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물에서도, 과정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사서 마시는 커피를 넘어, 본인의 손으로 내린 커피가 궁금하기 시작했다면, 이제 핸드드립 커피를 내릴 준비가 되었다. 가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눈을 높이다 보면 한없이 높아지는 것이 장비에 대한 욕심이기에, 처음에는 최대한 간소하게 꾸리기로 마음먹는 것이 좋다.
필요한 것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커피(2만 원~10만 원)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좋은 커피로 실패할 수는 있어도, 나쁜 커피에서 좋은 맛을 내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 번의 추출에 20g 정도의 커피를 사용하기 때문에, 긴 시간 보관된 원두에서 발생하는 나쁜 향미(예를 들어 짠맛. 아주 불쾌하다)를 피하기위해서, 커피 사용 속도를 고려해 적당량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100g, 혹은 200g 단위로 판매하는 것이 보통이며, 구매한 지 최대 2 주정도 안에는 모두 소비해주는 것이 적절하다.
구매 시, 홀 빈(분쇄되기 전의 원두) 상태의 원두를 구매할지, 분쇄된 원두를 구매할지 결정해야 한다. 홀 빈 상태의 원두를 구매하여 추출 직전에 분쇄하는 것이, 신선도를 지키는데 더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좋은 그라인더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미리 분쇄한 원두를 소량 구매해 보관에 신경 써주는 편이 향미에 더 좋다고 얘기하는 바리스타도 있다.(Ken Selby, 2018 US 컵 테이스터스 대회의 챔피언)
그라인더(2만 원~400만 원)
구입한 커피를 용도에 맞게 분쇄해주는 도구를 얘기한다. 손으로 돌려서 분쇄를 하는 수동 그라인더도 있고, 커피를 넣으면 자동으로 분쇄해주는 자동 그라인더도 있다. 가격은 작은 것은 1만 5천 원부터 시작해,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커피숍에서 사용하는 그라인더의 경우 400만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추출하는 것도 아니고, 원두를 분쇄해주는 기계가 뭐가 이리 비싼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바리스타들 사이에서는 비싼 머신보다, 비싼 그라인더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라인더는 맛있는 커피를 추출하는 데에 중요한 도구이다. 그라인딩의 중요성은 또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지 않은가? 10만 원 정도 투자할 수 있다면,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그라인더를 주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Feima 제품을 추천한다. (물론 2~3만 원대에도 완벽하진 않지만, 좋은 제품들은 많다.)
드리퍼(1만 원)
플라스틱 드리퍼의 기준으로 5천 원가량한다. 도자기, 유리와 같은 다른 재질도 있지만, 가정 내에서 관리하기에 가장 편한 것은 플라스틱이므로, 플라스틱으로 기준을 잡자면 5천 원 정도의 가격이면 구매할 수 있다. 하리오, 고노, 클레버, 등등 많은 종류가 있다. 본인의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 하리오 드리퍼와 클레버 정도를 많이 구매한다.
서버(1~5만 원)
드리퍼를 올려두는 주전자, 즉 추출한 커피를 받는 컵을 의미한다. 유리로 되어있는 것이 대부분이며, 생각보다 굉장히 쉽게 깨어지기 때문에,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굳이 필요 없다면, 커다란 머그컵 정도로도 대체 가능하다. 필자가 쓰는 서버는 8천 원짜리이다. 너무 자주 깨서 이제 저렴한 걸 쓴다.
필터(3천 원)
천으로 된 '융 필터'도 있지만,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귀찮은 감이 있다. 할 때마다 세척해 주어야 하고, 게을리 할 경우 나는 냄새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가정에서 종이필터를 사용하는데, 100장 기준 3~4천 원 정도의 가격이면 구매할 수 있다. 100장이면, 커피를 2킬로 까지 추출할 수 있으니, 가성비가 매우 뛰어나다 할 수 있겠다. 크게 표백되어 나온 하얀색 필터와, 표백 과정을 거치지 않는 노란색 누런색에 가깝다 필터로 나뉜다. 두 가지의 차이점도 존재하지만, 깊게 알아볼 단계는 아직 아니다. 덜 귀찮게 쓰고 싶다면, 하얀색 필터를 사자.
드립 주전자 (1~40만 원)
드립 커피를 추출하는 데에는 많은 방식이 있기 때문에, 굳이 드립 전용 주전자를 사지 않아도 된다. 필터에 담긴 커피 위로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우듯 부어 추출해내는 추출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방법에 익숙해지고, 좀 더 섬세한 방법을 통해 추출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게 되면, 목이 긴 주전자로 눈이 가게 될 것이다. 얇고 기다란 주둥이를 가진, 보기만 해도 구매욕을 자극하는 이쁜 주전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원하는 걸 고르면 된다. 가격은 특별한 기능이 없다면 2만 원 정도선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전기포트처럼 물을 넣으면 1도 단위로 온도조절이 가능하고, 드립 시에도 사용할 수 있게 주둥이가 길게 나와 있는 고가의 주전자도 있지만, 첫 구매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건 나중에 용기가 생기면 사보도록 하자. 필자는 브뤼스타 제품을 쓴다. 정말 예쁘다. 구매할 때 잘 놓치는 부분이 무게이다. 예쁘다고 너무 큰 주전자를 구매할 경우, 커피를 내릴 때마다 손목이 아플 수 있다.
온도계(5천 원~3만 원)
커피에서 온도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보통 90도에서 95도 사이의 온도로 추출을 시작한다. '뭘 이렇게 까지 하나'싶다가도, 1도의 온도 차이로도 달라지는 커피 맛을 경험해 본다면, 온도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스톱워치가 달린 저울(2만 원~30만 원)
기본적으로 시계가 옵션으로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몇 그램의 커피를 그라인딩 할 것인지, 물은 얼마만큼 투입할 것인지,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추출할 것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커피를 추출하는데 정말 기본적인 준비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곤, '저울이 왜 30만 원까지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반응속도이다. 좋은 저울일수록 영점을 잡는 데의 시간이 짧고, 무게 변화에 민감하고, 빠르다. 추가적인 다른 기능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것도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으므로, 2만 원에서 3만 원대 정도의 저울을 추천한다. 3만 원대의 저울을 사용 중인데, 반응속도가 조금 느린 감은 있지만, 익숙해지면 추출 자체에는 불편함이 없다.
가장 미니멀하게 구매한다면, 8만 원 정도 선에서 모든 준비가 끝날 것이다.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핸드드립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정도로, 커피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면, 이미 늦었다.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다. 준비가 끝났으니 기본적인 추출법을 알아보자.
딱 정해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리스타들이 고급 앞치마를 메고 정갈한 모습으로 핸드드립 커피를 추출하는 것을 볼때면, 그 과정이 마치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전문적인 과정들로 보인다. 물론 그 커피가 가진 특징을 파악해, 장점을 찾아내고, 그 포인트를 도드라지게 할 수 있는 추출방법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은 전문적인 바리스타에게도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 바리스타가 아니지 않은가? 돈을 받고 파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필요도 없다. 핸드드립의 또 다른 매력은, 핸드드립 커피는 추출한 커피뿐만 아니라, 추출하는 과정 또한 굉장히 즐겁다는 것. 그 과정을 즐기며, 커피를 커피처럼만 내리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가 사용할 커피는 20g, 사용할 물의 양은 340g, 물 온도는 93도, 추출 시간은 2분에서 2분 30초로 잡아보자. 드리퍼는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하리오 드리퍼로 한다)
이해하기 쉽게, 크게 세 단계로 나눠보자
첫 번째, 계량과 분쇄
얼마만큼의 커피를 사용할 것인지 무게를 잰다. 우리는 20g을 사용하기로 했으니, 그라인더를 저울 위에 놓고, 영점을 맞춘다. 그리고 20g만큼의 커피를 그라인더 안에 넣어준다. 수동이라면 이제 열심히 돌릴 차례이고, 자동이라면, 버튼을 딸깍 눌러준다.
두 번째, 세팅과 물 끓이기
물 끓이는 버튼을 눌러놓자. 온도를 설정할 수 있는 주전자를 사용한다면, 93도로 설정해두고, 그렇지 않다면 다 끓은 물을 주전자에 옮겨 담은 뒤 정수를 조금 더해주거나, 휘휘 저어 온도를 내려주자. 물을 끓여놓고 서버와 드리퍼, 그리고 필터를 준비한다. 하리오 드리퍼의 경우 원뿔 형태의 필터의 빗금 부분을 한번 접어준다. 그리고 하단 뾰족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짝 집어주면 모양에 알맞게 펴진다. 저울 위에 서버, 필터를 꽂은 드리퍼를 얹고 분쇄된 커피를 담은 뒤 영점을 맞춘다.
세 번째, 추출
이제 물을 부어 줄텐데,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세지 않게, 그리고 너무 약하지 않게 물줄기를 뽑아낸다는 생각으로 물을 붓는다. 우리는 총 세 번에 걸쳐 물을 부을 것이다.
사전 추출 (40g)
담긴 커피의 두배의 양만큼 물을 부어보자. 빙글빙글 돌리듯이 40g의 물로 담긴 커피를 골고루 적셔준다. 약간은 가늘게 부어야 할 것이다. 커피 속에는 이산화탄소가 들어있는데, 뜨거운 물과 만나면 밖으로 나오면서 통제하기 힘든 추출의 변수가 된다. 때문에, 미리 적은 물의 양으로 이산화탄소를 빼주어, 변수를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한 과정이다. 포인트는 골고루 적신다는 데에 있다. 커피층이 골고루 적셔졌다면, 이제 작은 스푼으로 커피층을 살짝 섞어준다. 교반이라고 부르는 이 작업은 커피가 좀 더 잘 추출될 수 있게 도와준다. 필터를 건드려서 찢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1차 추출 (40g + 150g)
적절히 적셔지고, 섞인 커피층으로 진짜 추출을 시작한다. 500원짜리 동전이 커피 층위에 놓여있다고 생각해보자.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원을 그릴 텐데, 이 동전보다는 작게 붓는다. 물줄기는 중간 정도로 부어주는데, 커피층을 물이 덮어도 좋다. 150g을 다 부을 때쯤엔, 커피가 물에 잠겨있을 것이다. 또 한 번 교반을 해준다. 스푼으로 커피를 10번 저어준다.
2차 추출(40g + 150g + 150g)
잠깐 지켜보자, 물이 내려가는 속도가 이상하리만치 빠르다면, 커피가 약간 맹할 수도 있다. 분쇄도가 너무 굵어, 성분이 제대로 녹아 나오기도전에 물이 커피층을 다 통과해버렸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입맛에 너무 연하다면, 다음에는 조금 더 가는 분쇄도로 커피를 분쇄하면 된다. 적당한 속도로 물이 빠진다면, 2차 추출을 시작해 보자. 아까의 500원 동전보다 조금 더 큰 곳까지 원을 그리며 물을 부어준다. 물줄기가 벽을 타고 내려 가진 않도록 주의하면서,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물을 붓는다. 저울이 340g이 된다면 물 붓는 것을 멈추고, 드리퍼를 살짝 들어 돌려준다. 커피층이 흔들리며 잘 섞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물 온도가 93도인 것을 기억하자. 뜨겁다. 조심스럽게 세 바퀴 정도 돌려준 다음 내려놓는다. 2분에서 2분 30초 사이에 추출이 끝났다면, 목표했던 것은 다 이루었다. 서버에 담긴 커피를 빙글빙글 돌려 잘 섞은 다음 조금 맛을 보고, 진하다면 물을 더해서 먹어도 좋다.
중간에 커피를 섞고, 저어주는 작업은 커피 성분이 물에 조금더 잘 녹아나오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필자가 말한 방법에는 총 세번 정도의 교반 작업이 있는데, 교반의 횟수에 따라, 그리고 정도에 따라서 커피의 진하기와 맛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결과물에 따라 과정들을 넣기도하고 빼기도 하면서 본인의 입맛에 맞게 조절하면 된다.
여름이라 아이스커피가 먹고 싶다면, 서버에 미리 얼음을 담아놓고, 커피를 추출한다. 물론 그때는 투입하는 물의 양을 조금 줄이고, 분쇄도를 조금 조절해주어야 싱겁지 않게 먹을 수 있다. 글이 길어, 시작하기도 전에 겁먹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커피를 갈고, 담고, 물을 끓여서, 부으면 끝이다. 중간중간 세세한 과정들은 귀찮다면 생략해도 좋다. 일단 먼저 커피를 추출하는 동작 자체에 익숙해지기로 하자. 그렇게 되면, 다른 과정들은 더 좋은 커피를 원하는 욕심이 이끌어 줄것이다.
아직 직접만든 커피를 마셔보지 못한 사람들이 커피를 내리는 퍼포먼스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