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싫어진 게 꽤 되었다.
해가 뜬 시간이 좋았다. 광합성의 기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 참 많은 시련과 이별과 죽음 환상이 있었지만 난 죽지 않았다. 잘 견뎌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게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나는 아주 잘 해내고 있다. 잘 벼텨냈다. 숨돌릴 틈이 조금이나마 생기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빈도가 획기적으로 줄었다는 걸 말이다.
최근 누군가 이직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지만 업계가 달라 그런 건지 뭔지. 그 정도의 고통일까 싶었다가 한편으로는 그래서 삶이 늘 힘들기만 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도 사랑이 충만한 시간들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생각하면 또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인간은 다 가질 수 없다는 것. 다 가질 수 없으니,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 뭔지를 선택하라는 것. 그것이었다.
인간은 다 가질 수 없다. 그러나 발전을 꾀한다면 그 분야에서는 스스로 전력을 다해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져야 한다. 뭐든 쉬운 건 없다. 한 산을 오르면 다음 산이 나오고. 산을 오르고 나면 또 다른 생각하지 못한 것이 나오고. 넘고 넘고 또 넘고.... 그러나 그러다 보면 제자리에 천착해 발전하지 못한 이들도 많이 만난다. 이들에게 발목 잡히지 않게 아주 유의해야 한다. 각.별.히.
애니웨이, 밤이 싫은 나는 새벽이 참 좋다. 아침이 좋다. 점심이 좋다. 점심이 지나고 오후 세 시쯤이 되면 이제 하루가 저물겠지 하는 조바심과 묘한 기분이 섞인다. 대개 좋다. 설렌다. 이 시간을 어떻게 더 해를 맞으며 뭘하지. 내게 시간이 이만큼이나 있네. 일만 하다 가는 시간들이지만 오늘처럼 오랜만에 일기를 열 여유가 되는 날이면 또 다르지. 기분 좋게 장난감 같은 술 한 캔 들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내 현실의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다. 스스로 충전하는 시간. 그토록 갖고 싶은 시간.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그 모든 고통들을 지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비약까지 해보게 하는 시간. 그런 생각이라도 찰나 들게 하는 시간.
밤이 슬픈 나는 해가 뜨면 기분이 아주 좋다. 새소리가 들리고 간지러운 바람이 있는 이 묘한 계절. 봄과 여름의 중간. 이 찰나. 참으로 아름다운 이 계절. 비록 매일같이 한강에 누워 이 계절을 누릴 사치는 꿈꾸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가능성만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그 묘한 바람 비린내와 때론 들려오는 한강 선착장의 그 음악들. 그가 좋아하던 음악, 내가 좋아하던 음악, 내가 좋아했던 그의 음악, 음악, 음악, 음악....
사랑했던 순간들에 정신의 파편을 뿌려놓으면, 마구 어지러이 흐트러진 이 마음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된다. 나는 수면 바닥을 차고 올라가 다시 수면 위로 숨을 가쁘게 내뱉는 중이다. 그 바람을 맡으며 다는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사랑이 충만한 일상을 살려고 꽤나 노력하는 것이다. 자꾸만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또 찾아내고.... 비록 참으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주 콩알만큼이라도 나아졌음을. 그 진전에 의미를 두며. 해를 잔뜩 머금고 나는 묘한 자유와 해방을 느낀다. 현실과는 다르지만, 비교 대상을 과거에 두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팠던 과거들. 지울 필요 없이, 그저 떠오르지 않도록, 햇살에 던져 태워버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