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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Jun 24. 2024

할머니 요리는 밭에서부터 시작된다

언제 먹을 수 있을까

"외갓집에서 온 도토리묵이야. 할머니가 주신 거. 너 좋아하니깐 먹으라고. 할머니는 다 만드시잖아."

"뭘로 만드는데?"

"도토리가루로 만들지."

"그건 어디서 나는데?"

"산에서 주웠지. 다람쥐처럼 열심히 주워서 모아서 말리고 까고 해서 가루로 만드는 거지. 그걸 쑤는 거야. 다시 말하지만 엄만 못하는 엄청난 기술이지."

"대단하다. 완전 유기농이지."



이번에 잠시 다녀온 친정에서 햇감자, 햇양파를 조금 챙겨 왔다. 기본적으로 깻잎, 상추, 고추, 오이 등이 밭에 있다. 친정엄마가 노는 땅이 없이 촘촘하게 심어 놓으셨다. 사실 나도 애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밭에서 나오는 작물들은 다 마트에서 본 것이 처음이다. 어릴 적 잘 따라가지도 않았지만 가끔씩 마트에 가면 엄마는 잔뜩 쌓인 고추더미에서 고추를 골라 비밀봉지에 담고 시금치 더미에서는 시금치를 담고 버섯 더미에서는 버섯을 담아서 직원에게 가 가격표를 찍었다. 그게 내가 본 야채들의 처음이다. 그러니 나도 밭에서 시작하는 요리가 애들만큼 신기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단하다. 여기까지 얼마나 애썼는지 알기에.



뭘 하나 먹으려고 해도 노동이 따른다. 나가서 야채 따오는 것이 뭐가 어렵냐마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요리가 보통 단계가 많은 것이 아니다. 유기농은 노동이다. 모종만 심으면 열매가 딱 맺어진다 하면 얼마나 쉽겠는가. 친정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땅이 좋나 봐요.'이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해 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란다. 돌봐주는 수고가 필요하다. 어느 해는 고구마가 얼마 안 열리고 그나마 열린 고구마도 실하지 않았다. 얼마나 유튜브를 보시면서 실패요인을 보는지 내가 다 힘들게 느껴졌다. "그냥 나는 거 먹자. 엄마. 너무 애쓰면 엄마가 힘들잖아." 그 말인 즉 이렇다. '엄마, 난 도와줄 수 없어. 힘들다고. 그러니 편하게 하자.' 하지만 엄마한테는 택도 없는 말이다.

 


친정 엄마가 5년 전 암에 걸리신 이후로부터는 어떤 음식도 믿지 않았다. 힘들고 어려워도 자신이 기른 작물 위주의 식사를 하셨다. 말 그대로 '내 손으로 키워서 내가 먹는다'를 실천하고 계신다. "엄마, 이러다 닭, 소도 기르겠어." 소는 말도 안 되고 사실 닭을 몇 마리 기르시면서 계란을 좀 먹긴 했는데 닭이 시도 때도 없이 꼬꼬댁 우는 바람에 다 잡혀 먹혔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게 참 아이러니이다. 밭일은 엄마에게 힘든 노동이지만 밭일을 내려놓으면 엄마는 또 집중할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힘들어하실 게 뻔하다. 자기 병만 계속 생각하면서 그 생각에 지칠 것이기 때문이다. 몸이 적절히 힘들면 오히려 수면의 질은 더 좋지 않은가. 매 해 겨울이 되면 안 심겠다고 하지만 유튜브를 보면서 심을 것을 생각하는 봄의 설렘을 엄마 얼굴에서 읽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는 수밖에.



재료가 있어도 하기가 귀찮아질 때  밭에서부터 음식 재료를 찾아와 요리하는 엄마를 떠올린다. 제 때 안 먹어서 썩어가는 야채를 버릴 때의 죄책감을 알기에 꾸역꾸역 감자를 삶는다. '그래 요즘 햇감자가 맛있더라.' 삶아서 으깨서 샐러드를 하던 그냥 소금 찍어 먹던 먹어내야 한다. 깻잎은 한 백 장 따온 거 같다. 집에 가서 깻잎김치를 만들어 먹으라고 계속 따가라고 더 따가라고 옆에서 지켜보셨다. '깻잎 김치는 밥 많이 먹게 돼서 싫은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언제가부터 마트에 가면 이거 엄마네 가면 엄청 많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제야 불평을 올린 감사를 하게 되는 내 모습을 본다. '두 분이 밭 일을 하면서 농사를 짓는 걸 얼마나 더 할 수 있으시겠어. 3년? 5년?' 눈에서 코에서 시큰한 물기가 올라온다. '오늘은 바람이 좀 있어서 좋겠네.' 이따 전화 한 번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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