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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Nov 03. 2016

도망가고 싶어

늘 도망가고 싶었다. 그 부침이 격할 때를 지나면 이내 잠잠해지는 충동이긴 했지만 난 늘 도망갈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가능하다면 도망가고 싶었으니까. 누구에게서든 어디에서든인지는 불확실하지만 난 늘 그걸 원했다. 도망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내 지난 기억에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언제나 나는 극단이었다.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생각했으니까 오늘 못할 일은 없었다. 한 번 사는 거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내 기준에서는 극단으로 노력했다. 뭐. 도덕적 상식적 선에서 허용하는 한 가능한 걸 다 했다. 


대부분은 나를 갉아먹는 일이었다. 그것들이 내게 어떤 이름을 줬든, 다 내 안에는 결국 상처로 남았다. 그것들을 적절하게 해소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지금 내가 해야 할 것,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에만 치중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기억할 게 별로 없다. 그냥 기계적으로 살았다. 당장 잠시 후라도 나사가 빠질 수 있을 것처럼 뭐가 그렇게 절박했는지 모를 삶을 살았다. 그래서 회색이고 검은색이다. 늘 죽음을 갈망했다. 


죽고 나면 뭔가 근사한 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던 거다. 어리석었지만 그건 참 아름답게 보였고 또 미지의 세계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지금 희망 걸 게 없어 보여서 그다음에 희망을 거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행복하거나 기쁜 일이 있어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마구 기뻐하면 행복이 저 멀리 달아날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던 건지는 몰라도, 실제 기쁜 일을 마구 기뻐하면 손에서 곧 빠져나갔다. 그래서 자꾸만 숨겼다. 기뻐도 기쁜 척하지 않았고 행복한 일을 알아도 그저 가만히 있었다.


두려웠다. 그것들을 입 밖으로 내면 곧 거품이 될까 봐. 그래서 자꾸 안으로 침잠했다. 나는 우울을 파먹고 들어가는 법만 알았지 거기에서 나오는 법은 알지 못했다. 거기서 꺼내 줄 사람도 없었고, 함께 우울을 파먹고 들어가거나 각자의 삶이 더 힘들다고 기대 오는 사람은 만났지만. 그래서 나는 더욱 도망치게 됐다. 나는 강해 보이는 겢싫었다. 나는 강하지 않았다. 우울을 당하면 당할수록 힘든 일을 버틸수록 나는 강해 보이는 사람이 됐다. 나는 강하지 않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우울하고 죽고 싶으며 그냥 보통의 나약한 인간이다. 


그래서 거기에서 도망치고 싶어 기계처럼 산다. 그것뿐이지 도대체가 강한 인간은 아닌 것이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인정하고 나면 그저 바스러져 가루처럼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상관없다. 우울을 꺼내 보인다고 나를 떠날 사람이라면 그저 떠나라. 이제 나는 아무렇지 않다. 어차피 내일도 별 게 없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무 흔적 없이 증발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그래서 꾸역꾸역 버티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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