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자신이 구리면 남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이 조직엔 그런 사람이 많다. 다는 아니지만, 많다. 피하거나 설득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나이와 연차에 기대 자신이 맞다고 논리없이 우기는 이들이 많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거나 자기를 무서워 하라고 화를 분출하는 이가 많다. 보는 사람은 웃길 노릇이다.
이 직업을 택하고 가끔 후회하는 날이 있다면 그것 하나다. 눈에 빤히 보이는 선한 의도를 그저 욕하고 싶어서 곡해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다. 그건 내가 아니라 제3자의 일도 해당한다. 누가 보아도 저 사람은 선한 의도인데 과하게 그걸 배척하는 무리가 있다. 그럴 만한 '깜'이 아닌 것인데 그러는 일이 있다. 물론 선한 의도를 연기하며 다른 일을 하는 이를 잘 가려낼 필요는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선견지명이 아니다. 제대로 판별해낼 눈이 없으니 무조건 새로운 것을 배척하며 그걸 이상하게 만드는 이들에 대한 것이다.
이 회사에 와서 일을 하며 느낀 것은 어쩌면 '선한 사람이 이긴다'는 생각이 '투 머치 나이브'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난 아직도 내 자신에게 당당하기 위해, 선한 사람이 이긴다고 생각한다. 매사에 그렇게 일하고, 내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에 책임을 다한다. 그렇게 하는 건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한 것이고, 나로서 당당하기 위한 것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좋은 사람들은 조직을 떠난다'는, 조직에 떠도는 '전설' 혹은 '낭설' 같은 것이 정말 맞는 말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기 시작했다. 각자의 이유로 더 나은 선택과 발전을 위해 떠났다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정말 '악한 사람만 남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악하다는 것은 무책임, 불성실, 무능력을 모두 포함한다. 젠더감수성, 피해자 보호 같은 건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그저 선정성에만 골몰하는 이들이 남아 그런 이야기를 농담이랍시고 시시덕대는 걸 보면서, 수년이 흘러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은 이 업계의 일부 모습에 이제서야 '이게 다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계몽하려는(혹은 아니라고 소극적으로라도 막으려는) 사람마저 다 떠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결말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남아서 그런 목소리가 틀렸다고 반박하는 사람이 몇이라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갱생 가능성을 믿지 않으면 이 곳에서 지낸 시간들이 지극히 헛된 시간으로 잘못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투쟁하고 반항하고 반박하는 것. 필요할 때 용기를 내는 것. 매일같이 그렇게 해왔기에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도 치열했던 시간에 기대, 허전한(또는 허무한) 시간을 달랠 수 있는 것이다.
선 자리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혹은 이 직업에서 일하므로 지켜야 하는 당위적 요소가 있다. 더욱 더 생각해야 하고, 더욱 더 지켜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선정성에 기대는 것이 옛날 일이라는 것을 (그 옛날에도, 의식적으로 안 그랬던 사람들도 있다) 아직까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걸 지적해야만 아는 것은 분명 부끄러워 해야 하는 일이 맞다. 나이와 연차에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