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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Sep 04. 2020

배드 엔딩 엔드 리트라이

초단편 소설

 발에 힘을 주어  위에 섰다. 23 옥상은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보자 주차된 차가 손에 다섯 대는 들어갈  있을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가슴이 떨렸다. 그러나  슬픔도 분노도 괴로움도 느끼지 못할 것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작은 미련이라도 남은 것이었을까. 알리샤 크로프트의 ‘Good bye to bad ending’ 듣고 싶었다.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으로 노래를 재생했다. 볼륨을 올렸다. 가장  소리로. 청력이 손실될 정도로. 눈을 감았다. 이제 어떻게 되어도 좋았다.


 “잊혀질 거예요. 당신과 . 모든 것은 녹슬고 무너지겠죠. 하지만 우린 그곳에 없을 거예요. 이미 떠나왔으니.”


 노래가 끝나자 편해졌던 마음이 다시 울렁였다. 나는 반복 재생을 누르고서 , 음악에 빠져들었다. 노래가  번이나 반복되었을까.  소리가 익숙해질 때까지 나는 그대로 있었다.


 다시 눈을 떴을  아파트 앞에는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를 보고 있는  같았다. 시간을 너무 끌었음을 깨달았다.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요동쳤다. 그때 방화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했다.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말을 걸며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지 . 남자는 잠시 주춤했지만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아파트 아래로 던졌다.    둔탁한 소음 뒤로 여러 사람의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남자는 접근을 멈추고 말았다.  그러는 거요. 뭐가 그리 힘든 거요. 나라도 괜찮으면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겠소.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죽게 내버려 . 남자가  발을 내밀었다. 인생은 그래도 살아봄직 해요. 포기하기에는 너무 일러. 내가 도와줄게요.


 대치 상태는 1시간 동안 이어졌다. 결단했을 때의 마음과는 달리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마음은  곳을 잃고 말았다. 능숙한 그에게 이끌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버렸다.


 다섯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던 ,  안의 모든 물건이 차압되었던 , 알콜 중독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던 , 도망가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 고아로 자라며 왕따를 당했던 ,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들여줬던 청년들과 비행을 저질렀던 , 같은 학교 학생을 성폭행한 친구들이 범인으로 자신을 지목한 , 억울하게 소년원에 가야만 했던 ,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을 했지만 바로  입대를 해야  , 군대에서 훈련   팔을 다친 , 의가사 제대를 했지만 보훈처에서 보훈 대상에서 나를 제외시킨 , 한쪽 팔로   있는 일이 없던 . 경찰은 행복했던 일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이런 인생이라도 행복한 일은 있었다. 처음으로 자신을 받아들여준 여자 친구가 생긴 , 딱한 사정을 듣고 자신의 공장에 취업을 시켜준 사장을 만난 , 집을 구해 여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던 , 임신을  , 2 복권에 당첨된 적이 있던 것을 말해줬다. 경찰은 그것 보라며,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는 거라고 말했다. 아이도 생겼는데 이러면  되지. 여자 친구를 생각해야지.


 하지만 여자 친구는 이미 없었다. 임신 소식을 알게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아이를 지우게  , 결혼을 완강히 반대한 , 여자 친구를 강제로 필리핀으로 보내버린 , 함께 살던 집은 재개발이 시작된 , 쫓겨나 공장에서 생활한 , 사장이 임금을 6개월 동안 지급하지 않다가 도피한 ,  곳이  이상 없다는 것을 말했다. 경찰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복권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복권, 2, 2등이라고. 얼마나 운이 좋은 생인가. 나 같은 사람에겐 오지 않는 행운이네.”


 복권은... 1  잃어버렸다. 그리고 어젯밤 복권의 당첨금 지급 기한이 끝났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악을 쓰며 울음을 터트린 나를 향해 경찰 달려들었다. 경찰의 손이 나를 붙잡기 전에 나는 몸을 던졌다. 괜히 괴로운 기억을 끄집어낸 것을 후회했다.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워해야만 했는가. 하지만 이제  마음이 편해질 이었다. 바람이 불어오고, 사물들은 선이 되고 있다. 잠시 뒤 모니터 전원이 꺼지듯이 모든 빛이 사그라들었다.


-현재 시간은?


- 2204 4 8 13시입니다. 당신은 28년의 시간을 58 동안 플레이하셨습니다. 플레이를 평가하시겠습니까?


- 이번 시나리오는 별점 2개로.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어. 21세기 한국은 살기 힘들었구만.


- 점수와 리뷰를 등록했습니다.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받으시겠습니까?


- 접속. , 엄마.  지금 잠깐 놀고 있어요. 게임방이요. 한두 시간만  하다 갈게요.


- 통신이 끊겼습니다. 시나리오를 리트라이 하시겠습니까?


- 아니. 이번에는 다른 시나리오로 하지. 시대는 1970년대, 일본, 난이도는 easy.


- 새로운 시나리오를 선택하셨습니다. 비용은 2 3 달러입니다. 계좌에서 차감하는데 동의하십니까.


- 동의. 너무 불행한 것도 별로라니까. 이번에는  즐겁게 살아볼까. 가상체험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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