몇 겹씩 끼거나 일회용 마스크를 몇 겹씩 끼고 나면 얼마 가지 않아 어지럽다. 그럼에도 잠깐의 어지러움, 혹은 수시간의 어지러움이, 이 전염병이 이 땅에서 하루 빨리 사라지는(훗날 약이 나오고 '독감'처럼 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먼 미래니) 방법이라는 확신이 있으니 힘들지 않다. 코로나19 발병 초기 노인들이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모습들을, 약국에서 노인에게 마스크를 양보하는 모습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마스크를 두 겹 더 씌우려 하던 나를, 기타 외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직업의 소명을 다하려 마스크를 벗지 않는 사람들 등을 생각하면 마스크를 집 밖에서, 특히 사람 많은 어디서든 내리는 일 등은 이해할 수 없다.


언젠가 길을 걷다가, 멈추어 서더니 마스크를 내리고 기침하는 남자 둘을 본 적이 있다. 동행과 웃고 말았는데, 그 광경은 어쩐지 뇌리에 깊게 남긴 했다. 인간의 이기심, 자신의 마스크에 자신의 비말이 튀는 것이 찝찝해, 그 비말을 가리라고 쓰라는 마스크를 내리고 시원하게 재채기를 한 후 아무렇지 않게 마스크를 쓱 올리고 가던 모습. 옷으로 가리지도, 하다못해 가방이든 손이든 뭐로든 간에 자신의 입을 가리지도 않고 당당하게 길 한복판에서 재채기를 하던 그들의 모습. 언젠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퇴근길 여의도역에서 네 남자가 버스 기사님께 한 소리씩 듣고 타는 걸 보았다. 기사님은 '마스크 올리세요'를 연달아 네 번이나 말씀하셔야 했는데, 네 사람 모두 마스크를 턱에 걸치거나 코와 입 사이에 걸쳐두고 탔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버스 안의 모든 승객들은 그중 한 중년 남자와 두 젊은 남자가 버스 기사님과 신경전하듯 버티며 마스크를 올리지 않는 모습 때문에 출발하지 못하고 수분을 기다려야 했다.


당시 맨 뒤에 앉아있던 나는, 승객들이 그들을 무심하게 한 번 바라보고는 마스크를 바짝 올리거나 신경쓰는 모습을 목격했다. 기사님은 몇 번이고 마스크를 쓰라고 네 번을 훌쩍 넘어 몇 번이나, 같은 인간에게 말해야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름 자체가, 인간. 그들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는 젊은 날의 치기였다면 공익을 위하겠다고 썼을 문장이지만, 그렇게까지는 쓰지 않겠다. 근래 나는 측은지심이 풍부해진 상태라 뭐든 단정해 쓰고 싶지 않다. 더 신중해지면 신중해졌지. 이 일들이 내게 뭔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난 그냥 '그런갑다' 하고 말았다. 인간은 다양하니까. 다만 기사님의 하루가 눈에 선히 보여 조금 슬펐다. 그런 말을 연달아 하며 되먹지 못한 인간들 상대할 하루가 선히 보여서 안타까웠다.


광복절 이후 다들 고삐를 바짝 치켜세운 근래 있던 일이다. 회의 시간, 누군가 남자들이 마스크를 안 한다는 주제를 꺼냈다. 여럿이 동조했고, 나는 마스크 안 한 여자도 본 일이 분명 있으므로, 그건 아니라 개인이 문제라고 웃으며 말했다. 누구들을 편들어 주겠다고 그런 건 아니라, 마스크 안 하고 잘 돌아다니던 여자들도 분명 있었고 그들을 보기도 했으니까. 심지어 지금 쓰다 보니 그 주장을 펼친 이 중 하나가 그런 존재였네. 저녁 식사를 하러 갈 때면 항상 마스크를 안 써서, 나는 대놓고 묻진 못하고 그냥 저 사람 또 요상한 신념 부리네 하고 말았다. 대중을 '교화'시킬 대상이라고 생각하며 분노가 가득한 그는, 항상 '자기만 옳았'기 때문에 누구도 그와 대화하는 걸 유쾌해 하지 않았으므로.


아무튼 돌아와서, 그러다 갑자기 누구가 마스크 써도 감염된다며 주장을 선회하더니, 최근 파주 카페의 일을 거론했다. 나는 분명 마스크를 쓴 이들은 안 걸렸던 일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사실인데, 이들은 그냥 욕을 하고 싶어서 욕을 하는 것으로 보여 대꾸하지 않았다. 아무리 마스크를 써도 감염된다나 어쩐다나 하며 말하길래 말도 안 된다고 한 마디 해주고는 말았다. 뭐, 여기까진 별 일도 아니고 일기에 적을 일도 아닌데, 일기를 쓰는 건 다음 문단에서 본 것들 때문이다.


이 날 회의가 끝나고 늦은 저녁, 동행과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집회가 쓸고 간 자리니 사람들은 피하는 게 당연했고 코로나19가 다시 창궐하고 있으니 당연히 집에 일찍 가는 게 맞았다. 재택근무를 하며 나오지 말거나. 그런 상황에서, 길엔 퇴근하는 이들 말고는 사람이 잘 없긴 했다. 그러나 한 명도 없었느냐고 묻거나 1m 안으로 들어올 일이 없었느냐고 묻느냐면, 사람이 걸어가다가 내 쪽으로 올 수도 있는 거고, 부주의한 이는 또 어떻게 걸을지 모르는, 그러니까, 어쨌든 대비를 하는 게 좋으니 마스크는 반드시 써야 하는 게, 그냥 설명을 왜 해야겠는지도 슬픈 그런 당연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회의 시간에 뜨악했던 주장인 '남자들이 마스크를 안 쓴다'는 A 선배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동행과 걸어가며 수차례 확인했는데, A 선배가 그리 말을 하고 나니 그런 이들이 눈에 더 띄는 것도 있겠지만, 정말, 다 남자라서, 나는 너무 놀라고 말았다.


다음 날,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던 버스에서는, 마스크를 내리고 통화를 하다가 기사님께 혼난 젊은 남자 하나를 보았다. 기사님은 마이크를 들고 '계속 마스크 그렇게 내리고 말할 거예요' 하고 물었고, 남자는 모르쇠하더니 기사님이 마침내 정차 후 일어나셔서 마이크를 들고 직접 눈을 보며 말씀하시자 자신을 공격한다는듯 기사님을 노려 보았다. 승객들은 그 남자 하나 때문에 기다려야 했다. 남자는 기사님이 '계속 마스크 그렇게 내리고 말할 거냐고요' 하는 말을 세 번 더할 때까지 버티고 기사님을 노려 보았다. 이상한 순간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쓰게 하는 그 상황이 안타까웠다.


기사님이 마침내 '마스크 올려요' 하고 두 번 말하자 남자는 되레 마스크를 턱 밑까지 더 내리며 뭔가 말하려 했고, 기사님은 '마스크 올려요' 하고 빠르게, 좀 더 힘주어 말했다. 남자는 그제서야 마스크를 올렸고 기사님은 마침내 자리로 돌아가실 수 있었다. 버스는 그렇게 출발했다. 이런 일은 너무 많을 것이기에 해프닝으로 넘기면 그만이지만, A 선배의 발언 이후 모든 기억의 파편들이 연속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버스를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이상한 신경전을 견뎠여야 할, 그러니까, 견디지 않아도 될 일을 견뎌야 할 그 기사님이 안타까웠고 마음이 아팠다. 버스 안에는 분명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몇 달 전부터 적혀 있고 방송도 그렇게 하고 뉴스도 그렇게나 나왔지만, 다른 상황에서도 종종 느꼈던 건데, 공고 등을 안 읽을 사람은 안 읽더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데,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아서 씁쓸할 때가 있다.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이 경우는 더 나쁘지. 돌아와서, 그렇다고 '남자는 왜 그래' 할 생각은 없다. 대다수 남자들은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다니는 게 사실이니까.


대다수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며 이는 자신만의 건강이 아니라 혹시 모를 보균의 가능성, 그것을 막기 위한 노력,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걸려서 회사 등 조직에 피해를 끼칠까봐 걱정하는 것,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막으려는 것 등의 복합적인 심리가 들어간다. 병에 걸리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므로 기능하는 여러 걱정거리도 이유가 된다는 말이다. 근데, 그런 것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신은 무적이라 여기는 그것. 정권의 입맛이라고 호도하며 정치적으로 장난질하다가는 역사가 반복된다. 반복되는 한복판에 우리가 지금 서있기도 하고.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요즘, 서로 미워할 거리라도 만들지 않길 바란다.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소수의 악행에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이 사회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그냥 인간이든 동물이든 함께 숨쉬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공간은, 그러기 마련이니까. 제발 모두를 위해서 마스크 좀 쓰자. 애들 학교도 좀 가자. 제발 좀. 이런 인간들에게는 '씹을' 거리 주지 않게 꼭 마스크 쓰라고 세게 말해야 그나마 말을 들으려나. 자나깨나 본인만 생각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마스크 의무화가 잘 정착되길 바란다. 강하게 말해야 듣는 이들이 있으니 '의무화'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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