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의 경기 외곽의 대형 카페는 적당히 여백을 두고 붐빈다. 여기서 오랜 친구와 만났다. 둘 다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를 쏟아낸다. 누가 뭐랄 거 없이 잠시 숨 좀 고를 겸 카페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커피 트레이를 들고 자리를 찾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어르신들이 같이 다니며 커피 마시는 거 참 좋아 보이더라."
그러고 보니 이곳저곳에서 어르신들의 모임이 보인다. 두세 명, 혹은 여러 명이 테이블을 붙여서 모여 있기도 했다.
"우리 엄마도 저기 계셨으면 좋겠다."
"그러게."
잠시 대화가 멈춘다. 우린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났다. 학교 앞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친구는 나를 편하게 자기네 집으로 데려갔다. 그 후로 자주 그 친구 집에 놀러 가곤 했다. 갈 때마다 친구 어머니는 떡볶이를 해 주실 때도 있고, 떡국을 끓여주실 때도 있었다.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치시다가 우리를 맞아주시는 그 환한 웃음이 아직도 선하다. 늘 바쁘게 가게 일을 하셨던 우리 엄마와는 다르게 집에 계신 친구 엄마, 취미 생활을 하는 친구 엄마가 얼마나 신기했던지...
한 번은 교내합창제를 준비하며 연습하다가 친구네 집에 갔다. 왜 이 시점에서 합창제곡이 생각나는지..."공산야월 두견이는 피나게 슬피 울고 강심의 어린 달빛 쓸쓸히 비춰있네" 4 성부가 처음에 '공산야월'하고 들어가는 그 화음이 뇌리에 아직도 박혀있다니 놀랍다. 담임선생님은 합창제 때 한복을 입자고 하셨다. "너 한복 있어." "응, 나는 있어. 너는?" "나는 없어."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친구 어머니가 자신의 한복을 입어보라고 하며 가져다주셨다. 아직도 기억난다. 남색 치마에 주황색 저고리. 웃음이 많으시고 친절하신 어머니였다. 그 시절 나는 우리 엄마와 이 친구 엄마를 마음속으로 얼마나 비교했는지 모른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키우는 엄마와 딸 셋 키우는 엄마는 이렇게 다르구나.' 그렇게 부러웠나 보다.
시간이 흐르고 흘렀다. 이렇게 우리가 계속 친분이 이어질지 알았을까. 말 그대로 오랜 친구가 되었다. 그동안 친구 엄마에게 치매가 왔고 나의 엄마에게는 암이 왔다. 친구가 말라가고 그늘이 지우는 게 안 보려 해도 보인다. 눈가가 시려오지만 감히 그 시간의 무게를 헤아릴 수 없어서 꾹 참고 이야기한다.
"엄마, 전화 다 받지 마. 너무 애쓰지 말고."
"그게 안 되지만 해 볼게. 나도 살아야지."
"엄마가 다정하셨어서 지금의 모습에 네가 많이 힘들겠다."
"맞아. 나는 엄마와 관계가 너무 좋았잖아. 예전 엄마는 없지. 늘 억울하고 노여워하시고 괘씸해하시고. 완전 다른 사람이야."
"......"
"아직 시작이라는 게 너무 무섭고 어려워."
정적이 흐른다.
고생이 많다. 정말. 우리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예전에는 즐거운 일들 사이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어서 헤쳐나가야 하는 줄 알았어. 지금 보니 인생은 어렵고 힘든 일 중에 발견된 즐거움과 행복으로 웃는 거 같아."
"그런 거 같아. 그러니깐 그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야 해. 웃을 일 있어."
엄마가 암에 걸리면서 자기가 암이 걸린 것이 아버지가 고생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다. 두 분은 평생 싸우셨는데 이 일로 더 치열하게 싸우셨다. 피해의식과 우울과 화병등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은 나에게 버려졌다. 친정에 가면 머리가 늘 아파서 가기 전에 진통제를 넉넉히 먹어두고 가서도 진통제를 찾았다. 엄마는 자기 병에만 예민했으며 연민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나도 완치 판정은 나오지 않았다. 작금의 의료적 현실과 맞물려 엄마의 걱정은 깊어지고 있다. 나는 5년간 엄마가 이만함에 감사한다. 어쨌든 휘플 수술하고 잘 이겨냈으며 식사 잘하시고 신경질 내시고 밭일을 하시고 산책도 하시고 유튜브를 보시고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불행배틀도 아니고 오랜 친구와 만나서 아픈 엄마 이야기만 할 수 없다. 웃을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서로를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맛있는 한정식을 배불리 먹었고 넓고 시원한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함께 단짠 앙버터를 먹는다. 남들이 보면 그저 아줌마들이 한가한 시간에 여유로운 수다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애들, 남편, 살림, 일 이런저런얘기를 하다가도 다시 엄마 얘기로 돌아오는 착한 딸들이었을까. 신데렐라같이 정해져 있는 우리에 시간 속에서 매일 같이 학교에서 만나 수다 떨고놀았던 그 끝나지 않을 것만 했던 그 시절이 아득하게 그리워진다. 그 시절 젊었던엄마도 떠오르고... 결국 오늘은 이렇게 헤어져야 했다. 미안하고 애잔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