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모임에서 톨스토이의 단편선을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고전을 좋아하고 흠뻑 빠졌더라면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땐 필독 도서를 왜 그렇게 거부했을까요. 필독이 필독인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이에 만난 고전도 꽤 강력함을 느낍니다.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톨스토이의 많은 단편 중에서 저는 <두 노인>에 오래 머무르는 저의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두 노인이 있었다. 예핌은 부자이며 고지식한 성격에 엄격하고 일처리에 완벽했으며 술, 담배도 하지 않았다. 그는 건강했으며 늘 일에 바빴다. 예리세이는 과거 목수였으며 지금은 양봉을 하는데 착하고 명랑하며 이웃과 사이가 좋으며 보드카, 담배를 즐기는 사람이다. 바쁜 예핌 때문에 일 성지순례를 쉬 떠날 수 없었지만 영혼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예리세이 말에 드디어 둘은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에 오른다.
“영혼보다 더 소중한 건 없으니까.”
“인간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가 주님의 뜻이니 아직 살아서 기운이 있는 동안에 꼭 가기는 가야겠어.”
예핌은 아들에게 뒷일을 맡겼지만 불안했고 예리세이는 내가 없으면 없는 대로 당사자들이 각자 좋을 대로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순례길을 가다가 예리세이는 한 마을에서 물을 먹고 곧 따라가겠다 하며 예핌을 먼저 보냈다. 예리세이는 물을 얻으러 들어간 마을의 한 집에서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죽기 직전의 가족을 만났다. 그는 그들을 지나칠 수 없어서 물을 떠서 먹이고 빵을 주었으며 페치카에 불을 지폈다. 며칠 후 예리세이는 길을 떠나려고 했으나 땅도 저당 잡혀있고 살길이 막막한 그들을 두고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다. 예리세이는 땅도 찾아주고 젖소도 사고 수레, 밀가루도 사 주었다. 그러다 보니 경비가 떨어지고 예리세이는 도저히 순례를 갈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가족에게도 별말하지 않았다.
"주님의 인도가 없었던 모양이다. 가는 도중에 돈을 잃어버렸지. 예핌 영감도 놓쳐 버리고 끝가지 갈 수가 없었어. 아무래도 내 잘못인 모양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라."
한편 예핌은 예리세이가 신경 쓰였지만 갈 길을 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는 같은 여관에 머무른 순례자에게 1 루블을 빌려주었는데 그가 처음부터 돈이 없었다는 생각과 함께 의심이 들었다. 예핌은 성지를 돌며 맨 앞 좋은 자리에 있는 예리세이를 발견했지만 도저히 만날 수 없었다. 그는 홀로 돌아가는 길에 예리세이와 헤어졌던 그 마을에 도착했다. 한 집에서 순례자라는 이유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데 그 집은 바로 예리세이가 구해준 가족들의 집이었다.
"우리들은 그분이 인간이었는지 천사였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온 식구들을 살뜰히 여기고 불쌍하게 여기다가 끝내는 아무 말 없이 떠나 버렸으니 도대체 누굴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구나. 그 영감은 여기서 나를 앞질렀던 것이다. 내 정성을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친구는 하느님께서 쾌히 받아들이신 것이다.'
예핌과 예르세이는 고향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예핌은 예르세이가 도왔던 그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지만 예르세이는 말을 돌렸다.
“몸은 갔다 왔지만, 영혼이 갔다 왔는지 누가 알겠나. 정작 다른 사람이 갔다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야.”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죽는 날까지 자기의 의무를 사랑과 선행으로 다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것이 하느님의 분부라는 것을.
이렇게 이야기가 끝납니다. 한 사람은 예루살렘에 다녀왔고, 한 사람은 예루살렘에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당시 신앙인들의 평생소원이 성지를 다녀오는 것인데 이를 이루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었을까요. 예핌은 순례의 길에 오르면서 그가 평소에 하던 대로 말과 행동을 단속하며 그리스도와 동행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아들이 시킨 일들을 잘하는지 염려했고, 여관에서 만난 이를 의심하느라 마음을 뺏기고 예리세이 같은 이를 쫓아다니느라 애썼고 자신이 비운 집안을 걱정했습니다. 예르세이는 순례의 길에서 완전히 집안일을 잊습니다. 동행하는 예핌과 잘 지낼 생각을 하고 걸으면서 기도하고 성자 이야기를 생각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다 만난 죽어가던 가족을 외면하지 않고 순례 비용으로 준비했던 돈을 그들에게 다 아낌없이 씁니다. 도저히 그곳을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옵니다.
과연 누가 예루살렘을 다녀온 건 것일까요?
누가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일까요?
한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사람의 것을 생각하느라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고, 한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일을 해서 예루살렘을 만들었습니다. 죽음과 소망이 없는 곳에 사랑과 선행으로 그리스도가 일하게 한 것입니다. 그 분부대로 행동한 사람인 것이죠. 예르세이가 죽음에 이른 가족을 살릴 수 있었던 건 그들을 모른 척하는 건 내 안의 그리스도를 잃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어서 순례는 어쩌면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힘을 다해 진심으로 타인에게 사랑과 선을 행하며 묵묵히 제 갈길로 가는 예르세이의 뒷모습이 깊이 기억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