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산다

by 팔로 쓰는 앎Arm

눈이 덜덜덜덜덜 떨 때면 병원을 가야지 하면서도 안 간다. 가봤자 별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런다. 그냥 쉬라고 하겠지. 그냥 쉬어도 덜덜덜덜덜 떠는 걸 아니 그냥 안 간다. 그냥 가봤으니까. 그러면서도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하나 싶다가도 내버려두면 언젠가 나아지겠거니 한다. 덜덜덜덜덜 떠는 눈을 그냥 그대로 둔다. 미뤄둔 과제처럼 매일같이 안과 가야 하는데 하다가도 뭐 중요한 일 하고 산다고 자꾸만 뒤로 미뤄진다. 참 웃긴 일이다. 살려고 일을 하는 건데 자꾸 일이 우선이 된다. 돌아보면 난 늘 그랬다. 사람 안 변한다는 게 이래서 그런 건가 싶다. 일 말고 뭘 할줄 알지.


나는 일기를 쓴다. 이렇게 가끔 쓴다. 자주 쓰는 것은 찝찝하다. 기쁜 마음은 기록하지 않는다. 소중한 것들도 그렇다. 그저 마음에 품는다. 나는 집안일을 한다. 나는 일일일일일을 하면서도 다른 일이 없나 찾는다. 할 시간도 체력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넥스트만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좀처럼 지금을 살지 못한다. 무용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싫다. 그래서 덜덜덜덜덜 떠는 눈을 자꾸만 뒤로하고 뭘 한다. 그게 문제다.


정말 소중한지 몰랐던 걸 버렸다. 버리고나니 좀 아팠다. 익숙해질 거라 생각한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언제나 시간만큼 좋은 약이 없다. 물론 내 안에서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 말이다. 그 소중한줄 몰랐던 것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아는 건지, 없으니 퍽 쓰렸다. 웃길 노릇이었다. 언제든 그걸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모순적으로 그걸 또 지키고 싶었다. 이를테면 될 대로 되라지. 그런 마음이었다. 그게 나를 놓지 않을 걸 알았으니까, 그냥 툭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진득하게 붙어있는 대상은 또 아니라서, 내가 툭 버리면 저도 나를 툭 놓을 것이었다.


그걸 알아서 미루던 것을 마침내 해치웠던 날, 나는 꽤 시원함을 느꼈다. 나를 옭아매던 것에서 벗어난 기분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러더니 좀 슬펐다. 다시 없다는 사실 때문에 좀 슬펐다. 인연이 시작될 때부터 끝을 정하는 버릇이 있다, 나는. 모든 것에 그렇다. 내가 먼저 버리리라. 그 어떤 것에든 그런 생각을 한다. 그건 꽤나 안전하고 좋은 방법이다. 내가 좋거나 놓치지 말아야 할 대상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지만, 그 소수를 제외하면 나는 꽤나 잘 버린다. 뭐든지간에.


썩은 것은 버리자는 주의다. 썩은 것을 주워 와서 물을 주고 할 깜냥은 못 된다. 그 대상이 무엇이느냐에 좀 다르지만, 그 썩은 것에 새 싹이 틀 기미가 콩알만큼이라도 보인다면 또 열성을 다하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그 대상은 소수다. 극히 소수다. 웬만한 걸 믿지 않는다. 늘 그렇다. 믿지 말자고, 기대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 괴롭기 때문에, 나는 자꾸 일기를 쓰며 상기시킨다. 그러지 말라고 말이다.


애니웨이, 소중한지 알면서도 몰랐던 것, 정말 소중한줄 알았다가도, 아니라고 부정하던 것. 결국엔 버릴 것을 알았던 그것을 버리고, 나는 가끔 아팠다. 일할 때 외에는 아팠다. 일하는 시간은 날아다니다가도, 퍽이나 아팠다. 근래의 나는 어느 것에서도 위안을 잘 얻지 못했다. 일에 기대다가도 뒤통수를 맞은 날이면, 나는 뒷목이 뻐근해 더 덜덜덜덜덜 떠는 눈을 붙잡고 그냥 울었다. 엉엉 운 것은 아니다. 그냥 주룩주룩 흐르는 걸 내비뒀다. 오그라들게.


내가 버렸으니, 다시 주워올 생각은 없다. 모든 것은 시간이 약이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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