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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에이드 Nov 08. 2023

독감에 걸리고 알게 된 것들

글을 쓰고 있더라 

아. 그랬구나. 나는 독감이었다. 요 며칠 글을 쓰려고 애써보는데 진행이 되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은 산란되어서 정리되지 못하고 완성되지 않은 문장들만 각자 덩그러니 남아서 나를 안타까이 보는 것만 같았다. 난 지금 무엇을 쓰려고 하고 있지? 진지하게 돌아볼 여력이 없이 그렇게 나아가지 않는 문장들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독감에 안 걸릴 이유가 없었다. 비염인 둘째 아이가 감기로 발전해 이비인후과를 들락날락했다. 기침과 몸살에 병원을 찾은 남편이 여지없이 독감 처방을 받고 왔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곳도 초등학교라 여기저기 독감에 걸린 학생들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려니 내 몸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움직이다 보면 풀리겠지 싶어서 부지런 떨어보지만 한없이 춥고 떨렸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었는데 못 들었다. 설명을 잘해주는 친절한 선생님에게 '제발 그만 말씀하시고 나가게 해 주세요.'라고 말할 뻔했다. 몽롱한 정신으로 수액을 맞고 한숨 잤더니  좀 살 거 같았다. 살 거 같으니 글이 생각났다.      



인스타그램에서 이은경 선생님의 '브런치 2기' 모집 공고를 보고 끌리듯이 오픈 시간을 기억해서 등록한 기억이 난다. 등록만 했는데도 마치 작가가 된 듯한 뿌듯함이 올라왔다. 세 살 아이가 피아노 한 번 안쳐보고 피아니스트가 꿈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글 한번 제대로 안 써보고 작가라는 것을 꿈꾸었나 보다. 동경만 하고 들어간 현장은 생각 이상으로 난관이었다. 사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글감은 보이지 않았고 지독히 평범한 일상을 담으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막연했다. 이 와중에 이은경 선생님은 말을 참 예쁘게 하신다. 예뻐서 예쁜 것도 있지만 마음을 담아내는 에너지가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킨다고나 할까. 글감을 찾으려 까칠해지고 예민해졌는데 한편으론 그녀를 닮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났다. 친절한 피드백에 나도 친절한 글을 쓰고 싶은 꿈을 꾸게 했다. 그렇게 써보기로 할 이야기를 찾았고 시작이라는 것을 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

좋은 사람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글을 쓰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사람들이라서 다들 결이 비슷한 것인가. 브런치 2기에서 만난 작가들(과대평가가 아니다. 그들은 '작가'라는 타이틀에 맞게 창작을 불태우고 있다)의 일상을 뚫고 나온 그들의 문장들이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 나도 소위 한 질투하던 사람이고 조회수 터지고 글감 잘 뽑아내는 센스는 참 부러웠다. 하지만 서로가 잘되길 바라는 진심 앞에서는 묘한 연대의식을 느끼게 된다. 보지도 못하고 겪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인데 글로 친분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게 가능한가 싶은데 그렇게 되더라. 브런치 알람을 열었다. 독감에 겨우 정신 돌아와서는 한다는 것이 글을 보는 것이라니. "어서 다음글 주세요."라고 글을 쓰게 하는 댓글에 나의 에너지 배터리 한 칸이 차올랐다. 이게 뭐라고 참.      



아직도 내 인생에 들어온 '쓰는 글'이라는 것은 안 입어본 스타일의 옷을 입어본 것처럼 어색하다. 그 옷을 입고 보니 일상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색다른 기분이 나더라. 별 것 아닌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둘러보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들에 애정이 생기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을 보며 십몇년간 이 시간에 출근하는 남편의 일상성을 새삼 박수쳐 주고 싶었다. 늦잠 자는 애들 깨우고 학교 보내는 (삭제하고 싶은 그 험한) 시간을 이제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세밀하게 다 글로 풀어내리라고 주먹 쥐고 다짐하게 된다. 글로 쓰니 의미가 생기고 의미가 생기니 소중해졌다. 그 시간을 더 사랑하며 머물 수 있는 행복이 피어났다. 어쨌든 그렇게 한 발자국을 뗐다. 감기약 기운이 빠지기 시작한다. 글을 맺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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