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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Oct 22. 2016

가만히 있을 용기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아프게 할까"

가만히 있는 것도 재주다. 현 상황에서 변하는 게 없을 거라는 게 명확할 땐 가만히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미래를 포기할 용기, 올지 모를 기회를 놓을 용기 등등.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놓고 보니 그래 보이는 건 맞다. 그리고 난 그걸 명확히 지양한다. 세상은 자꾸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면서 화자는 아닌 듯 연기를 한다. 나 역시 제3자의 입장에서 내게 해줄 말이 마땅치 않아 씁쓸하다. 아니, 사실 답을 알고 있으면서 그게 아닌 것처럼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힘든 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거짓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일은 일어난다. 그래서 숨 쉬듯 가만히 있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어도 일이 일어난다면 차라리 내 의지를 넣어보는 게 나을 때도, 혹은 그렇지 않은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때론 그냥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주변에 가만히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나 역시 그 흐름에 휩쓸릴 수밖에 없거나, 혹은 그 가운데 가만히 있었다는 것만으로 득을 볼 때도 적지 않게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정답이 아니다. 수를 놓는 데 있어, 시의적절하게 무언가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 많은 경우 이것은 다른 조건이 결정하거나 과거의 내가 만들어뒀거나 혹은 손을 떠난 다른 것이 이끈다. 이 경우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그저 묵묵히 있는 게 답이 될 수도 있다. 답이 없어 정말 답답하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냥 답이 없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때가 있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몰라 악수를 놓고 싶지 않아 고민하기보다 그냥 단순하게 첫 생각을 끝 생각으로 옮길 때가 차라리 장기적으로 더 좋을 수도 있다.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 많지 않다. 단순하게 있는 게 가장 좋다는 걸 아는 것. 하루에 하나라도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 혹은 그조차 나도 습관이 돼 모르지만 어쨌든 뭔가 했다는 사실, 열쇠를 갖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다. 내가 나를 조절할 수 있는 학생 시절과 달리 사회란 실전이고 남의 말을 상상하고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곳이라 그렇다. 그곳에 속하고 싶지만 속할 수밖에 없고 어울리고 싶지 않지만 그조차 고고한 척하는 환상에 불과한 건 아닐까 무섭다.


지나고 나면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는 일들이 있다. 그런 걸 하나하나 의식하고 싶지 않아도 숨 쉬는 것처럼 일어나는 성차별, 가하는 이는 모르는, 어쩌면 그게 당연한 무질서. 모두 아프고 따갑지만 말하지 않아야 하는 부조리들이 기똥차게 생활에 아주 잘 스며들어 있는 게 황당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문제없는 곳이 어디 있으랴 하고 넘어가고 만다. 그냥 그렇다. 그렇다고 떠나는 게 답이냐. 그건 또 아니다. 맞을 수도 있다. 답이 아닌 게 답이라니까. 모를 일이다.


다른 환경에 처한 이들이 서로 공감대가 없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지역의 대학에 가고, 다른 종류의 직장에 취업을 하고, 그 후의 삶도 달라진다. 수순이다. 그게 사람 사이를 가를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내가 너무 꿈에 젖어있었나 보다. 그렇다고 그걸 의식할 필요도 없지만, 모른 체할 필요도 있다. 그저 알고만 있으면 된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자유롭게 사는 친구들, 혹은 다른 직종의 친구들과 보수적인 직장 문화를 공유하긴 어려운 일이다.


그걸 시도하는 것도 어쩔 땐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냥 점점 말할 곳이 줄어든다. 네가 힘든 걸 안다고 내가 덜 힘든 건 아니다.라는 모 방송인의 말처럼, 굳이 내 일을 구구절절 떠들 일 없던 거다. 사랑을 할 때도, 우정을 나눌 때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어른의 세계로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팍팍하다. 그럴 때면 술자리를 찾음 됐지만, 속도 건강도 살도 우려되는 게 많다 보니 스트레스의 역순환이라, 그것마저 피한지 오래다. 술이 나를 잡아먹는 건 싫기 때문이다. 작년, 올해 등등 일을 거치면서 과한 술자리에 갈 상황이 많았기에, 그 후로 완전히 질려버린 거겠지.


놀라운 공감대를 가지고 있던 이들도, 세월에 깎였는가. 자신의 환경이 아닌 것에는, 혹은 자신보다 나아 보이는 것에는, 다른 잣대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아프게 할까. 모 영화 대사처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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