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에이드 Nov 01. 2024

10월의 마지막 날

멋진 날들의 최종회

그러니깐 그런 날도 있다. 나의 의지로 조절하지 못하는 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에 몰아치는 날 말이다. 오늘따라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린다. 차는 밀리고 교정 치과는 가야 하고 옷도 사야 하고 아이디도 만들어줘야 하고 한숨 돌리니 내일 다시 치과에 가야 한단다. 오후 시간 동안 몰아친 집안일이 정신을 쏙 빼게 만들었다. 빠릿빠릿했던 일 처리 속도는 날로 느려지고 스트레스 관리가 안 된다. 이 와중에 운전하는 것은 왜 그리 힘든지 모르겠다. 야간 운전이라 빛 번짐이 심하고 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 속으로 생각했다. '어휴, 짜증 낼 힘도 없구나.' 시월의 어느 날이 그렇게 흘렀다. 그런데 마지막 날이란다. 뭔가 만족스러운 일들이 있었으면 쓸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기분에 어디서부터 해결점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톨스토이의 단편선 <불을 놓아두면 끄지 못한다>에서는 사이좋은 이반과 가브릴로 가 등장한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정다운 이웃이었던 이들은 아주 하찮은 일로 오랫동안 서로 소송의 소송을 하면서 싸우게 된다. 이 이야기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별거 아닌 것이 커져서 상황을 무겁게 하는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기 때문이다. 일상은 그렇게 큰 사건들이 흔들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들이 상대를 불쾌하게 하기도 하고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작은 것에 쓰였던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오늘 무슨 일로 지쳐서 그로기 상태가 되었는지 마음을 돌아보았다.



의도치 않았던 작은 행동들이 무엇이었을까. 시작은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순서를 정해야 했고 애들은 기다리는 것을 못 견뎌했다.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려고 애쓰다 보니 조급했다. 투두 리스트는 남아 있는데 중간에 처리해야 할 것들도 튀어나오니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것이다. 최근에 장성한 자녀들을 보면서 자신의 역할이 없어졌음을 깨닫고 힘겨워하는 지인을 만났다. 내 상황을 보면 그럴 때가 올까 싶은데 말이다. 하기야 이전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니 나에게도 제법 여유가 생겼다. 특히 주말은 이제 특별히 계획을 안 세워도 가족이 각자 시간을 잘 보낸다. 여유로운 날이 있는 것처럼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날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날은 그런 날대로 잘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여유를 불평하지 않듯 분주함을 탓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었다. 자신과 상황을 탓하면서 스스로를 연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자기 인식을 배우면서 시월의 마지막날을 보냈다. 올해 가을이 짧게 느껴지는 것만큼 시월도 금세 지나 버렸다. 시월은 멋진 날들이었다. 글에 남겨보려고 애쓸 만큼 하루가 소중했다.  20편의 글을 쓰려고 했는데 그렇지 못했지만  남겨진 12편의 글에 애정을 담았다. 글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과 시간에 감사하면서 깊은 가을과 만나는 또 다른 1일을 기대한다.  

 


나는 10월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L.M. 몽고메리-



이전 11화 사랑과 선행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