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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의 커피책 Oct 21. 2021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빠르게 만들어지는 완성된 한 잔의 음료



에스프레소



점심시간의 카페, 짜거나 단, 혹은 맵거나 느끼한 음식을 먹고 온 회사원들이 붐비고 있다. 바리스타들은 30초 간격으로 들어오는 주문을 맞춰 내보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이다. 시끌시끌한 이 광경 속에서 가장 많이 주문되는 음료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아메리카노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일 것이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의 집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음료는 고민해 볼 필요도 없다.


이젠 익숙해진 메뉴들이라 잘 쳐다보지도 않는 메뉴판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메리카노 위엔 한 가지 메뉴가 더 있다.  인기 있는 메뉴의 시작이 되지만, 메뉴 중에서 안 나가기로는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주인공, 에스프레소이다. 짧고 굵게 내려오는 이 작은 한잔의 커피는 꽤 씁쓸하기에  여러 명이 모여 메뉴를 취합할 때에 "전 에스프레소로 할게요"라고 말한 뒤에는, 곧 "그걸 왜 마셔? 난 도저히 못 마시겠던데"라는 누군가의 말이 당연한 순서처럼 나올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써서, 누군가에게는 양이 적어서, 혹은 허세 부리는 사람들이나 먹기 좋아하는 맛없는 음료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에스프레소는 여러 이유로 인기가 없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이 노골적이고 불친절한 메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에스프레소바'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점점 늘어가는 중이다. 아직은 그 시작이지만,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힙한 장소의 카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보면, 현재의 젊은 층의 수요가 카페를 변화시키는 중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아직은 그 자체로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에스프레소가 들어간 많은 음료들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예전 미국인들도 처음 먹어보곤 깜짝 놀라 물을 타서 먹기 시작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아메리카노', 달콤한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자칫 과할 수 있는 달콤함을 쌉싸름함으로 정리해내는 것이 매력적인 '아포가토', 말차 파우더와 우유를 비율에 맞춰 섞은 뒤 추가해먹는 '더티 말차 라테'도 인기다. 간단한 동선으로 내릴 수 있는 커피지만, 육중한 머신에 가려진 바리스타의 움직임을 보면 뭔가 복잡한 단계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인기가 없는 것 같지만, 어떤 사람은 찾아다니는, 또 누군가에겐 다가가기 어려운 메뉴, 에스프레소는 어떤 음료일까?



에스프레소란 ?




한 가지 정의로써 포함하기에는 에스프레소에는 너무나도 많은 레시피가 있다. 또한 기준이 시기마다 달라지기도 하고,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정석 레시피'의 경우도 연구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큰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곱게 간 원두에 고온의 물을 높은 압력으로 통과시켜 짧은 시간에 추출해 내는 커피


가게마다 사용하는 원두의 양이 다르고, 갈아내는 굵기도 다르며, 온도, 추출 시간, 추출해내는 양이 모두 다르다. 이는 사용하는 원두의 종류와 가게의 온도, 추출하는 그날의 습도가 다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면서, 사용하는 기계의 종류마다 또 다르다. 굵직한 개념 속에서 각자가 처한 환경에 맞게 바리스타들은 감각으로 매일 새로운 레시피를 구현해 낸다. 따라서 좀 더 간단한 구분 법으로는,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리는 작은 양의 음료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포터필터라고 불리는 숟가락 같이 생긴 장비에 곱게 간 커피를 담아, 위를 평평하게 만든 뒤, 꾸욱 한번 눌러준다. 커피 입자와 커피 입자 사이의 공간을 줄여 좀 더 효과적인 추출을 하기 위함이다. 머신에 포터 필터를 장착하고, 목표로 해둔 물의 양을 정해둔 시간만큼 흘려보내 추출한다. 잔은 미리 적절한 온도로 데워 놓아, 서빙 시까지 커피가 일정한 온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며, 다른 음료와 함께 서빙해야 한다면, 순서를 맞추어 나가기 직전 타이밍에 추출을 진행한다.


이전과 달리 높은 압력을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기 때문에, 그 전에는 녹이지 못했던 다양한 성분을 커핑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짧은 시간에 추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쫀득한 질감과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전 커피와의 가장 큰 차이는 추출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적다는 것. 이전의 카페에서는 커피를 미리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준비해두었다가, 퍼서 주는 방법을 사용했다. 지금의 녹차나 홍차처럼 커피를 '우려내'마시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주문과 동시에 음료를 준비하려고 했다면, 앉은 채 20분은 기다려야 했을 텐데, 현재와 같은 방식을 누가 이용하려고 했겠는가.


머신의 개발과 함께 떠오른 이 음료는 제조하는 데에 30초에서 40초 남짓한 시간이 든다. 커피를 분쇄하고, 포터 필터에 옮겨 담고 추출 버튼을 누르는 것 까지 포함해도 1분 남짓한 시간. 바리스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잠깐 구경한 새에 주문한 커피가 나오는 것. 에스프레소의 탄생은 카페를 이전과는 아예 다른 플랫폼으로 바꾸어 놓는 시발점이 되었다.




에스프레소의 시작




에스프레소 머신의 시초라고 부를만한 기계를 처음 생각해낸 것은 생경하게도 독일인 것 같다. 1878년 독일의 구스타프 게셀(Gustav Kessel)이 제출한 특허를 보면, 증기압을 이용해 커피 원두를 채운 작은 필터 사이로 물을 통과시켜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의 기계가 나온다. 제조 후에는 커피 찌꺼기가 담긴 필터를 청소까지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런 기계를 현실화 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 차례가 넘어가게 된다. 이탈리아의 루이지 베제라(Luigi Bezzera)가 디자인한 '이중 탭의 대형 기계(Giant Type with Double Tap)'는 처음으로 포터필터를 장착한 제품이었다. 여러 개의 추출 헤드를 통해 동시에 추출하면서, 레버를 통한 제어도 가능했지만 홍보가 부족했던 탓인지 널리 퍼져나가진 못한 비운의 제품이 되고 만다. 이때 등장한 데지데리오 파보니(Desiderio Pavoni), 그는 1903년 베제라가 만든 추출기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1만 리라에 베제라의 특허를 사들인 뒤 함께 사업에 뛰어들었다. 파보니의 아이디어로 스팀 완드를 장착해, 기계 내부에 축적된 열을 활용, 우유를 데울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되었다.  


베제라와 파보니는 함께 개발한 이 기계에 '카페 에스프레소(Cafee Espresso)'라는 이름을 붙였다. 에스프레소는 '빠르다'라는 이탈리아어로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커피라는 뜻이다. 완성된 기계는 '이데알레(Ideale)'라는 이름으로 밀라노 박람회에 출품되기도 했다. 당시에 만들어진 이 기계는 1.5 bar정도의 압력까지 가능했는데, 지금의 9 bar 압력 머신들에 비교해 봤을 때 현대의 에스프레소라고 부르기에는 힘든 정도였지만, 약 40년간 에스프레소 머신은 이 기계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둘이 만든 머신의 가장 큰 문제는 증기압이었다. 1.5 bar의 압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증기압에는 끓는 물이 필수적인데, 이 끓는 물의 너무 높은 온도는 커피에서 쓴맛을 과도하게 끌어내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다, 아킬레 가찌아의 등장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가찌아의 스프링 피스톤의 개발은 현재의 에스프레소와 좀 더 가까운 커피를 추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는데, 스프링의 물리적인 장력을 이용해 커피가루에 가해지는 압력을 높였다. 레버를 당겨 스프링을 위로 당겨주면, 생긴 공간으로 뜨거운 물을 넣은 뒤, 공간에 물이 가득 차고 나면 고정시켜두었던 스프링을 풀어서, 그 힘을 뜨거운 물이 커피퍽을 통과하는 데 사용했다. 가찌아가 개발한 이 머신은 1947년 처음 선을 보였고, 이는 최초의 현대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이 되었다. 이 레버식 머신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카페에서 사용되고 있고, 새롭고 편리한 에스프레소 머신보다 이 에스프레소 머신을 고집하는 바리스타들도 여전히 있다(기본적으로 굉장히 예쁘다.). 우리가 지금 크레마라고 부르는 갈색의 크림층이 처음 형성된 것도 이때이며, 처음 느껴보는 독특한 맛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저 레버를 앞쪽으로 당기면 챔버에 물이 차고, 그후 레버를 풀어주면 스프링의 장력으로 압력을 생성한다



스프링은 아름다운 미관과 함께 직관적인 사용법을 보여주긴 했지만, 한잔을 내릴 때마다 스프링을 고정시켜주기 위한 당기는 힘이 필요하다 보니, 체력의 소모가 적은 편은 아니었다. 1961년 에르네스토 발렌테(Ernesto Valente)가 발명한 페마 E61(Faema E61)은 기계의 힘인 전동펌프를 사용한 첫 머신이었는데, 덕분에 바리스타가 큰 힘을 들여서 레버를 당길 필요도 없어졌고, 기계의 크기 자체도 훨씬 작아졌다. 보일러로 내부에 있는 물을 가열하고, 이를 그룹 헤드로 펌프를 통해 보낸다. 예전의 바리스타의 팔힘과 스프링으로 했던 일을, 이제 전동펌프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후로 나오는 수많은 에스프레소 머신은 전동펌프로 그 압력을 생성해낸다.



클래식한 아름다움으로.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Faema E61 머신




그래서, 에스프레소에서는 무슨 맛이 날까?


 


가장 단순한 레시피의 음료지만, 가장 어려운 음료이기도 하다. 바리스타가 이해하고 있는 원두의 특성과 그를 고려해 만든 레시피로 뽑은 음료가 아무런 다른 재료도 거치지 않고 손님에게 나가는 음료이기 때문이다. 우유로 고소한 맛을 첨가할 수도, 시럽으로 단맛을 더해 호감으로 바꿀 수도 없다. 원두의 선택부터 시작해, 어떻게 추출할 것인가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정확하고 적절하게 이루어졌는가를 뽑아내는 작은 잔으로 바로 평가받아야 한다. 주문이 잘 들어오지는 않지만 들어왔을 경우 바리스타가 느끼는 부담감이 큰 음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실내의 온도와 습도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한잔의 에스프레소를 적절하게 뽑기 위해 바리스타는 많게는 10번이 넘는 추출을 한다.


이와 같이 에스프레소는 그 한잔으로 완성된 음료이다. 미각을 훈련하는 바리스타나 경험 많은 소비자들이 느끼는, 다채로운 형용사를 이용한 표현도 가능하지만, 이런 표현들은 일반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와닿지도 않을뿐더러, 사람마다 느끼는 맛도 다르기 때문이 일치된 경험을 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멀리 갈 필요는 없다. 받은 잔에서 쓴맛과 단맛, 그리고 신맛이라 불리는 산미가 적절하게 어울려 호감으로 다가오는지 생각해 볼 용기만 있으면 된다.


성공적으로 추출된 에스프레소에서는


잘 내려진 에스프레소는 기존의 아메리카노와 비교해 더 진득한 혀에 감기는 듯한 질감과,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인상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는 산미가 존재한다. 독특한 산미를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의 생두의 경우, ''꽃향이 난다'라고 표현할 정도의 화려한 산미가 느껴지기도 하며, 설탕과 같은 노골적인 단맛보다는 흰 밥알을 오래 씹었을 때 입안에 맴도는 은은한 단맛이라거나, 달고나의 향을 혀로 맡는 듯한 단향과 맛이 나기도 한다. 종류에 따라 밀크 초콜릿을 한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기름지고 단단하지만 씁쓸한 맛이 느껴질 수도 있고, 다크 초콜릿을 한알 입에 넣고 혀에 굴리는 것처럼 혀 뒤쪽으로 묵직하게 쌉싸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목으로 넘기고 난 뒤 코로 올라오는 향에선 비스킷을 삼켰을 때 나는 고소한 향이 나기도 하고, 홍차를 마셨을 때 같은 향과 허브향을 경험할 수도 있다.


데미타세라는 작은 잔에 담아 서빙한다. 어떤 카페에서는 설탕을 같이 주기도 하고, 주문할 때에 '설탕을 같이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는 곳도 있다. 각설탕을 주는 곳도, 가루로 된 설탕을 주는 곳도 있다. 최근에는 서빙 시 마시는 방법을 안내해주는 친절하고 전문적인 에스프레소바가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특별한 취향이 있는 게 아니라면 바리스타의 안내를 따르는 것이 좋다.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저어 마시는 건 초보나 그런 거 아니야? 쓴맛을 즐기는 거지'


일상에 퍼진 에스프레소의 오해 때문에 쓴맛을 참고 즐겨야 하는 것이 정석적인 방법이라고 아는 사람도 있다. 개인의 취향이 그렇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쓴맛을 호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는 것을 커피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그렇다. 유서 깊은 베니스의 커피숍에서는 에스프레소만을 위해 그들이 설탕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원하는 만큼 설탕을 넣어 단맛과 쓴맛을 함께 즐기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각설탕을 주는 곳이라면 한 모금 커피를 즐긴 뒤, 남은 에스프레소와 각설탕을 섞어 남은 것을 과자처럼 긁어 마시는 것도 별미다.





결정적으로는 카페의 역량에 달렸다



에스프레소의 레시피는 가게마다, 바리스타마다 다르다. 어떤 가게는 신맛을, 어떤 가게는 깔끔한 쓴맛의 경험을 강조하려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가게에는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 레시피가 따로 없을 수도 있다. 카페마다 강조하려고 하는 맛의 차이가 있음을 알고, 아직 까지 그런 레시피가 준비되어 있지 않는 카페도 아쉽지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손님들이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몇 번의 경험으로 에스프레소란 음료 자체의 이미지가 나빠지진 않길 바라며, 더불어 카페들이 최선을 다한 연구를 통해 자기의 에스프레소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덕분에 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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