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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리를 잘합니다

매일 글쓰기 02

by 자몽에이드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빠른 대답을 낼 수는 없다. 이런 질문을 학생 생활환경 조사서나 자기소개서, 면접 등에서 받아본 탓인가. 정제된 글과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차 오른다. 그런 경험들을 떠나서 스스로에게 또 주변 사람에게 듣는 '내가 잘하는 것'을 편한 마음으로 생각해 본다. 최근에 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엄마, 우리 집은 정말 깨끗한 거 같아. 언제 가도 정리가 되어 있어." 매일 보는 집이 깨끗한지 더러운지는 판단할 만큼 주변에 관심이 있는 애가 아니다. 갑자기 왜 그러는지 물으니 최근에 친구 집에 방문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름 집에 와서 엄마를 칭찬한 거였다. 내가 생각해 봐도 나는 정리 정돈에 능하다. 단지 물건을 쓰고 제 자리에 두는 간단한 습관의 연속인데 스스로도 인정하고 딸에게도 인정받는 장점이 되었다.



상단 이미지는 현재 나의 책상 위이다. 보던 책들, 고지서, 운동 기구, 색연필, 약통, 애들 물건까지... 제자리에 안 간 것들, 못 간 것들, 제자리가 없는 것들이 뒤죽박죽 엉켜 있다. 정리정돈을 잘한다고 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앞 뒤가 안 맞는 줄 안다. 과거의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정리를 하는 것이 좋지만 정리되지 못한 상황에서 어려워하고 정리에 쏟는 남모를 에너지로 인하여 힘들기도 했다. 강박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잘하는 것은 나를 세우기도 하지만 나를 가두기도 한다. 강점은 과잉되면 그것이 나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정리되지 않은 일상도 편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요즘 내 모습에 놀라곤 한다.



그러니 잘하는 것, 못 하는 것, 장점, 단점의 경계에 갇혀 있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장점으로 인하여 어려워지는 때도 있고 숨기고 싶은 단점으로 인하여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단점은 내가 인지하지 못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유연함 또한 이전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계획적이고 확고한 성격 탓에 그 범위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과 상황을 걸러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집요하게 에너지를 쓰면서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굳이 뜻이 아니어도... 으흠... 쓸 에너지가 없기도 하겠다. 그동안 좋은 만남이 있었고 함께 격려하며 이룬 배움이 있었다. 양 극으로 치닫는 생각과 감정을 부드러워지는 방향으로 연습을 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장점과 적절한 타협을, 단점과는 수용과 인내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물론 언제까지고 정리되지 않은 책상과 동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편안하게 볼 순 있다... 아니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비염 때문에 코 세정 키트를 샀는데 키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설명서는 보이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잘하는 거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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