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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Mar 22. 2021

불신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드라마 '빈센조'를 보면서 드는 단상


 요즘 관심 있게 보는 드라마가 있다. 빈센조.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대기업과 로펌, 그와 관련된 기득권층이 만들어낸 불의로 피폐해져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맞서는 정의로운 변호사와 그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만 주인공이 이탈리아에서 온 마피아이고 실제로 마피아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간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한국으로 온 마피아는 사건들을 해결하며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그러나 계속 사회 밖으로 몰리게 되는)의 구원자가 된다. 반대로 법을 지키는 판검사와 변호사, 생명을 위한 선서를 했을 의사, 시민이 존재하기 때문에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기업들은 합법과 불법적인 방법을 총동원하여 자신들만의 욕심을 채워간다.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에서 너무 괴리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일으키게 된다. 말도 안 된다거나 미쳤다거나 그런 반응을 포함해서 도무지 공감을 이끌어낼 수가 없다. 사람들을 돕는 마피아와 사회를 썩게 하는 권력자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나는 걸리는 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부패한 법의 수호자와 사람의 생명 따위에는 약간의 무게감도 느끼지 못하는 자본가, 서로의 욕심으로 보호하고 받쳐주는 비밀 동맹. 나처럼 이런 설정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현실은 더 악취가 나고 더럽지. 오히려 드라마는 순한 편이지.


 대부분의 시민들은 알고 있다. 오히려 법이 지켜지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죗값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순진해서 속고만 사는 사람, 답답한 이들로 여겨진다.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는 이미 안다. 그렇지만 뉴스를 틀어보자. 정치인은, 법조인들은, 언론은 마치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그런 일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지 않은가. 분명 누군가는 일을 벌이고 있는데 잘못을 인정하는 어른들은 어디에도 없다.


 세상에서 진실을 밝히는 방법은 얼마 없다. 사회에서 진실을 찾고 싶다면 기댈 곳은 재판 말고 있을까? 재판은 지방법원에서 한 번,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면 고등법원에서 또 한 번, 그래도 억울하다면 대법원까지 이어진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다시 보고 고민해서 내놓은 재판 결과를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현재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는 재판의 결과를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회가 유지되려면 마땅히 그래야겠지만,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결과를 신뢰하지 못한다. 이젠 어떤 법적 결론이 나와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바꾸지 않는다. 사회를 유지시키는 ‘신뢰’는 깨진 지 오래되었고 ‘불신’은 극에 달했다. 우리는 객관적인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힘을 키워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찍어 누르고 자신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싶을 것이다. 힘이 센 사람이 진실이 되는 곳에서 우리는 서로 속일 것이고 불법적인 일을 고민하기보다는 그 일을 들키지 않기 위해 카르텔을 만들 노력을 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 힘없는 사람들은 죄인이 되겠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선택지는 두 개가 있을 것이다. 사회를 다시 신뢰할 수 있는 곳으로, 법을 지키는 사람이 살아남고 법을 어기는 사람은 도태되는 곳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불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을 것인가. 어쩌면 드라마 작가가 만든 ‘빈센조’라는 인물처럼 마피아스럽게 행동해야만 우리는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만들고 있는 사회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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