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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Sep 03. 2020

의미 있는 여행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마음

채사장 저자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읽고서

채사장님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읽는 중이었다. 채사장님은 한 때 죽을 수도 있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다행히 불상사를 피했지만, 이후 그는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마주한 그는 결국 사라지고 잊힐 삶에 허무함을 느꼈던 것 같다. 무엇을 애써 이룬다고 의미가 있는가.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무의미해지지 않는가. 그러나 죽음은 그에게 또 다른 사실을 알려주었다. 필멸자들에게도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피하려 하는 사람들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정해진 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깨달았다. 채사장님은 인생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자 존재의 이유, 목적, 의미를 더 추구하게 된 듯하다.

그의 많은 생각과 인생을 대하는 성찰,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들은 흥미로웠다. 책을 읽는 중에 혼자서 하기 어려운 진지한 고민들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자연스럽게 그럼 나는 인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삶이 어떻게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는가, 존재의 의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나는 바다 위 작은 뗏목에 누워있는 스스로를 보았다. 완전한 직선의 수평선이 펼쳐진 바다와, 바람도, 파도도, 구름도, 어떤 출렁거림도 없는 고요 속에서 그저 가만히 떠 있기만 한 뗏목, 그리고 목적지를 알 수 없어 누워서 하늘만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나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 인생의 의미는 무얼까. 표류하다가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가라앉아 버리고, 결국 흔적도 남기지 못할 인생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미치자 두려워졌다.

내게  인생이란 너무 괴롭기만 한 무언가였다. 삶에게, 나에게 걸어왔던 기대는 현실과는 괴리가 컸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삶과 초라한 나를 외면한 채 , 잡히지도 않을 이상을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렸으니 괴롭지 않을 리 없었다. 몸부림은 치는데 가라앉기만 하고, 숨은 차올라 호흡하려 할수록 폐에는 물이 들어와 죽을 것 같았다. 한계에 다다르자 이상 따위는 사라지고 당장 살아 있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때서야 나는 실체 하는 존재를 디디고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비록 존재가 초라해도 괜찮았다. 살아있으니까. 그리하여 인생의 목표가 재설정되었다. 고통이 싫었으며, 괴롭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잘, 살고 싶었다. 인정도 받고, 안정감도 갖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는 삶. 일부러 힘든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얼마나 큰 자유를 주었는지 모른다. 온몸의 힘을 빼고 축 늘어져 둥둥 떠다니는 삶이 편하지 않을 리 없다. 그렇게 마음의 방향을 바꾼 내게 어느새 삶은 살아봄직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목적지 없이 흘러만 가는 나에게 이 책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힘들게 발버둥 치지 않고 누워서 떠 다니면 되는 삶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게 표류하다가 마치게 되는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즐겁게, 재미있게, 편하게 잠시 동안 존재했다는 것이면 충분할까. 나는, 그러기 위해 태어났던가. 그럼, 이 삶을 왜 더 지속해야 하는가. 행복할 때 끝 마쳐버린다면 되는 건가. 무언가가... 잘 못된 것이 아닐까. 고통을 피하는 삶, 혼자 편안한 삶이 만들어 내는 인생이 아름답거나 의미 있거나 할 수 없었다. 그저 허무. 존재 후 사라져 버려도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세상에도 내가 살았다는 흔적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인생이 그렇게 되기 전에 딘가 목적지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폭풍을 넘어서 목마름을 이기고, 땀 흘리고 바람에 맞서서 가야만 하지 않을까.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의 세계의 한 부분을 구성했던 나의 시간과 공간과 존재를 생각본다. 그리고 나는 조금 달라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왜 살고 있는지,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삶은 어떤 의미를 만들어야 하는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 어쩌면 나는 그 여정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다시 껴안아야 할지도 몰랐다. 쓰고 눈물 흘려도 버텨내야 할 것이 뻔했다. 그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 중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돛을 부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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