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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May 31. 2024

글, 의미를 찾는 시간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숫자는 확실히 각성 효과가 있다.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들도 숫자로 표현하면 뇌는 정신을 깨운다. 숫자와 거리가 먼 사람이기에 수에 능한 사람을 동경하지만 수는 늘 나에게 상처를 남긴다. 적절하게 대비하기엔 언제나 늦었고 당황했고 어지러웠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계산이 느린데 거기다가 할인을 넣으면 더 헷갈린다. (호구되기 딱 좋은 타입이다.)



나이도 그랬다. 평소에는 모르고 살다가 20세, 30세, 40세가 되어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것으로 요란을 떨었다. 특히 39세에서 40세가 될 때는 '4'자가 주는 중압감에 캄캄했다. 만 나이 따지고 생일 지났네 안 지났네 하며 세상 심각했다. '이 나이 되도록 해 놓은 것은 없고 뭐 했나',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몰랐네', '경력도 단절됐고 앞으로는 뭘 해야 하나' 굳이 그렇게 과거와 미래를 어둡게 칠하면서까지 숫자에 당황했다. 연도가 바뀌어도 해가 뜨면 다시 오는 1일인데도 유난 떨게 되는 이유와 비슷할까.



궁금해서 잠시 한국식 나이 계산법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한국식 나이는 '세는 나이', '연 나이', '만 나이'가 있다. 2023년 6월 28일부터 한국식 나이 계산은 '만 나이'로 통일되었다. '세는 나이'는 출생과 동시에 1살이 되고 해가 바뀔 때마다 1살이 느는 한국식 나이 계산이다. '연 나이'는 현재 년도에서 출생 연도를 빼는 나이로 청소년보호법과 병역법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시행되고 있지만 헷갈리는 만 나이. 생일을 기준으로 0세, 생일이 지날 때마다 1살을 더하는 것이다. 약국에서 주는 약국 봉투에서 확인하면 가장 정확하다. -나무 위키 참조-


하지만 40대는 생각보다 (인생이라는 의미에서) 좋은 나이었다. 초조함을 넘어서니 여유가 찾아왔다. 에너지의 한계를 인지하니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육아라는 숙제와 나의 현 상황에 대한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맑음과 흐림의 줄을 탔다. 놀랍게도 그 흐림이 사람을 깊어지게 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야 맑은 날의 시야가 더 좋은 것 같이 말이다. 그 어둠과 방황이 글을 쓰게 했다. 나의 내면을 알고 싶었던 것인지 상황을 바꾸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글을 썼다. (읽기 부끄러운 글을 읽어주시고 라이크잇과 댓글을 주시는 요정님들께 늘 감사합니다.)



글을 쓰면서 글에만 집중되는 생각이 좋았을 수도 있다. 나름 완성이랍시고 끝내는 그 마무리가 해방감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면서 발견되는 부끄러움이 클수록 상대적으로 마음은 조금씩 정리되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보였다. 쓰고 싶은 글도 보이고 마음이 어떤 쪽으로 흐르는 것이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지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피하고 싶었던 사람과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삶을 관찰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바야흐로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나만 생각해도 부족한 에너지를 아껴 썼다. 그래서 무언가를 관찰하는 데 사용할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려고 보니 이름 모를 나무에 핀 무성한 나뭇잎이 예쁘다고 느껴지고, 계절에 따라 갈아입는 앞 산의 색깔에 감격하고, 옷 입고 있는 강아지가 거리를 헤매는 것을 보고 애타하고, 중학생 딸 자는 모습에서 보이는 아기 때 얼굴에 코 끝이 시큰했다. 따지고 보면 에너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야가 좁아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글은 그렇게 시선을 돌리게 하였다. 나에게서 세상으로.  


시선에 의미가 담길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 로그인한다. 당연한 현상, 익숙한 존재를 앞에 두고 하나의 질문을 더 건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마흔을 넘겨서 지금은 쉰을 향해 가고 있다. 법이 바뀌니 나이도 헷갈리는 현실이지만. 마흔이 되기 전에 나에게 "너도 곧 마흔이야."라며 누구보다 팩폭을 가했던 친정 엄마는 여지없이 "너도 곧 쉰이다."라며 또 시간을 접어 걱정을 늘어놓으신다. 눈에 띄게 늙어가는 딸의 모습이 보이는 것일까. 나는 당신이 보이는데... 십 년이 지나도 변한 것은 진정 없을까. 그땐 쓰는 인간이 아니었고 지금은 쓰는 인간이다. 쓰려고 노력하는 인간이 되었다.


평범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시작해도 된다. 아니, 그게 오히려 더 좋다. 


즐겁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기 같이 쓰고 리포트 같이 썼다. 완성되지 못한 글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쓸 수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마음임을 깨닫게 되었다.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문턱이 이만큼 낮으니깐 그저 당신은 걷듯이 지나가기만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그 편안함에 유쾌해졌다. 글을 쓰는 건 글감 찾으러 머리를 쥐어짜고 마무리 짓지 못한 내용을 보며 괴로워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힘 빼고 쉽게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며 그것은 세상 사람들 중 누구 하나는 공감하고 읽을 거라는 꿈. 그런 것들이 제법 행복했다. 글이 발견하는 세계를 보며 또 한 번 나는 인생을 준비한다. 두렵지만 꽤 괜찮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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