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 일

by 팔로 쓰는 앎Arm

늘 그렇지만, 가지 않을 것 같던 한 해가 이제 간다.


가지 않을 것 같던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참 잘 버텼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많이 아팠고, 일기로 남기고 싶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최고가 되지 말라는 것, 적당히 살라는 것, 살살 하라는 것. 그 공무원 특유의 보신주의가 나를 죽이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야만 하는 조직이라 성과를 내되 눈에 띄지 말라는 아주 모순적인 주문들이 존재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다. 재수없는 말로 들리거나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을 알 거다. 그런 조직이 존재한다. 다 해내면 고까워하는 곳 말이다.


내가 버린 것들의 역습. 문득 이 말이 내 뒤통수를 때린 날이 많았던 한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 삶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선택해온 것들이며 지금을 지나고 나면 분명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긴 선으로 증명해보일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떠한 괴롭힘에도 분명히 손에 쥐어지는 성과와 좋은 취재원들 덕분에 버틸 수 있는 시간들이 나를 지켜줬다. 어딜 가나 그랬지만, 유독 촌스러운 인간이 많은 조직이었다. 덕분에 나의 소중했던 부장과 선배들을 한 번 더 마음 속에서 지켜내는 계기가 되었다.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일 잘하는 부장, 기자정신이 투철한 선배들, 동기들. 그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함께할 때도 알았지만 이렇게나 다시 볼 수 없게 될 줄은 몰랐기에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에도 희망은 있었다. 선배들은 대거 이 조직을 탈출했다. 거기 에이스 다 나갔다던데. 이런 말은 어딜 가나 떠도는 말이지만,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싶으면 바로 사라지는 일이 속출했다. 인사 발령은 정말 잦았고, 퇴사자 명단은 매일 업데이트됐다. 조직 문화가 촌스럽다 싶더니, 결국 촌스러운 사람들만 남은 곳이 되었다. 그래도 내 갈 길은 가야 해서, 나는 내 책임을 다했다. 그건 내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아등바등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배운대로 할 뿐이다. 아주 투철하게 배웠던 덕분에, 나는 그걸로 아주 잘 먹고 살았다. 그걸 아니꼽게 보는,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하는 시선들에 나는 늘 그랬듯이 참 무감각했다. 가장 따듯한 로봇. 그 정체성이 어쩌면 내가 이 일을 하도록 지켜주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거기에 더해 나를 굳건히 지켜준 건 초심이다. 내가 이 조직을 택한 것은 다른 이유는 없었다. 하던 일의 연장 플러스 알파가 가능하다는 것과 달리 준비하는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에 지장을 주지 않을 만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당직은 많았고 별의별 인간 군상을 상대해야 했지만 그 스트레스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때로 풀릴 수 있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내 아니라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처음부터 이러기로 했고, 그것 때문이 아니다. 선택과 집중은 늘 필요하며 나는 잘 버리는 인간이니, 처음의 길이 맞다.


정신은 그렇게 달리고 있었고, 몸도 잠을 자지 않고 달렸다. 그러다 아팠고, 치료도 받았다. 생전 처음 받는 치료의 연속이었다. 원인 불명.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고통이 극심했다. 가던 병원의 의사는 일주일만이라도 쉬라고 했다.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이 사람 전혀 쉬지 않을 것 같으니 어떻게든 말려야겠다고 말했다. 예전에도 회사 인근의 한 친절한 의사가 회사를 그만 두라고 하거나, 밥을 먹지 않는 걸 보고 식단을 다 보내라고 한 적이 있거나, 한 의사는 엘리베이터를 잡고 따라와 건강을 위해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걱정이 된다고 충고를 해주었던 적이 있다. 그 때는 젊음의 치기,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은데 라는 생각으로 넘겨들었던 것들이, 이제 몰려온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 조직에서 온갖 마녀사냥을 당하느라 지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참고할 점: 정말 마녀사냥? 그렇다. 그래서 이 조직에 들어온 이들은 금세 도망가거나 입사를 선택하지 않는다. 공고만 봐도 그게 보인다. 퇴사 의사를 밝히고 공고가 새로 올라왔는데, 그 댓글이 가관이다. 요약하자면, 양심이 있냐는 댓글이다. 경력직의 눈인데,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해 그나마 시간적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이 조직을 택했었다. 공고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해보도록 하자)


애니웨이, 치료를 받기 위해 더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일하고 사이드를 하고 치료를 받고, 그러다 보면 한 달이 하루처럼 지나갔다. 별 말도 안 되는 일에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나는 올해 절반은 죽어 있었고, 또 그 안에서 팔딱이며 살고자 노력했다. 괴롭히면 선을 그어주고자 최선을 다했다. 업계가 좁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예스걸을 잃을 수가 없어 괴로웠다. 내게 일어난 시시콜콜한 일을 알고 있는 동기는 내가 투머치하게 긍정적이라고 핀잔을 줬다. 보통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이라고, 그러다 병이 온다고 우려했다. 동기에게서 퇴사하라는 말을 지겹게도 들을 때마다, 타사에 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오라버니 하나가 회사에 우리는 철저한 을이니, 회사 안에서 신고라도 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조언을 듣다 보면 현실의 고통은 사라지곤 했다. 그랬다. 나는 최악의 하루들을 보내고 있을 때, 버티기 위해 뭐든 했다.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말고, 최악의 기분을 잊기 위한 것으로.


유달리 가지 않던 한 해 때문에 내가 나자빠져 있을 무렵, 사이드 프로젝트 독촉에 기뻐하며 빠져있다가, 드디어 12월이 왔다. 12월이 오고도 아주 바빠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더 보완해야 하는 시간을 2주나 날려버렸다. 물론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뭐랄까. 기뻤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12월이 빨리 갔다는 사실이 기뻤다. 생각보다 아주 더 빨리 가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2022년 나는 주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당신 인생을 당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냐" 같은, 망상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앞뒤 없는 말을 하는 미친 자를 거쳐, "선배들이랑 멱살잡고 싸우면서 회사 다녔어. 뺨이라도 쳐" 같은 해결책을 조언이랍시고 건네는 사람을 거쳐, "네가 너무 잘나서 서운해. 아쉬운 게 없어보여. 그래서 괴롭히는 거지" 같은 말을 분석이랍시고 하는 사람을 거쳐, 나는 올해, 그래도 좋은 멘토를 얻었고, 내 꿈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주체성. 이 모든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설령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면 그건 환상이 아니다.


그걸 환상이라고 치부하는 이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을, 고개만 돌려도 삶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보일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관대했고, 희생했으며, 절대 멈추지 않았다.

몸을 잘 돌보지 못했지만, 연말에라도 정신 차리고 돌보려고 했으니, 좋은 점수를 주려고 노력은 해보겠다.


나는 개인 삶보다는 그걸 희생해서 일하는 걸 사랑하고, 보신주의와 맞지 않으며, 연공서열에 따라 노닥거리며 밑의 사람 밟으라는 문화와는 맞지 않는 인간 유형이다.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그 점은 올해 참 잘한 일이라 하겠다.

집요하게 버텨서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것. 계속해서 잘 지켜오고 있으니, 잘 버텼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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