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게 필요한 것, 초연

육아 일상 에세이

by 포도씨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빠, 미미 인형이 없어졌어. 같이 찾아줘.”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의 눈빛을 외면했다. 뒤돌아서 “네가 찾아봐.” 하고 차갑게 대답했다. 그 말을 하는 나의 눈빛은, 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말처럼 냉정했을 것이었다. 누군가는 의아해할 것이다. 도대체 인형 하나 같이 찾아봐달라는 말이 뭐가 어려워서 한숨이며, 외면까지 한단 말인가.


강바닥에 침전된 불순물들을 누군가 건드린 것처럼, 나의 마음은 희뿌연 흙탕물로 가득차 있었다. 조금 전까지. 괴로움인지, 분노인지, 미움인지, 당황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그런 감정들이 소용돌이 쳤다. 사건이 대단했던 것도 아니었다. 분주하게 식사를 차리고, 칭얼거리는 둘째 아이를 챙기며 정신 없이 저녁 식사를 시작하려고 하던 때였다. 분위기처럼 식탁 위에도 이런 저런 물건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 부산스러웠다. 밥을 먹던 아이가 계속 식탁 위에 있던 물건들을 만지작 거렸다. 나는 식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몇 차례 같은 말이 반복되자 점차 목소리가 커져갔다. 마침내 짜증스런 “그만 해!”까지 나오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눈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를 주시하며 한 번 더 물건을 만졌다. 부글거리던 마음이 끓어넘쳤다.


“너! 일부러 그러는거야? 아빠 화나게 할려고 더 그러니?”


아이는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니었다.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감정은 주체가 안 됐다. 아이가 먹던 음식을 바닥에 떨어뜨리자 “아휴.” 하고 불만을 표현했다. 식탁 위에서 나는 일방적으로 불쾌한 마음을 여실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으나 마음처럼 감정이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아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신경을 꺼야겠다고 판단했다. 지금으로써는 그게 최선이었다. 서둘러 정리하고 나머지는 아내에게 맡긴채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말하자면 감정의 스위치를 꺼버리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아빠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하고 무언가를 요구했다. 나는 그 때마다 “다음에-“하고 넘겼다. 인형일도 그런 흐름에서 였다.


최근, 아니 어쩌면 한동안, 나의 감정은 동남아의 우기 같은 것이었다. 맑은 날인 것 같다가도 갑작스럽게 대처하기 어려울만큼의 다량의 비가 폭포처럼 쏟아져버리는 그런. 스콜은 언제 내릴지 예측하기가 어려웠으나 나의 경우엔 조금 다르긴 했다. 비가 내릴 때마다 내 앞에는 첫째 아이가 있었다. 아동용 하이체어 위에서 한 발로 서서 허리를 꺾어 위험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이에게 소리쳤다. “똑바로 앉아!”. “왜 파스타에 새우가 없어! 빨리 새우 구워줘!” 하며 우는 아이 앞에 귀찮음이 가득 섞인 어조로 말하기도 했다. “그냥 좀 먹자!”.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그려온 그림이 하나 둘씩 쌓이고, 집 여기 저기에 뒹구는게 너무 보기 싫었다. 아이가 보지 않는 틈에 꾸겨서 휴지통에 버릴 때마다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런 일상적인 순간들 앞에서 나는 감정의 스콜을 맨 몸으로 맞는 것만 같았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 큰 일도 아닌데, 마음은 크게 반응하는 이유도.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지른 후에는, 진흙탕처럼 변해버린 마음에 인생이 집어 삼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후회되고, 괴로웠다. 나쁜 아버지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아이가 잘못해서 화를 낸 것처럼 기술했지만, 사실은 아이에겐 잘못이 없었다. 물고기가 물 밖에 나와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육지 동물이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는 아이였다. 아이가 말을 안듣는 것도, 실수를 하는 것도, 가끔은 무모할 때도 있는 것도, 그냥 아이니까 그런 것이었다. 아이는 아이로써 충실히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감정의 폭풍과, 그 속에서 잠식되는 것 같은 나의 영혼은, 말하자면 다 내 잘못이었다. 인형 하나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냉정히 외면하는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도,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감정을 배제하고 말하지 못한 모습도, 귀찮더라도 조금 더 아이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 것들도. 모두 어른스럽지 못한 내 잘못인 것이다.


“아가야. 아빠가 밉지 않니? 화를 낼 때라던가.”


아이를 데리고 등원하던 길에, 문득 물었다.


“아니, 아빠 안 미워. 아빠 좋아.”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아이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냥 조금 슬퍼져.”


아이는 부족한 아빠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었다. 대답이 끝나고 아이는 붙잡고 있던 아빠 손등에 뽀뽀를 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슬펐다. 묘했다.


부쩍 자아가 강해진 아이는, 요즈음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신경질을 부리면서 바닥에 드러눕는 행동이 늘었다. 눈 앞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환장을 한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일 것이겠거니, 감정을 내려놓고 필요한 훈육을 해야하는 것이 나의 책무였다.


원래도 감정이란 것이 어려운 사람이지만, 아버지 된 자로써 감정이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는 않으나 거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굳세게 서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어른은 초연한 사람이랄까.


초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휘몰아치는 감정에도, 스트레스에도, 아이의 생 떼에도 초연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부디 나의 마음이 아이가 자라가면서 함께 더 성장해가길 바라본다. 그 때까지 아이의 마음이 너무 많이 슬프지는 않기를 또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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