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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Jun 05. 2022

힘들지? 힘들잖아~!

이기적인 말 "힘들지?"



 내가 도서관에서 주로 맡아서 하는 일은 상호대차 도서와 예약도서를 분류하고 필요한 곳에 옮기는 일이다. 하루에도 수백 권, 많게는 천권 이상을 옮길 때도 있으니, 육체적으로 힘이 든다. 책을 가득 넣은 박스를 몇 개씩이나 핸드카트에 쌓아서 옮기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우, 힘들겠다'라는 말을 해주고는 한다.

 

 그래도 다년간 일을 해오다 보니 익숙해지고 힘이 덜 들어지기도 했다. 어느 날 시설팀에서 일하던 직원 분께서 핸드카에 책 박스를 싣고 옮기는 중이던 나를 불러 새웠다.


"힘들지? 우리 도서관에서 제일 힘들 거야. 이게."


 나는 예전보다 버틸만하기도 하고, 도서관이란 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속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고 말하기엔 거북스러웠다. 어렵고 괴로운 일을 버티는 동료들도 생각났다.


"아, 아닙니다. 할 만합니다. 괜찮아요. 다른 분들이 더 힘드시죠."


 이렇게 대화가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분의 표정이 갑자기 경직되었다. 뭐지?


"아니야. 이 일이 제일 힘들다고. 힘들잖아!"


 갑작스러운 분위기 반전에 당황스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빠른 상황 정리를 위한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왠지 모르게 내가 힘듦을 인정할 때까지 그분은 내게 힘듦을 강요할 것 같아, 얼른 수긍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네, 맞아요. 힘듭니다. 몸이 다 아프네요."


 원하는 답을 얻었는지 다시 여유로운 미소를 되찾은 그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 탑승하고는 사라졌다. 의문스러웠다. 정말 뭐지?


 몇 해가 지나서도 가끔 생각이 나는 대화였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분은 내가 하는 일이 도서관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고 정해두고, 그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왜일까. 그분은 자신이 맡은 일들이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신보다 힘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삼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분은 더 힘든 일과 비교를 통해서야 그 당시를 조금은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는 추측만 해볼 뿐이지만, 아마도 그게 맞을 것 같다. 그러니 나의 대답을 듣고 만족스러워했으리라.


 추론이 이어지니 그분이 내게 건네었던 "힘들지?"라는 말은 걱정과 측은함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겠다. 스스로를 위해 건넨 말, 이기심으로 건넨 말이었을 뿐이다. 그분을 통해 "힘들지?"라는 말이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자신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말의 세계란- 어메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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