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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May 12. 2021

믿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청년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란게 고작 이런 것이라니

 아르바이트 학생이 들어왔다. 이십 대 중반. 야채장사도 음식점 서빙도 해봤다는 그는 아직 무얼 하고 싶은지 무얼 해야 하는지 찾지 못해서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있단다. 가끔 조수석에 태우고  시간이고 돌아다닐 일이 있다 보니 예상외로 많은 이야기를 나눠버렸다. 그의 가족사도, 관심사도, 학창 시절의 여러 사건들과 주변 친구들의 모습까지. 사람을 알게 되면 될수록 그만큼의 깊이만큼 책임감이 생기는  같아 사람을 알고 싶어 하지 않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래를 위해 지금   있는 최선을 다해가는  청년의 인생을 응원하고 싶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또다시 건네버렸다.


이왕 20 청년과 새로 말 꼬를 트게 되었으니 평소에 가지고 있던 궁금증  개를 질문했다. 그중 하나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사회적 사건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미 30 중반이 되어버린 내가 겪어온 사회와 이제  군대를 제대해서 사회 경험을 시작하고 있는 청년의 사회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청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세월호  희생된 애들이 저랑 비슷한 또래예요."


대답을 듣자마자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괜한 질문을   같은 화끈거림이 느껴졌다. 청년은  배에 친하지는 않았어도 자신의 친척이 타고 있었다고 했다. 장례식장에도 다녀왔다고. 아차. 내가  이런 질문을 꺼냈는지 자책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요. 제대로 밝혀진 것도 없고 해결되지도 않았네요."


마음이 무거웠다. 어두운 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목소리가 쉬었어도 소리 지르기를 참지 못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노랫소리가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세월호가 인양되었을 때 뭔가 진척이 있겠지 하는 기대감 같은 게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진실을 마주하고서야 가능한 치유에 도달했을까?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얼마 전 있었던 서울시장 선거로 이어졌다. 20대 청년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어느 정당이 이전에 어땠고, 저런 이미지였다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바로 지금 어떤 모습인가가 중요한데, 현 정부와 여당에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은 실망했다고 말했다. 실망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이제까지 내가 배운 우리 역사를 통해 나는 어디가 선이며 악인지 쉽게 구분할  있다고 생각했다. 진실을 감추고 권력에 굴종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피와 눈물을 쏟으며  나은 사회를 만드려고 자신을 내어 던졌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가리기란 너무나 쉬웠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페이스북에 가끔 아니라고, 아니라고, 눈을 뜨라고 되지도 않은 소리를 써낼 때가 있었다.   속에는 아마도 나는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마음이 녹아들어 있었을 것이다.  사실을 떠올리면 지금이라도 당장 지워버리고 싶은 만큼 부끄럽기만 하다. 정말 나는 제대로 보고 있었나?  선택과 지지는 옳았나? 계속 믿어왔다. 그래도, 그래도  다르겠지. 그래도 뭔가 다른 계획이 있겠지. 그들이 그랬잖아. 자신들이 바꾸겠다고.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겠다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병든 사회를 고치겠다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응원했다. 힘을 모아 달라는 메시지에  국민이 화답했을 , 이제 정말 바뀔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힘을 모아 권력을 손에 쥐어주었음에도 그들로부터 어떤 의지를 느끼기에는  이렇게 어렵기만 할까. 그들은  가만히만 있을까.


  서초동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강풍이 불고 해가 쨍쨍했어도 상관없었다. 어스름이 내리자 날카롭고 따가운 아스팔트 바닥은 차가워졌다. 괜찮았다. 손을 높이 들어 소리를 질렀다. 조국을 지키라고. 사회에서 병든 부분을 고치라고.  목소리들을 잊지 말아야  이들은 지금 조국을 탓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일부러 힘든 길을 걸어간 이들을 자신들이  빨리 손절했어야 했는데 못했다고 자책하더라. 그처럼 앞으로 나아간 사람들이 많았는데... 총알받이가  것을 알고도 앞에 나선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자기들에게 총알이 날아올까 봐 거리를 둔다. 그것이 현재 그들의 민낯이다.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동료와 국민보다 자기   건사하기에 급급한... 그럴 것이면서도 자신들을 믿어달라고 말했던 그들의 몰염치함이란... 옳은 답 일리가, 정답 일리가 없었다.


우연히 알게  청년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해줄  있을까.  회의적으로 변하기만  뿐인 내가 청년에게 건넬  있는 말이란 함부로 사람을 믿지 말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힘을 키워서 살아남으라는 메시지 말고는 없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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