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새삼 더 느끼는 건 말이다. 어른이 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란 거다. 세상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뚝 떨궈진 기분. 그 기분은 오래 전부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쎄. 나도 모르게 한 편으로는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보호막이 생길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이렇게 살다 보면 해피엔딩, 이렇게 살다 보면 누군가 알아 줄거야 같은 허황된 기대. 보장받을 수 없는 붕붕 뜬 기대들. 그런 작은 기대들 덕분에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던 과거와 달리 이젠 모든 걸 혼자 하는 게 당연해진 세월들이 흐르고 나니, 그런 기대들은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다. 말라 버려 없어진 기대들, 본래 그런 것이 없었으니 쥐어짜야 했던 내 스스로에게, 앞으로도 계속해서 쥐어짜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 앞으로도 기댈 곳은 없을 것이고 믿을 것은 나뿐일 것이라는 그 당연한 결론. 알고 있었으면서도 요즘은 새삼 왜 이리 잔인한지.
어른이란 얼마나 감내할 게 많은가. 당연히 해내야 할 것이 많은 게 어른이고 그래서 좋았는데, 요즘은 정말 속칭 말하는 번아웃인 건지. 나는 그냥 당연히 해내던 것들에 대해서 또 해내고 해내고 하다가도.... 끝없이 추가되는 과업에 웃을 때가 있다. 아니 이제 웃지도 않는다. 그냥 아, 또 이러네. 아, 어른의 길은 어렵네. 별 유치한 생각이 든다. 절실하게. 과거보다 더 어려진 것만 같은 착각도 든다. 줄곧 그 때의 나에게 돌아가 묻는다. 이거 어때. 저거 어때. 그것도 이제 많아져 버려서 이젠 묻기도 민망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방법을 알고, 그냥 이겨내고, 묵묵히 살아가면 된다는 것도 알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알고는 있지만.... 뭔가 다르다는 것이다. 뭔가 다르다. 그건 권태일까. 회의일까. '현타'일까.
아등바등 살아내면 더 큰 미래가 기다릴 것이라더 나의 꿈은 보기 좋게 배반당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초라하게 보는 날들이 늘어만 간다. 이게 내가 원했던 걸까. 정말 그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나쁘게 치부할 상황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나는 머리를 조여매는 고통에 시달리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이게 정말일까. 하면서 말이다. 분명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분명 열심히 살아낸 결과로 좋아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다. 산 하나를 넘으면 다른 산이 보인다는 말은 이제 식상할 정도. 그냥, 참 산다는 것은 늘 새로운 것이겠구나. 그렇구나. 한다. 그러니, 어린 시절을 지나치게 철들어 보낸 시절이 아쉽기도 하면서도, 그랬으니 이나마 살아있다고 알고 있기에, 그저 칭찬해줄 수밖에. 의식적으로 그리 해줄 수밖에 없다.
방법이 없다. 그저 살아있는 수밖에. 아프지 않게 건사하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게 해주고, 알을 깨느라 겪는 고통들에 대해, 미안하지만, 과거의 큰 고통에 비해 별 것 아니라고 위로해주면서 이끌어갈 수밖에는 없다. 그러다 보면 또 나아지겠지. 점점 무던해지는 것 말고, 또 나아지겠지. 끝없이 생기는 새로운 퀘스트들에 대해, 무던히 해내다가도, 가끔씩 오는 공포에 머뭇거리다가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듯. 그냥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또다른 그림이 그려지겠지. 버티자는 말도 의미없다. 그냥 그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